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5*6월호 [모람풍경]엄마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
[2007년 5,6월호_모람풍경]
엄마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
●이은숙
내 엄마 우 여사는 올해 일흔 살이다. 그녀의 딸인 나는 마흔이다.
삼십년이라는 세월의 강폭은 짧은 것 같아도 넓고 깊다. 이제 그녀와 나의 이야기를 하려하니 가슴 저 밑바닥에서 울컥하는 뜨거운 것이 목젖을 자극한다.
그동안 내게 있어 엄마는 가능하면 안보고 싶은 존재였다. 엄마로부터 받는 상처가 싫어서 안보는 것이 상책이라는 생각을 하게했던 사람이 바로 우리 엄마였다.
경제적으로 무능했던 아버지는 늘 엄마를 화나게 했고 그 화풀이 대상은 자식이 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항상 엄마의 잔소리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그것은 고스란히 상처로 남았다. 사업이 망하면서 극에 달한 엄마의 분노와 폭언을 견디지 못한 아버지는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우다 들켜 지금껏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십년은 족히 되는 세월이다.
아들이 둘 있어도 잇단 불행으로 큰 며느리는 사고로 죽고, 작은 며느리는 사고로 인해 평생 전신 마비의 장애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 그런 자식들의 불행을 안고 살기에는 너무나 힘드셨던가 보다. 자신의 욕망도 버리지 못하고 자식이 욕망을 채워줄 희망도 없으니 끓어오르는 분노를 삭이지 못해 자식들을 미워할 수밖에 없었다. 딸들은 그래도 엄마를 이해하려고 애쓰지만 아들들은 자꾸 엄마와 멀어지기만 할 뿐이었다. 엄마는 그런 아들들에게 들은 말을 삭이지 못해 악을 쓰며 원망을 했다.
엄마는 딸인 나에게 고스란히 엄마의 감정을 전달하곤 했다. 처음엔 엄마를 위로하고 그 다음엔 엄마를 이해하려 하고 그런 다음엔 엄마를 진정시키려 애쓰지만 엄마가 쏟아놓는 그 말들을 듣고 있는 것은 너무 괴로운 일이었다. 그렇게 끊임없이 자식에게 상처를 주는 엄마가 너무 싫어서 의도적으로 피하게 되기도 했다. 자식이 엄마의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못하는 존재로 낙인 찍혀 원망의 대상이 된다는 건 참으로 비참한 일이었다. 그러면서 언제부터인지 난 더 이상 엄마를 이해하기보다는 원망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엄마의 지나친 욕심 때문이라고 생각하니 자식을 감싸주지 못하는 엄마가 얼마나 원망스럽고 싫던지. 잊으려 애썼던 지난 상처까지 고스란히 되살아나 우리는 생채기를 내며 폐부 깊숙이 서로를 박박 긁어 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드라마나 주변에서 엄마와 다정히 있거나 엄마를 지극히 그리워하는 모습을 볼 때면 나는 죄책감에 괴롭고 우울했다. 엄마가 다른 집 자식들의 얘기를 하면서 은근히 우리에게 강요하는 뉘앙스를 듣는 것도 고통이었다. 이러한 죄책감은 피해의식과 더불어 무섭고 소름끼치는 것이었다. 가끔 집에 와서 주무시기라도 하면 고된 삶에 뼈 관절들이 아프다며 밤새 숨소리가 거칠다. 힘들어하는 엄마 모습이 불쌍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원망스러웠다. 그 이율배반적인 감정들이 나를 괴롭게 했다. 어쩌다 우리 모녀가 이 지경까지 되었는지 안타까울 뿐이다. 정리 되지 않은 마음과 대면하자니 힘이 든다. 잠시 숨고르기가 필요할 것 같다.
내가 민우회 활동을 한지 이제 7년이 넘어서고 있다. 그동안 내적으로 성장한 자신을 보면서 이제 엄마와도 화해를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우연히 접한 상담공부가 날 위로했고, 여성학 공부가 엄마도 한 여성일 뿐이라는 걸 알게 했다. 엄마로만 바라볼 때는 모든 게 용서가 안 되지만 그냥 한 사람인 여성으로 만나면 이해 못할 상황도 아닌 것이다. 올해 노동자의 날에 난 내 자신에게 책을 선물했다.‘ 엄마 미안해’라는. 그 책을 통해 나는 엄마와 화해하는 법을 알고 싶었고 엄마와 다시 만나고 싶었다.
내가 왜 그토록 엄마를 떨치지도 못하고 용서하지도 못했는지 나는 이제야 알게 되었다. 난 엄마가 진정으로 내게 아니 자식들에게‘미안하다’고 말해주기를 기다리며 그래야만 하는 줄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자식과 어떻게 관계를 풀어야 하는지도 모르는 엄마에게 말이다. 그러나‘미안하다’는 말을 듣지 않더라도 난 엄마를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았다. 이제야 엄마가 내 가슴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나보다도 더 휑한 가슴을 품고 살아야 했던 엄마가 이제 살아갈 날이 많지 않음을 알아 버린 것이다. 그동안 상처만 받아왔던 나는 모처럼 시원스레 눈물을 흘릴 수 있었다.
창피하다며 환갑도 하지 못한 엄마는 이제 칠순이다. 언니, 엄마, 나 이렇게 여자 셋은 그동안 풀지 못한 실타래를 풀기 위해 여행을 계획 중이다. 그동안 타들어간 사막과도 같은 가슴은 사막에 가서 놓고 와야겠지만 비용과 거리의 이유로 행선지 후보에서 제외시키기로 했다.
이 글을 쓰는 시간은 내게 치유의 시간이기도 했지만 또한 고통스런 시간이기도 했다. 아는 것은 곧 상처받는 것이라고 했던가. 상처받기를 더 이상 두려워하지 말아야 되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동안 살아왔던 시간만큼의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지만 지금이라도 출발선에 선 나를 응원해 주기를 기대하며 내 엄마 우 여사에게‘사랑한다’는 말을 처음으로 써 본다. 엄마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
● 이은숙 : 원주여성민우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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