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3*4월호 [연재기획]Ⅱ.민우역사기행_1997 민우회 돌꽃, 지하철을 건드리다
2007년 3*4월호_연재기획
Ⅱ.민우역사기행
“복잡한 열차 내에서 승객에게 불편을 주는 행위를 하지 맙시다…”라는 지하철 안내방송을 들어본 적 있는지. 알고 보면 이 방송에 민우회의 역사가 들어있다. 민우회의 20년 역사 속으로 떠나는 <민우역사기행>의 첫 번째 여행, 1997년‘지하철 성추행 근절 캠페인’을 기억해 보자.
1997 민우회 돌꽃, 지하철을 건드리다
박봉 ●
“안내말씀 드리겠습니다. 복잡한 열차 내에서 승객에게 불편을 주는 행위를 하지 맙시다. 열차 내에서 옆 사람에게 혐오감을 주는 불쾌한 행위는 법에 의해 처벌을 받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지하철에서 이 방송을 들어본 적이 있는지. 알고 보면 이 방송에 민우회의 역사가 들어있다.
’97년 장충동 민우회시절, 회원들은 자주 지하철 성추행 대처 무용담을 풀어놓으며 울분을 토하곤 했다. 그 와중에 ‘돌꽃모임’1)으로부터 빈번한 지하철 성추행 근절을 위해 ‘지하철 성추행 방지를 위한 광고방송’이 지하철에서 나오도록 하자라는 활동제안을 받게 되었고 이 시의적절한 제안에 민우회는 ‘옳거니!’ 한 것이다. 우리들(민우회와 돌꽃)은 설문조사부터 시작하였다. 지하철 성추행의 일상적 피해경험을 알리고 방지방송의 필요성을 사전에 환기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1997년 12월 중순부터 1998년 1월 14일까지 여성 1,03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75.2%의 여성이 지하철에서의 성추행 피해경험이 있다고 하였고, 응답자 중 97.2%가 지하철 성추행 방지방송이 필요하다고 대답했다. 설문조사의 과정은 즐거웠다. 회원들은 직접 설문지를 가져가 자신의 사무실에서 돌리고 수거해 오는 성의를 보여주었고, 전화로 설문조사를 받은 회원들은 친절히, 시원시원히 답변해 주며 흥미로워했다. 그 밖의 해결책을 묻는 주관식 질문에도 다양한 대답이 나왔다. ‘승차권에 경고문을 넣자’, ‘포크나 바늘을 휴대하자’, ‘지하철 유리창을 이용, 남자가 뒤에 있을 때는 남자 쪽을 향해 서도록 하자’ 등. 주관식 설문에 그렇게 답변이 많았던 경우는 지금까지도 보지 못했을 정도로 여성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설문조사 후 민우회는 돌꽃모임과 함께 서울시, 서울 지하철공사에 지하철 성추행 방지를 위한 대책을 요구하면서 광고방송, 포스터, 스티커, 지하철수사대 확대, 비상벨 설치 등을 제시하였다. 비현실적인 ‘여성전용칸’이 아닌 실질적으로 효과가 있는 대책을 마련하라는 것이었다. 공사측에 광고방송의 적당한 문구를 만들어 제시하였고, 지하철을 타고 다니며 홍보물의 효과성을 높일 수 있는 위치를 관찰한 후 최적의 자리를 제안(국가안보기획부 광고자리를 제안하였다. 간첩 잡는다는 홍보스티커가 가장 좋은 자리에 붙여져 있기도 했지만 다른 마음(멀까?^^)도 좀 작용한 듯 하다)하기도 했다.
그리고 퍼포먼스와 언론보도도 진행하였다. 돌꽃모임이 먼저 신촌역과 이대역, 그레이스 백화점2) 앞에서 퍼포먼스를 벌이고, 그 후 민우회와 돌꽃모임이 함께 시청역과 을지로역에서 대대적인 홍보아래 퍼포먼스와 피켓팅을 벌였다. 그 때 뿌려졌던 민우회와 돌꽃모임, 지하철공사노조 명의의 전단지 내용을 잠깐 살펴보면,
다리를 쫙 벌리며 일부러 여성의 신체에 닿는 것도 성추행입니다!
