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3*4월호 [연재기획]Ⅰ.페미니스트로 산다는 것_수다좌담
2007년 3*4월호_연재기획
Ⅰ.페미니스트로 산다는 것
페미니스트’라는 이름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건 그리 녹록치 않은 경험일 것이다. 페미니즘을 필요로 하는 사회, 그러나 페미니스트가 낙인이 되는 사회, 그런 사회에서 페미니스트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면서 각자 어떤 경험을 하게 되는지, 그리고 그 경험을 어떻게 해석하고 정리해 내고 있는지 귀를 기울여 보자. 이번 호의 내용은 페미니스트로서 살아가는 것에 대한 정답과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각자 자신의 삶에 어떠한 의미인지에 대해서 소통하는 과정 자체에 의미를 두고 기획되었다.
수다좌담 ‘페미니스트’로산다는것
2월의 어느 날 땅거미가 내려앉은 시간, 5명의 민우회 회원들이 모였다.「모람터놓기」회원자유게시판에 올려진‘페미니스트로 산다는 것’체크리스트1) 를 보면서 각자‘페미니스트’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면서 겪었던 이야기를 나누었다.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갔으나 지면의 한계로 인해 내용을 다 싣지 못한 점에 대해 참가자들에게 양해를 구한다. ● 맨발
수다참가자 ● 달리, 맨발, 소다, 신나, 현정 / 정리 ● 맨발
1)「 함께가는여성」편집팀에서는 페미니스트로 살아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 서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하여 한번쯤 해 봤을 생각이나 상황들을 모아 보았다. 민우회 홈페이지 모람세상 게시판에 올려져 있다.
2) 3. 나는 페미니스트들과 함께 있을 때“페미니스트답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을까봐 혹은 그들로부터 배척받을까봐 두려워 나의 생각이나 감정에 솔직하지 못할 때가 있다.
3) 5.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페미니스트’라고 밝히면 나를 색안경을 끼고 바라볼까봐 염려가 된다.
4) 1. 나는 내가 여자인 게 좋다.
5) 16. 만일 내가 다시 태어난다면 여성이건 남성이건 어느 쪽이든 다 좋다.
첫 느낌 : 혼란과 딜레마
소다 : 저는 체크리스트 항목 중에 가장 필 꽂혔던 게 3번2)하고 5번3) 항목이에요. 재작년에 큰 맘 먹고 민우회에왔는데, 낮에는 회사 사람들 만나고 1주일에 한 번씩은 저녁에 민우회 사람들 만나잖아요. 가장 혼란스러웠던 부분은 그 괴리가 너무 크다는 거였어요. 아주 밝은데 있다가 깜깜한데 가면 더 깜깜한 거 같고 깜깜한데 있다가 밝은데 가면 더 눈이 아리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에요. 회사 사람들은“네일 아트 어디가 이쁘더라”,‘ 좋은 남자’만나고‘명품 가방’사는 이야기를 하는데, 여기 오면‘제3세계, 성폭력, 한부모가족’, 이런 얘기들을 하는 거죠. 민우회에 오면 나도 네일아트 갔었다고 얘기도 못하고(좌중 웃음), 회사에 가면 명품가방 사는 데 같이 가고 싶어도“나는 안 갈래”라고 하게 되고. 양쪽 모두 은근히 재밌고 부러운 점이 있는데, 이 두개가 너무 극단적이니까, ‘난 페미니스트가 아니라 아웃사이더 같다. 이도 저도 아니고 개념이 모호한 지조없는 펄럭귀인거 같다’는 딜레마에 빠졌었어요.
맨발 : 그런 딜레마를 어떻게 처리하셨나요?
소다 : 밝은 데와 어두운데 양쪽에 익숙해졌나 봐요. 처음 민우회 왔었을 때는 그게 너무 혼란스럽고, 이쪽에서는 괜히 죄책감이 느껴졌다가 저쪽에 가서는 찔렸다가 했었는데, 지금은 그냥 여기 오면 여기 세상에 맞추고, 거기 가면“네일아트 어디서 했어?”하고 물어보고… 적응이 됐어요.
