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5*6월호 [쟁점과현안]남성교사할당제 도입, 누구의 욕구인가?
[2007년 5,6월호_쟁점과현안]
남성교사 할당제 도입, 누구의 욕구인가?
● 신기루
인간을 구분하는 가장 유구하고 전통적인 기준은 여성인가, 남성인가이다. 그 구분을 근거로 이어지는 일련의 제도, 관습, 문화, 인식은 그대로 차별이라 불러도 좋았다. 비정상적이라는 판단, 불쾌한 감정에 대한 근거로 가장 납득하기 어렵고 고리타분한 근거 또한 여성과 남성의 이분법이다. 문제로 부각되는 사안에 대해서는 누가 이것을 문제로 보는지, 어떤 맥락에서 문제가 되는지에 대해 설득력 있는 근거가 필요하다. 교사 중 여성이 너무 많아 문제라고 한다. 이것은 정말 문제인가?
통계적 불균형을 바라보는 두 개의 시선
서울시 교육청이 남성교사 채용할당제를 추진하여 논란이 되었다. 지난 4월 초 서울시 교육청은 각 언론사에 보낸 보도 자료를 통해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에서 논의 후 교육인적 자원부에 건의하여 남성교사 채용할당제를 전국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서울시 교육청은 연도별 여교원이 크게 증가하고 있고 저연령 여교원의 경우 그 비율이 더욱 커 ‘양성불균형 현상’이 심화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현재 초, 중학교에서 여교사의 비율은 70% 정도이다. 24세 신임교사는 83.5%, 29세 신임교사는 95.6%가 여성이다. 어떤 직종에서 한 성이 다른 성에 비해 절대적으로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은 성별분업을 더욱 공고히 한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통계적 불균형은 그 자체가 차별의 징후나 결과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여성에 대한 적극적 고용개선조치를 적용하는 데 수치 자체를 기준으로 4/5룰을 적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때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하는 것은 그 통계적 불균형이 사회적 차별로 인한 것인지에 대한 판단이다. 여성이 교직에 몰리는 이유는 무엇인지, 차별이 발생하는 부분은 어디인지에 대한 질문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다음 과연 남성 교사가 적은 게‘정말’문제인지를 살펴볼 일이다.
교직의 여성화가 문제라고 보는 시선은 ‘균형이 없다, 여성이 교직을 장악하는 것은 비정상적이다’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교원사회에서 남성들은 의사결정직을 독점하고 있다. 여교장과 여교감의 비율은 아무리 높아도 15%를 넘지 못한다. 시간강사의 81%, 기간제 교사의 84%가 여성이다. 교원사회에서 낮은 임금과 높은 고용 불안정에 시달리는 최하위층에 다수의 여성이 분포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불균형은‘문제’가 되지 않는다. 평교사의 성별 불균형은 문제라고 말하지만 고위직에서 여성의 수적 불균형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는 것이다.
여성다움과 남성다움을 가르치는 학교
할당제 도입의 주요 근거 두 번째는 남성교사 부족으로 학교운영이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이 가능한 것은 여성교사와 남성교사의 일이 구분되어 있기 때문이다.
차 준비, 뒷정리, 심부름 등 주변업무에는 여성교사를, 엄격한 학생지도, 건물. 시설관리, 대외업무에는 남성 교사를 배치한다. 여성들은 야근, 숙직을 못해서 안 뽑는다는 말, 여교사 에 대한 커피심부름 강요, 성희롱 소식도 꾸준하게 들린다. 성별고정관념에 근거해 여교사들은 주변 업무를 강요 받고, 다수이지만 권력이 없는 여교사들은 언제든지 성희롱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성별고정관념은 교수학습능력을 평가하는 데도 반영된다. 한 교육관계자는 여성교사가 많아서 아이들이 체육, 수학에서 부진하고 운동 능력이 떨어진다고 말한다. 여성은 온순하고 감성적이며 언어에 뛰어나고 남성은 활동적이며 진취적이고 경영, 관리에 적합하다는 생각은 교육의 질에 대한 평가와 교직 사회 내 역할배치에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학교가 여전히 획일적이고 보수적인 사회규범을 재생산할 뿐만 아니라 여성을 여성답게, 남성을 남성답게 기르는 성별가치 규범까지 재생산하는 곳임을 보여준다.
