2007 3*4월호 [쟁점과 현안]차이에 기반한 당연한 권리, 월경하는 여자로 수영하기
2007년 3·4월호_쟁점과 현안
희망제작소가 월경기간 동안 수영장 요금을 할인 해주지 않는 것은 성차별이라며 국가인권위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여성의 61%가 한달의 5~7일 동안 월경으로 인해 수용장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조사 결과를 근거로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여성의 피해를 보상하지 않는 것은 성차별이며 여성소비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문제라는 것이다. 이는 남녀간의 차이로 인한 문제를 제기하면서 여성권리의 확보를 요구했다는 점에서 많은 여성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하지만 남성을 기준으로 하는 규정에 대한 문제제기 속에 나온 이러한 요구는 여성노인, 임산부 등 ‘월경을 하지 않는 여성들’이나 여러 이유로 수영장 이용에 어려움을 겪는 ‘장애인들’ 등 다른 차이를 가진 주체들의 존재를 비가시화하면서 결국 ‘남성’과‘월경하는 여성’을 또 다른 기준으로 설정한다는 점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이번 호에서는 수영장 요금 여성할인을 주장하고 있는 희망제작소 사회창안팀의 의견과 이와는 조금 다른 시각으로 이를 바라보는 의견을 게재한다. 글의 내용은 본지의 편집방향과는 무관함을 밝힌다.[편집자 주]
차이에 기반한 당연한 권리, 월경하는 여자로 수영하기
김이혜연
“월경때문에수영장을1주일못갔는데, 연기가 가능한가요?”
“그렇게는 안돼요. 다른 수영장에 가서 물어보세요. 그렇게 해주는 데가 있나?”
“다른 이유도 아니고, 월경 때문에 못가는 거잖아요.”
“하여간 안돼요. 개인 사정을 어떻게 다 봐줘요?”
월경(月經)하는 여자들, 월경(越境)하다
한국에 실내 수영장이 처음 생긴 해가 1963년. 그동안 수많은 여성들이 수영을 배우고 수영장에 다녔을 터인데, 월경 때문에 수영장에 가지 못해도 한달 요금을 다 내야하는 이러한 상황은 지금껏 한번도 ‘문제’로 여겨진 적이 없다. 왜 이 문제는 이토록 오래 수영장 담장을 넘지 못했을까?
‘월경’, ‘생리’라는 말을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있게 된 것이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그닥 놀라울 일도 아니지만, 아주 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월경 주기에 따라 수영 강습 일정을 조정하고, 월경 중엔 수영장에 나오지 않는 등, ‘알아서’하고 있었다는 것, 정말 놀랍지 않은가? ‘이미 다른 차이들’을 반영하고 고려하는 시스템이 부재할 때, 그것들을 감당하고 해결해야하는 것은 개인의 몫이 된다는 것을 이 사례는 여실히 보여준다. (소비자보호원은 월경 중 수영장을 이용하지 못하는 것이‘피해’가 아니라고 한다. 왜? 지금까지 접수된 적이 없으니까. 도대체 문제는, 피해는 어떻게 측정되는 걸까?!?!)
여성에게 한 달 치 이용요금은3주치 이용요금
희망제작소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서치 플러스와 공동 진행한 여론 조사 결과, 수영장을 다닌 적이 있는 여성 중 60% 이상이 월경으로 한 달 중 5일 이상 수영장을 이용하지 못한다고 대답했다. 한 달 치 이용요금을 내고도 여성은 줄곧 3주밖에 이용하지 못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여성이 한 달을 꼬박 사용하기 위해서는 한 달 하고도 한 주 치의 요금을 더 내야 한다는 것. 이 상황, 경제적 피해가 있음이 분명하다.
여성의 월경은 개인적인 사정?
그러나 수도권 내 수영장의 실태를 조사한 결과, 어떤 수영장도 월경 중 이용 기간을 연장해 주는 곳은 없었다. 월경은 개인적인 사정이기 때문에, 일일이 다 봐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월경을 하는데도, 월경은 정말 개인적인 사정일까? 한국수영장경영자협회는 수영장 요금은 이미, 남성들이 출장으로 강습을 빠지고, 여성이 월경으로 빠지는 날을 고려해서 책정되었다고 대답한다. 그렇다면 월경도 하고 출장도 가는 여성들은 어떻게 하나? 그들이 생각하는 수영장을 이용하는 소비자는 일괄적으로 남성의 몸을 가지고 있나 보다.
‘소비자=남성’이 아니라면
소비자피해보상규정은 소비자 귀책 사유에 의해 수영장 등 체육시설을 다니지 못하게 될 경우도 소비자의 권리확보와 피해 보상을 위해 이에 대한 보상을 규정하고 있다. 즉 소비자의 고의 과실에 의한 피해도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월경이라는 생리적 조건으로 인해 발생하는 소비자 피해는 보상 규정이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다. 수영장을 이용하는 소비자가 남성의 몸을 전제할 때, 월경으로 시설을 이용할 수 없는 것 자체가‘피해’로 사유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것이 현행 소비자피해보상규정의 적용을 받으려면 월경은 여성소비자의 고의 과실인 귀책사유가 되어야 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처럼 남성들은 아무런 문제없이 일괄적으로 소비자피해보상규정의 적용을 받을 수 있지만, 여성들은 그렇지 않다. ‘소비자=남성’이 계속될 때, 남성과 이미 다른 여성의 차이들은 계속해서 여성 개인이 사적으로 해결하고 부담해야 할 ‘무엇’이 된다.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헌법재판소에서 차별 여부를 판단할 때 중요하게 가지고 오는 공평이란 개념은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처우할 것을 원칙으로 한다. 그러므로 이미 다른 조건들을 다르게 대하지 않는다면 차별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여성은 이미 남성과 다른 몸을 가지고 소비문화로 진입한다. 이 다름을 반영하고 고려한 시스템이 마련되지 않는 한, 여성소비자로서의 차별, 피해의 문제는‘문제가 아닌 문제’일뿐이다. 송파구는 올 3월부터 구립수영장을 이용하는 여성들에게 이용요금 5% 할인 또는 5일간의 시설 이용권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구립 수영장의 변화가 어떠한 시장의 변화를 이끌어낼지 기쁘게 지켜볼 수 있게 되었다. 또 소비자보호원은 소비자피해보상규정에 월경으로 인한 시설 미사용을 소비자의 피해 유형으로 규정하고, 이를 보상하는 규정을 마련해 재정경제부에 전달했다. 재경부가 어떠한 결정을 내릴지 귀추가 주목된다.
김이혜연 ● 희망제작소 사회창안센터 연구원
영혼의 힘을 기르는 중. 으샤으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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