현정 : 그런 차이를 소화하는 과정이 다들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있는 회사는 굉장히 보수적인 경향의 사람들이 많아요. 하지만 힘을 실어주는 단체가 있기에 제가 느끼는 것에 대한 믿음 같은 것이 생기거든요. 그래서 사무실에 가면 화가 나는 거에요. 하지만 말로 표현할 수는 없어서 화를 삭이는 것이 힘들었는데 지금은 화를 내지 않는 걸로, “그래, 여긴 그런 분위기고 나는 이렇게 생각해”라는 식으로 되어가는 것 같아요. 좋은 건 아닌 것 같지만 소화를 하는 과정이 있더라구요.
‘여자로서의 나’를 바라보는 방식
신나 : 제 마음이 가장 찔렸던 것은 1번4)이었어요. 저는 여자인 게 싫었어요. 어릴 적부터 여자라서 별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 여자이기 때문에 이렇게 저렇게 맞춰야 하는 게 많다는 것에 대한 압박도 있었던 것 같아요. 게다가 성격이나 생김새가 별로 여성스럽지 않아서 콤플렉스가 많이 있었어요. 어릴 적부터 여성성과는 거리가 멀었고 왠지 내가 남자들의 공간에 속한 사람인 것 같고, 그 질서가 더 편하고. 그러면서 여자들의 세계가 무섭다고 해야 하나? 내가 여자인 게 별로 이로울 게 없는 것 같아서 여자인 게 싫었어요. 그런데 ‘나는 페미니스트야’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이 여자인 나를 긍정하게 된 계기였던 것 같아요. 페미니즘에 대해 공부를 하고 민우회에 들어오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나는 여성이구나. 여성인 게 나쁘지 않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그러면서 억눌려 있었던 감정들, 여자들이 하는 걸 해 보고 싶다는 걸 자유롭게 받아들이게 됐던 것 같아요.
현정 : 저는 16번5)을 보는 순간‘정말 여자로 태어나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럼 남자로 태어나고 싶은 거에요?) 그게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여자로서 살아가는 게 너무 힘들어요. 이런 사회구조라면 태어나고 싶지 않아요.
달리 : 저는 어릴 적에 별로 격려 받고 자란 기억이 없어요. 대학 졸업하고 나서 다른 대학교 총여짱들 모임이나 들꽃모임을 하면서 여성주의 활동을 하는 여성들을 만나게 됐고, 그때부터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지하철에서 성추행 당하거나 목격해도 적극적으로 대응한 적이 없었는데 친구들 2명과 같이 성추행하는 남자를 혼내준 적이 있었어요. 친구들과 같이 있으니까 용기가 나는 거에요. “야! 너 뭐야!”소리를 질렀더니 감추면서 도망가요, 잡았지. 그랬더니 쌍욕을 하는 거야. 공익이 보이길래 같이 경찰서 가고.
(현정 : 고개를 돌리던 수동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몸을 움직여 잡았다는 게 대단한 거 같아)
까칠함, 그리고 관계에 대한 고민
달리 : 예전에 다녔던 회사에서는 여사원들은 대리나 과장을 달아도 사장이 ‘미스 정’이렇게 불렀어요. 그래서 스트레스 만빵으로 받고 다녔어요. 그러다보니 내가 신경을 건드리게 되거나 싸우게 될까봐 항상 긴장되지요. 나 혼자 바꾸기에는 내 힘이 너무 미미하니까. 어느 부분은 포기하고 체념하게 되더라구요. 그런 부분은 오히려 포기를 하니까 스트레스를 덜 받아요. 그런데 우리 집에 가서는 뭔가 바꿔 보려고 시도하곤 해요. 최근에 친정에 가서 호락호락 캠페인 얘기를 했는데, 오빠가 갑자기 신경질을 내면서 “너만 입 다물고 있으면 집안이 조용한데, 너 때문에 맨날 시끄럽다”고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내가 안정된 틀을 깨는 그런 사람이 되는 거에요.
신나 : 맞아! 나도 그랬어요. “왜 너는 보통사람들처럼 안 살고 비정상이야?”항상 그런 소리를 들어요. 나는 나로 살고 싶고 나를 긍정하고 좀 더 독립적이고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고 살고 싶은 것뿐인데요. 하지만 나 혼자서 골방에서 사는 게 아니라면 누군가를 만나서 문제들을 풀면서 나가지 않으면 안 되잖아요. 그런 과정을 계속하려다 보니 너무 부대끼는 거야. 나도 상처를 받고 그 사람들도 문화적 충격과 상처를 받고…. 그런저런 감정들을 갖게 되니까 그 까칠함이라는 게 나에게도 상처를 주는 거에요.