학교 현장의 성별고정관념은 ‘남자아이들이 여성화된다는 우려’에서 더욱 강하게 드러난다. 이를 문제로 인식하는 주체는 교장, 교감을 포함한 남성 관리직과 남성교사, 남성행정직 집단이다. 과거 교직에 남성이 더 많았던 시절 혹은 남성교사가 60% 이상을 차지하는 고등학교에서‘여성의 남성화’가 문제가 되었던 적은 없다. 단지 ‘남성의 여성화’만이 문제시되는 것 은 남성이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남성성’을 잃는 것은 남성권위를 상실하는 큰 문제라고 바라보는 시선과 관련 있는 것은 아닐까?
학부모와 학생이 남성교사를 원한다?
할당제 도입을 찬성하는 사람들은 학부모와 학생들이 원한다고 주장한다. 모 토론회에서 모 남교장은 자녀가 6학년이 되어 처음으로 남교사를 만났는데 다양한 체험활동과 교외활동으 로 학교에 대한 애정이 상승하고 학습 능력도 향상되었다고 했다. 그러나 같은 자리에 참석한 학부모회 부회장은 자신의 자녀가 교사로부터 엄청난 영향을 받지도 않을뿐더러 그 교사가 여성인지, 남성인지보다는 교사의 자질이 더욱 신경 쓰인다고 했다. 남성교사를 원한다는 학부모와 아이들의 욕구 또한 일관된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며 일반화할 만한 의미 있고 객관적인 자료가 있는 것도 아니다.
교직을 원하지 않는 남성들에 대한 적극적 조치?
그렇다면 교직이 여성화되고 있는 것에 대한 문제해결수단으로서 할당제를 고민하는 것은 정당한가? 필요한가? 효율적인가?
할당제는 적극적 고용개선조치의 하나로 간접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이다. 이는 남녀고용평등법에 규정되어 있는데 누적된 차별의 해소, 차별의 피해자에 대한 보상과 치유의 의미가 있다. 소극적으로 차별을 금지하는 것을 넘어 기회를 평등하게 준다고 해도 해소될 수 없는 개인 간의 자원 차이를 극복하기 위한 조치로서 결과의 평등까지를 목적으로 한다. 그렇다면 남성은 교직사회에서 소수자인가? 차별의 피해자인가?
또한 할당제는 고용을 원하나 누적된 관행, 차별로 인해 노동시장에 진입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존재한다. 남성들이 교사직을 택하지 않는 상황에서 할당제를 통해 적극적으로 고용을 유도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발상이다. 여성에게 교사직은 동일직급의 남교사에 비하여 비교적 차별 받지 않고 임신, 출산으로 인한 고용의 단절이 그나마 덜한 유일한 직종이다. 그러나 남성에게 교사직(특히 저학년의)은 돌봄과 양육이라는 ‘여성적’인 일의 연장으로 특별히 선호하는 직종이 아니다. 차별에 의해 배제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 기피한 것이다.
왜 다수의 여성이 교직으로 가나?
교직의 여성화에 대한 논의는 왜 다수의 여성이 교직으로 갈 수밖에 없는가에서 시작해야 한다. 여성은 모집채용, 배치, 승진, 교육, 임금, 정년, 퇴직, 해고에서 단계마다 혹은 누적적으로 차별을 경험한다. 이러한 장벽은 여성을 노동시장에서 주변적인 위치에 놓이게 하고 이를 재생산한다.
이번 남성교사할당제 추진은 남성정책입안자들이 여성이 다수임을 위험징후로 해석하여 남성을 피해자화한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그 과정에서 등장한 남성의 여성화 우려나 성역할 이분법은 이미 90년대 중반 n개의 성이라는 말이 등장하고 성역할의 유동성에 주목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에서 너무도 진부하다. 물론 남성이 소수인 직종이 있을 수 있고 그 안에서 남성이 차별받을 수도 있다. 그러한 차별에 대한 깔끔한 문제제기와 상큼한 제안을 통해 다양성이 확보되는 것은 환영할 만하다.
그러나 남성중심 직종이 여성중심이 되는 것, 남성이 여 성화되는 것 자체가 위기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여성의 일과 남성의 일이 서로 바뀌고 섞이는 과정에서 그러한 구분자체가 없어지는 것이, 그래서 누구든 성별에 따른 차별과 배제 없이 원하는 일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남성교사 채용할당제 도입을 고민하기에 앞서 학교 현장에 만연한 성별고정관념과 낡은 성별분업체계를 돌아보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신기루 ● 알프레도 반바지 입은 비오는 날 ㅋ 이 할당제 말고 다른 할당제 고민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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