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5*6월호 [평동사무실에서]편식의 즐거움
[2007년 5,6월호_평동사무실에서]
편식의 즐거움
● 먼지
어느 날부터 고기를 먹지 못하게 됐다. 그러자 흥미로운 일들이 일어났다.
우선 돈이 굳는다. 한 단에 1000원인 쪽파와 한통에 1000원인 양배추, 1000원짜리 애호박 하나면 일주일을 먹고도 남는다. 혀도 변한다. 풀 먹는 생활이 지속되면서 야채들이 가진 원래의 심심한 맛에 점점 더 길들고 있다. 사 먹는 음식들의 자극적인 맛에 점점 더 끌리지 않는다. 이런 변화는 즐겁다. 고기를 먹지 않는 생활은 아슬아슬하게 지켜가는 결심이나 금기가 아니라 나의 새로운 욕망이 되어 가고 있다. 다이어트 못하게 하는 게 여성주의인 줄 알았다가 여자들의 몸이면 어떤 몸이든 예뻐 보이는 순간을 맞았을 때처럼. 지식으로 배워 말하는 것보다 몸이 알고 그렇게 사는 것, 정치적으로 검열하기 전에 욕망이 달라지는 것을 느끼는 것은 즐겁다.
그러나 음식을 직접 해 먹거나 종류를 선택할 수 없는 상황들이 종종 생긴다. 고기는 흔하고 쉬운 음식이다. 만만한 회식 장소가 고기집이고, 만만한 야식이 통닭이다. 힘내라며 사주는 특별한 밥 한 끼는 특별하기 때문에 고기인 경우가 많고, 행사를 준비하며 먹기 위해 단 체로 주문한 야채김밥에는 햄이 들어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고기를 먹지 못하게 되자, 나는‘고기를 안 먹어서요’라고 일일이 자신의 예외성을 확보해야 하는 사람이 되었다. 더 흥미로운 일은 여기서 발생한다.
처음에는 단지 설명했다. 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나를 설명하면, 모두들 자연스럽게 나를 인정해주었다. 고깃집보다 더 비싼 굴 전문점에서 밥을 사주는 사람도 있었고 회식 장소도 그냥 고기집에서 비빔밥도 파는 고기집으로 바뀌었다. 야식으로 통닭을 먹을 때면 골뱅이 소면도 함께 주문한다. 단체 주문한 김밥에서는 햄을 빼고 먹었고 대신 두 줄을 먹었다.(물론 햄먹던 시절에도 두 줄을 먹긴했다.) 이런 채로라면 불편할 것이 전혀 없을 것 같았다.
채식주의는 정치적 입장이다. 어떤 이는 대량 사육되는 동물의 몸들을 홀로코스트에서의 인간의 몸, 여성의 몸을 육체로만 이용하는 강간에 비유하기도 하고,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명제 이래 이성이 개발되지 않은 동물을 지배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인간을 반성하기도 하고, 사유하지 않지만 살아 있음 자체로 충만한 동물의 감각을 오히려 인간이 회복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내 편식의 출발이‘동물을 존중하고 인간을 성찰하자’는 정치적 의제는 아니었다. 현재의 나에게는 풀 먹기 좋은 생활이 투쟁해서 공동선으로 획득할 만큼 절박하거나 더 옳은 것은 아니다. 그래서 나는‘편식’이라는 말로 내 식성을 취향의 문제로 명명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편함은 발생한다.
풀 먹는 생활이 지속되면서 고기를 보는 것, 고기 냄새를 맡는 것, 고기가 씹히는 것을 보는 것 등등도 점점 싫은 일이 되어 가고 있다. 이제 단지 다른 선택지 하나를 옵션으로 마련하는 것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상황이 발생한다. 비빔밥은 있지만 회식 장소는 고기집이다. 골뱅이 소면이 있지만 통닭 포장을 뜯는 순간 사무실은 닭 냄새로 가득 찬다. 고기를 먹는 것이 즐거운 이들과 어떻게 함께 해야 할까? 취향의 경합 역시 정치적인 의제일 수 있음에 대해 더 구체적인 말들을 만들어야 할까? 취향을 경합하게 만드는, 그러니까 모두가 한 자리에 모여 뭔가를 먹으며 관계를 확인하는 방식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자고 말해야 할까? 아니면 다수의 취향과 다른 취향을 가진 한 사람이 회식을 빠지고 야식 시간에도 동참하지 않는 것을 자연스러운 일로라도 만들어 가야할까?
나는 세번째 안을 선택하고 있다. 그러나 별로 자연스럽지는 않다. 고기를 먹어야 힘이 나는 사람들이 고기집을 뒷풀이 장소로 잡는다. 함께 고생한 행사를 끝낸 뒤에 뒷풀이에 빠지려는 사람을 아쉬워서라도 당연히 붙잡게 된다. 그러나 편식자는 애초에 초대받을 수 없는 자리에 초대받았다. 그래도 결국 빠지겠다면 기분좋게 인사하며 헤어지지만 가는 사람도 남은 사람도 마음은 편하지 않다. 고기가 흔해 빠진 세상에서 식성이 다른 사람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배려 받는 사람이 되는 것에 대한 불편함을 느낀다.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들도‘결국 함께 하지는 못했다’는 혹은‘충분히 배려하지 못했다’는 불편함을 가질 것이다. 물론 그 정도는 나눠 가져야 하는 몫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아직은 여기까지이다. 이 불편함을 함께 감당하는 방식이 아마 나와 당신의 관계를 달라지게 할 것이다. 불편함은 서로를 도전시킨다. 변화를 낳는다. 불편함이 즐거운 이유이다.
● 먼지 : light my du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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