소다 : 제 경우엔 시댁식구들과 기존의 룰을 바꾸는 걸 도모하고 현실화시켜야 한다는 전략에 대해 고민을 해요. 명절 때 남자들은 누워있고 여자들이 상보고 그런 게 싫어서 바꿔 봐야겠다, 그러려면 내가 뭔가를 도모해야 하지 않겠나, 그래서 각본을 짜고 명절 열흘 전에 형님들에게 전화를 해요. “이번에는 반찬도 나눠서 만들어오고 나머지는 밀가루 가져와서 남편들하고 같이 부치면 어때요?”하고요. 형님한테 이야기할 때도 까칠하게 얘기하면 안 되고 애교스럽게 얘기해야 해요. 명절 당일 날 형님들이 아주버님들한테 전 부치자고 말해요.
그전에 저는 윷놀이를 한다던가 노래방을 간다던가 아주버님들을 기분 좋게 만들어 놓죠. 이게 고객한테 접대하는 것 같은 거에요. 명절 끝나고 나면 일은 안했는데 정신적 신경을 더 많이 써서 너무 피곤한 거야. 나도 오지랖이다. 내가 이렇게 바꾼다고 달라지는 것도 아닌데…. 이런 지난한 싸움을 계속 기획해야 하는 짜증도 만만치 않죠. (그래서 전은 같이 부쳤어요?) 예. 역할분담을 해서 이쪽은 만두 빚고…. 그런데 그 과정에서 눈치도 많이 보이고, 신경전도 있고요. 명절이 끝나면 남편은 “너는 왜 이렇게 오버냐? 그렇게 유별을 떨어야해?”그러고, 부부싸움도 하고.
회사에서도 그래요. 손님들이 왔을 때 여직원들에게“커피 좀!”하기가 더 편해요. 그런데 남자 직원들만 있으면 “김대리! 커피 좀!” 하기가 너무 미안해서 그냥 내가 탈까 한다니까. (하하하) 그리고 나서 자책해요. 내가 왜 그랬을까하고. ‘다음에는 김대리 시키자’다짐하고. 그런데도 막상 여직원이랑 남자직원이 있으면 여직원 시킨다니까.
신나 : 예전에는 내면이 좀 더 커지고 성숙해지면, 까칠해지지 않고 둥글둥글하게 포용하면서 갈 수 있지 않을까? 그게 진정한 운동가의 모습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었는데 요즘에는 그게 아닌 거 같다는 생각이들어요. 그냥 까칠하게 살아야 할 거 같아.
페미니스트라는 낙인
현정 : 소모임에서 종교를 가진 사람들처럼 페미니즘을 퍼뜨리려고 하지 않는 문제에 대해 의견이 엇갈린 적이 있었어요. 제가 그랬어요. 현실적으로 너무 어렵다고. 페미니스트 조직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달리, 나처럼 공식적으로 페미니스트라고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 속으로만 그런 사람들이 겉으로 드러날 때 얼마나 충돌이 심한지 알고 있기 때문에 꺼낼 수 없다, 전도하기 너무 힘들다고 했어요. 페미니스트로 드러내놓고 사는 것은 굉장한 무리인 것 같아요.
소다 : 내면에 두려움이 있어요. ‘페미니스트’라고 알려졌을 때 색안경을 끼고 볼 거 아녜요? “너 페미니스트면서 왜 하이힐 신었어?”그러면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 얘기하는 과정에서 그 사람과의 관계가 틀어질 거 같은 두려움이 있어요.
달리 : 민우회 활동을 하면서 나도 뭔가‘조직을 해야 한다’ 는 압박감 같은 게 있어요. (하하) 출산한 다음에 친구를 좀 사귀고 싶어서 인터넷에서 아파트 동호회 모임을 통해 면생리대 만들면서 육아정보를 나누는 식의 모임을 만들었어요. 1주일에 한번씩 모이는데 분명히 일상 속에서 소통할 수 있고 고쳐나갈 수 있는 게 있어요.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조언할 수도 있고….