<여성이 당하는 지하철 내 성추행의 종류>
술 취한 혹은 자는 듯 하면서 일부러 막 기대오는 경우/ 다리를 쩍 벌려서 여성의 다리에 닿게 해 여성이 계속 피하게 만드는 경우/ 손을 여성의 다리 위에 슬쩍 올려놓는 경우/ 뒤에 서서 뜨거운 입김을 노골적으로 뿜는 경우/ 자꾸 여성의 몸을 위아래로 훑어보는 경우/ 뒤에 서서 밀리는 척하며 일부러 성기를 여성의 엉덩이에 밀착하는 경우/ 러시아워 때 팔이나 손으로 슬쩍 여성의 가슴을 스쳐가는 경우(웃음까지 흘린다)/ 여자(들)에게 괜시리 호통치며 욕하는 경우/ 아예 자기 성기를 노출해 놓는 경우 등
언론의 관심이 높아지자 서울지하철공사는 면담을 수락하였다. 면담 결과 지하철공사는 1998년 2월 24일 ‘지하철에서의 성추행방지를 위한 캠페인’의 실행을 약속한다. 요구대로 방송(3월부터 육성방송, 11월부터 녹음방송)을 실시하고 포스터와 스티커를 제작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내용에 대해서는 ‘성추행은 범죄이며 법적인 처벌을 받는다’는 문안을 기초로 좀더 구체적으로 논의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민원이 많으면 재검토한다는 단서를 달더니 결국 우려하던 대로 시행 전날인 3월 1일, 지하철공사는 민원을 이유로 기존 문안을 대폭 고쳐 방송을 하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하였다. 그리고 3월 2일부터 방송이 시작되고 약 500장 정도의 포스터가 주요 역에 부착되었다.
애매한 방송문구, 눈에 띄지 않게 붙여진 포스터, 열차 안 공익광고문 게시 거부는 우리의 실망을 샀다. 특히 방송에 ‘성추행은 범죄’라는 핵심적 문구가 빠진 이유는 우리를 더욱 열 받게 했다. 방송 소식을 들은 시민들이 성추행이라는 단어가 시민의 정서를 해친다며 항의전화를 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격려전화는 한 통도 없었냐고 물었더니 한 통도 없다고 했다. 이런 거짓말… 우리가 사무실에서 회원들하고 했는데.) 또한 지하철 수사대에 성추행 피해 신고가 늘어났는데 성추행 방지 광고가 오히려 성추행을 조장하여 성추행이 증가한 것이라는 보도자료를 언론에 배포하기도 했다.
과연 성추행 현실이 시민의 정서를 해치는지, 성추행이라는 단어가 방송에 나오는 것이 시민의 정서를 해치는지, 성추행방지 방송에 대해 모든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보는 것이라고 하는데 그럼 간첩신고방송은 모든 국민을 잠재적 간첩으로 보는 것인지, 간첩이란 단어를 방송에 대고 하는 것은 선량한 시민 기분 안 나쁘게 하는지 물어볼 일이다. 지금의 방송을 들으면 ‘불쾌한 행위’란 말이 지하철 내에서 불쾌감을 주는 다종다양한 행위를 연상하게 하여 처음엔 이것이 ‘성추행’을 의미했다는 것조차 유추하기 어렵다. 예산상의 문제로 제외된 열차 내 게시물 부착(출입문 유리창에 붙어있는 기댐금지, 손낌조심 스티커에 성추행 금지 안내문을 적어 넣는 것)도 아쉬웠다. 다양한 디자인의 스티커를 모아가며 스티커를 제작하는 기획사까지 방문, 이런저런 도안을 신나게 고민하던 차라 더욱 그랬나 보다. 다시 민우회는 돌꽃모임, 학내 성폭력 근절과 여성권확보를 위한 여성연대회의, 성균관대, 국민대, 홍익대 등 16개 총여학생회와 함께 ‘지하철에서의 성추행 방지 캠페인 상황에 대한 항의 및 요구서’에 지하철공사의 논리의 허점을 짚고 다음과 같은 요구를 하며 강력히 항의하였다.
