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5*6월호 [쟁점과현안]지속가능한 빈곤을 강요하는 한미FTA
2007년 5,6월호_쟁점과현안
지속가능한 빈곤을 강요하는 한미FTA
● 이원재
노무현 정부가 밀어붙이기식으로 한미FTA를 타결한지 한달이 넘었지만, 한미FTA를 둘러 싼 열기(?)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아직도 협상내용을 공개하지 않고 있는 정부와 협상단 덕분에, 협상 내용에 대한 최소한의 사실 확인조차 한국 사회에서는 대단한 이벤트가 되어버렸다. 정부의 어설픈 비밀주의가 한미FTA의 흥행에 한몫하고 있는 셈이다.
타결 직후 정부의 일방적인 홍보 내용을 받아쓰기하며 자유무역의 장밋빛 미래를 예찬하던 언론도, 이제는 협상 내용의 문제점과 향후 동향을 주시하느라 분주하다. 하지만 재미있는 사실은, 한미FTA에 대한 많은 내용들이 언론을 통해 실시간 중계되고 있지만 정작 그 실체에 대한 이야기는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이다. 도대체 한미FTA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먼저 한미FTA의 실체를 말하기 위해서는 현재 타결된 한미FTA의 협상 내용을 객관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하지만 정부와 협상단은 한미FTA를 타결한 지 한 달이 넘은 지금까지도 협 상 내용의 공개를 노골적으로 회피하고 있다. 지난 1년 내내 협상 전략이라는 핑계로 내용 공개를 회피하더니 이제는 협상이 타결되었음에도 온갖 변명을 늘어놓으며 협상 내용의 공개와 평가를 가로막고 있다.
물론 지금까지 공개된 내용만으로도 전체적인 평가는 충분히 가능하다. 정부의 주장을 그대로 믿어준다고 할지라도, 한미FTA 협상 결과는‘피해는 매우 구체적이고 명확한데, 이익은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모호하다.’협상 내내 정부와 협상단은‘윈윈’,‘ 빅딜’, ‘중간수준의 FTA’등 온갖 수사를 동 원했지만 결국‘한국은 최대한의 개방을 하고 미국은 최소한의 개방을 한 불평등하고 비상식적인 협상’으로 마무리되었다.
정부는 미국산 쇠고기, 의약품, 스크린쿼터를 비롯한 4대 선결조건은 물론 사상 최악의 농업 포기 정책, 문화 공공성 파괴 정책 등에 합의한 반면, 정작 이익이 창출될 것으로 강조했던 자동차, 섬유 등은 형식적인 관세철폐에서 단 한 발짝도 나가지 못했다. 더욱이 협상 기간 동안 쟁점이 되지도 못했으나 노골적인 퍼주기 협상으로 상상 이상의 피해가 예상되는 지적재산권, 금융 및 투자 분야 등을 고려한다면 한미FTA 협상은 역사상 최악의 국가 협상으로 기억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더욱 심각한 것은 한미FTA가 단순히 개별 협상 내용이나 업종의 이해관계를 넘어 우리의 정체성과 미래를 위협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미FTA로 대변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노골적으로‘인간보다 기업을 위한’,‘ 생명보다 이윤을 위한’정책이다. 정확하게 한미FTA는 한국과 미국이라는 개별 국가의 국익이 아니라 국적조차 없는 초국적 자본의 이윤을 위해서만 존재한다. 이 과정에서 강조되는‘자유무역’이란 인간을 위한 자유가 아니라 초국적 자본을 위한 자유일 뿐이다. 초국적 자본의 자유 앞에서 인간의 정체성이나 생명 등은 존중하고 배려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이윤 창출을 위해 소비하고 거래해야 할 상품일 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한미 FTA 협상의 세부적인 내용을 넘어, 한미FTA라는 허구적인 자유무역 테제를 통해 관철되고 있는‘살인적인 경쟁사회, 삶의 질 파괴’에 반대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현재 제기되고 있는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재개, 자동차 세제 개편 문제, 농업 개방 문제 등은 단순한 개별 업종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생존권, 건강권, 환경권 등과 밀접하게 연계된 심각한 사회적 의제들이다.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의 문제는 보수 언론의 주장처럼 단순히 한우 농가들의 피해 차원에서 접근할 문제가 아니다. 이는 한미FTA 협상 과정에서 언급되고 있는 LMO(유전자 변형 생명체) 문제 등과 함께 우리의 생명 자체를 위협하는 심각한 식품안전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다시 말해 현재 정부와 초국적 자본들은 광우병이라는 거대한 인류의 재앙을 단순하게 쇠고기 값 인하의 차원에서 바라보고 있는 셈이며, 이는 초국적 자본의 이익을 위해 질병의 세계화를 묵인하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또한 자동차 세제 개편과 농업 개방 문제 역시 단순히 경제적 이해 당사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환경, 식량주권, 국가 공공정책 등과 관련된 매우 중요한 사회적 권리가 침해되고 해체되어 가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지난 2월 한미FTA 협상을 기습적으로 개시하면서 노무현 대통령은‘사회적 양극화 해소, 일자리 창출’을 한 미FTA의 주요한 정책 목표로 강조 또 강조하였다. 하지만 협상이 타결된 지금 이러한 정책 목표의 달성 여부와 그 구체성에 대한 내용은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한미FTA 협상 결과 그리고 이 과정에서 정부가 추진한 한국 내 자발적 자유화 조치 등은‘사회적 양극화의 가속화, 비정규직과 고용 불안정의 확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한미FTA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교훈은 명확하다. 협상의 개별 내용과 업종별 이해를 넘어 자유무역 제도는 결코 시민과 민중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한미FTA를 비롯하여 초국적 자본을 위해 고안된 모든 자유무역 제도는‘살인적인 경쟁사회’와‘지속가능한 빈곤’으로 우리를 이주시킬뿐이다.
이원재 ● 문화운동가이며 문화연대 공동사무처장, 한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 공동상황실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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