현정 : 정말 많은 여성들이 다 그런 감정을 가지고 있는 거 같아요. 비슷한 불만이 쌓여있고 그래서 소통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페미니스트라고 말하면 딱 벽이 생기는 느낌….
달리 : 그래서 난 아직 민우회 회원이라고 얘기를 안했어요. 페미니스트라면 낙인 찍히는 게 있어서…. 남편 친구들 한테 ‘드센 여자’, “야! 너 OO이랑 사는 게 피곤하지 않냐? 네가 일 다 하지?”그런 소리 듣기 싫은 거에요. 한 두 번이지. 그것도 나한테 대놓고 얘기하는 게 아니라 남편한테 얘기해요. 그게 싫었어요. 내가 소통하고 싶은 사람이 아닌 사람한테 주절주절 얘기해야 하는 상황이 너무 싫어서 조심스럽게 접근하게 되는 거죠.
수다모임을 하고 나서
맨발 : 다들 어려운 발걸음을 내 주셨는데, 마무리로 오늘 이야기를 나누고 난 느낌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신나 : 내가 혹시 페미니즘을 모르고 결혼을 했거나, 아니면 다른 삶을 생각해 보지 않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를 생각하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그 만큼의 똑같은 무게로 자신이 까칠해지는 것이 힘들고 두려워요. 황량한 벌판에 혼자만 버려 진 거 같은…. 한편으로는 나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기에 자신감이 있고 무엇이 닥쳐와도 부딪혀야겠다는 생각은 하지만 그것이 나에게 미쳐올 파장, 타인에게 받을 상처, 세상을 향할 독설들을 생각하면 굉장히 두렵고 불편하거든요. 하지만 그것을 계속 가지고 갈 수밖에 없는 것 같고, 그 두려움을 내가 가지고 있는 만큼의 자신감과 위안으로 이겨나갈 수 밖에 없는 게 페미니스트의 삶인 것 같아요. 결론은 그래도 ‘까칠하게 사는 게 낫다. 인정하고 까칠하게 살자.’
소다 : 저는 아직도 내가 페미니스트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일반 사회에서는 페미니스트인데 여기서는 야매인거 같은 거죠. 상대적 야매…. 이 모임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남자니까 여자니까 이래야 해’라는 고정관념에 저항하듯 ‘페미니스트이니까 이래야 해’라는 우리 안의 감옥을 스스로 만들고 그걸로 인해 마음이 짓눌려 있는 것은 페미니스트로서의 진정한 자아찾기를 위해서 썩 바람직한 방법은 아니지 않나…. 그것을 좀 더 긍정적으로 승화시키는 방법을 내 안에서 모색하고 페미니스트들과 소통하고 이런 시간을 목적의식적으로 가져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현정 : 페미니스트라서가 아니라 살아가면서 겪는 문제들을 많은 사람들과 함께 얘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더 많은 사람들과 마음을 열고 얘기를 할 수 있었으면 해요. 어떤 교육을 받은 페미니스트가 아니라도 문제를 느끼면 좀 바꿔 보면서 살아보자는 그런 분위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수다를 떨고 나도 마음이 편하지는 않아요. 답답해요.
달리 : 페미니스트라는 단어를 입에 올린 게 정말 간만이에요. 아이를 낳은 지 19개월 정도 됐는데, 집에 있다 보니 아이를 돌보는 일이 사회적으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스스로도 과히 즐겁지 않은 것 같고, 지금 에너지가 많이 떨어져 있는 때에요. 그러다보니 근래에는 이 주제에 대해 생각해 본 적도 없었고요. 아직은 소박하지만 오늘부터 고민을 해볼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거죠. 나는 이렇게 간다고 했는데, 요만큼 왔다가 놓쳐버린 듯한 느낌이거든요.
맨발 : 페미니스트의 땅에 들어가면 치열해질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소다가 ‘감옥’이라는 표현을 쓰셨는데, 나를 보호해 주기도 하고, 답답하게 하기도 하는 어떤 마음의 감옥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각자의 감옥과 감옥이 서로 소통하는 것, 아니면 각자의 감옥을 조금씩 넓혀 나가는 것, 페미니스트들이 함께 이런 방법들을 좀 더 찾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늦은 밤까지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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