1. 열차 내 방송문구에 ‘성추행은 범죄’라는 것과 ‘법적 처벌’에 대한 내용을 반드시 명시하라.
2. 출퇴근 시간에만 한정되어 있는 방송시간대를 종일방송으로 확대하라.
3. 열차 내 공익광고 포스터를 제작 하여 모든 열차칸에 부착하라(여기에서도 성추행에 대한 내용이 명확하게 들어가야 한다).
결국 이 요구사항은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방송은 지금과 같은 내용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지하철에서의 성추행은 여전하다(2003년 472건-사당역 으뜸, 경찰발표). 그리고 지하철은 점점 더 늘어나고 연결되고 길어지고 있다. 8호선에 분당선에 이제 심지어 천안까지. 아마 전국으로 연결될 날도 얼마 안남은 듯 하다. 콩만한 한국. --;; 정확한 지하철 성추행 방지방송 요구. 민우회가 30주년을 맞이하는 날, 한번쯤 다시 해봐도 좋을 거 같다.
1) 각 대학에서 여성운동을 하는 활동가들이 모여 만든‘들꽃모임’에서 만난 5명의 여성주의자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만든 게릴라 여성운동 조직
2) 현재 신촌 현대백화점. 그레이스 백화점은 여자화장실 CCTV사건으로 유명해졌다가 곧 망했다.
박봉 ● ‘역사속의 민우기행’의 첫 테잎을 내가 끊은 것이 참 감격스럽다.
‘장단기 기억상실증’,‘ 머릿속의 큰 지우개’로 살아가는 내가기억을 더듬는 원고라니…
어떻게 썼을까? 기억재생에 도움을 준 오이, 명숙 쌩유.
들꽃모임의 권김현영 인터뷰
1. 왜 그런 사업을 기획하게 되었었는지 기억이 나나?
페미니스트 까페 고마에 앉아 있다가, 지하철과 버스 등에서 성추행 경험을 얘기하는 경우들을 종종 듣게 되면서,
이 문제를 이슈파이팅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지하철이 공사이기 때문에
문제제기 할 수 있는 통로 확보가 용이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지하철에 포커스를 맞추기로 했다.
돌꽃모임 5명과 들꽃모임의 푸하와 나 등이 모여서 함께 했고
민우회에 지하철 쪽과 관련된 협상(?)등을 하는 일을 함께 하자고 제안하고, 퍼포먼스 등을 짜게 되었다.
2. 가장 기억에 남는 재밌는 혹은 기쁜 일은?
기억에 남는 일은 이대역 앞에서 퍼포먼스를 할 때,
당시 가해자 역할을 맡았던 땐싸에게 여고생들이 “저 나쁜 놈”이라며 물건을 던지는 거였다.
반응은 좋아서 매우 좋았지만, 한편 땐싸에게는 지울 수 없는 마음의 상처....(크크)가 되었다.
퍼포먼스에 대한 간단한 시나리오를 써서 지역에 있는 대학 학생들에게 보내주어,
각지에서 그런 퍼포먼스가 일어나게 된 것도 재미있는, 의미있는 일이었다.
3. 가장 기억남는 안 좋았던 일은 무엇인지?
모 시사 교양 프로그램에서 우리더러 나와서 그 퍼포먼스를 직접 하라고 한 적이 있었다.
거절했더니, 그 작가인지 피디가 우리에게 무책임하다고 뭐라 그랬던 것.
그런 보여주기식 얄팍함 말고 다른 기획을 찾아볼 생각은 안하고 무책임하다니!
언론으로서 자신들이 더 무책임했음에도 불구하고!!!
4. 지금 다시 그 사업을 한다면 어떻게 다시 해보고 싶나?
지금 다시 한다면, 애매하게 처리된 경고방송 “불쾌한” 이 부분에 대해 패러디를 해서,
직접 방송처럼 녹음해서 들려주는 라디오 게릴라 활동 같은 것을 해보면 재밌겠다...고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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