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5*6월호 [연재기획I_자매애는있는가]자매애, 당위와 현실사이에서 지혜찾기
[2007년 5,6월호_연재기획I_자매애는 있는가?]
자매애, 당위와 현실사이에서 지혜 찾기
● 이오
오래 전, 짧은 기간 일했던 회사에서 있었던 일이다. 사장이‘좋은 데서’한턱 쏘겠다면서 직원들을 데리고 간 곳은 룸살롱. 그날 그 자리에서 날 짓누른 건 피로감이었다. 사장과 남자동료들에 대한 분노는 오히려 뒷전이었다. 여자 둘과 남자 넷이 있는 자리에‘접대’를 하기 위해 불려나온‘언니들’과 어떤 식으로 대화해야 할지, 마냥 침묵을 지켜야 할지, 아니면 과감히 일어서 나와야 할지, 박차고 나오면 그 여성들이 모욕감을 느끼진 않을지, 그런 것들을 순간순간 판단하고 교통정리 하느라 머리와 마음을 잠시도 내려놓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복잡한 속내를 감춘 채 마주앉은 여성과 술잔을 부딪치고, 급기야 그 여성과 춤까지 추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나는 당시‘어떤 상황에서도 여자들끼리 반목하면 안 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었다. 남자들이 만든 자리에 돈 받고‘서비스’를 하기 위해 불려나온 여성들, 그리고 그 남자들과 같이‘고객’으로 왔지만 결코 그 자리를 즐길 수 없는 여자들의 마주침. 그런 상황에 불가피하게 직면했을 때 어떻게 할 것인지 대처매뉴얼이 있을 리 만무했다. 다만 이 난감한 상황을 어떻게든 험악하지 않게 돌파해야 한다는 강박으로 그 자리의 여성들과 말이라도 한마디 더하려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같은 가시방석에 앉아 굳어 있는 여자동료에게는 마음을 쓰지 못했다.
박차고 나갈 수는 없는 상황이라고, 여자동료들이 있으니 남자들도 조심하고 있는 거라고 내심 변명하며‘지금은 협상 중’이라 합리화 했던 나, 경직된 표정으로 침묵을 지킨 까닭에 옆에 앉아 말붙이던 여성마저 다른 자리로 옮겨 가게 만든 그녀. 이튿날 점심을 사겠다며 그녀와 대화를 시도했지만 진심을 터놓는 분위기를 조성하지 못했다.“ 어젯밤에 불편하셨죠?”란 말로 조심스레 입을 뗐으나 그녀는 쌀쌀한 말투로“불편했어요. 그쪽은 잘 노시던데요.”그러고 끝이었다. 나중에 그녀의 말을 전해 들으니 나는‘남자들에게 잘 보이려고 장단 맞춰 정치적으로 잘 노는, 그리고‘불결한 여자들’과도 잘 어울리는 한심한 여자’가 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그녀에게 나는‘남성그룹’에 속한 사람으로 비쳐졌다는 뜻이다.
그 불쾌한 자리에서 빠져 나갈 용기는커녕 센스조차 없었던 나와 그녀. 그 일이 있은 뒤 힘을 합쳐‘그날밤 이런 이유로 불편했고 앞으로 이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사장과 남자동료들에게 단호하게 요구할 수는 없었을까. 또 그녀에게‘그때는 이런저런 이유로 내가 오바했다’고 털어놓을 순 없었던 걸까. 그러나 그날 밤 강박적으로 행동한 나와 그 자리의 모든 사람에 대해 경멸적 태도로 일관한 그녀 사이에는 이 정도의 소통도 쉽지 않았다.
요즘은 현실에서의 경험에 더해 인터넷 게시판에서도 이 같은 소통불능의 자괴감을 느낄 때가 있다. 특히 여성문제에 공감하던 여성들끼리 남편의 외도 상대나 유흥업소의 여성들을 언급하는 대목에서 입장이 확 갈리는 경우를 볼 때 더욱 그러하다. 즉 여자들이 사회구조와 남자들을 향해 포문을 열 때보다 오히려 여자에 대해 말할 때 서로 반목하는 현상이 훨씬 심해진다는 말이다. 여자들끼리 등 돌리게 하는 게 가부장제의 지배전략이라는 당연한 분석이 이럴 땐 심정적으로 별 도움이 못 된다. 적절한 언어를 찾아서 소통하지 못하는 내가 답답해지고 불만스러워진다. 내가 무슨 해결사병이나 구세주병에 걸린 것도 아닌데 왜 이럴까.
그건 주로 페미니스트 관점을 지지하는 여성들과 외도의 실질적, 잠재적 피해여성들 간의 대립양상으로 비쳐지는 이런 언쟁에서 페미니스트들의 입지가 생각보다 너무 초라하기 때문에 갖는 안타까움일 수도 있다. 단적인 예로‘여자들끼리 머리채 잡고 싸우면 안 되는 이유’를 설파한 여성에게 돌아온 반응이‘나는 페미니즘이 지긋지긋해요’였다. 한마디로‘내 이해관계와 생존기반이 흔들리는데 그런 이론은 염장 지르는 한가한 소리’라는 것이다. 이런 글일수록 막강한 추천수에 꽃까지 팡팡 달린다. 이처럼 치열한 ‘체험 삶의 현장’에서 통하는 자매애란 좀 심하게 표현하자면‘남편이 바람피운 상대녀를 같이 머리끄덩이 잡고 흔들어 주는 것’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이런 장에서는 페미니스트 관점에서 ‘정치적으로 올바른 발언’을 하는 것이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이보다는 발등의 불을 끄는 실질적인 방편이 먹힐 뿐이다.
이런저런 경험으로 깨달은 건‘자매애’가 하나의 이상(.想)이자 당위일 수는 있겠지만, 현실에서 서로 다른 처지와 조건의 여성들 간에 얼킨 문제를 풀 땐 그 해법이 대단히 섬세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런 지혜를 공유하지 못하는 한 애초의 이상도 실현 불가능한 신기루에 그치게 되고, 그 가치를 소중히 했던 여성들조차 지치게 될 우려가 있다. 그 누구도 자매애라는 화두를 놓고‘바로 그거야’라고 무릎을 치기 어려운 것은 그 말의 내포와 외연을 간단히 정의하거나 해석하거나 적용하기 어려운 까닭이 아닐까. 그래서 현실의 복잡한 문제에 당면했을 땐 자매애라는 말을 서랍에 넣어두는 쪽이 낫다는 생각이 든다. 차라리 ‘이슈에 따른 여성연대’라는 딱딱한 표현을 쓰는 게 어떨까 싶을 정도다. 그 대신 나는 자매애라는 말을 하나의 이상적 은유로 받아들이고 싶다. 은유의 세계에서는 얼마든지 많은 것들이 가능하니까.
이오 ● 어느 날 느닷없이 편집위원이 됨. 평소 여자들과의 관계에 대해 크게 고민해 본 적 없으나 이 글을 쓰면서 자신에 대해 모르던 것들을 깨닫게 됨. 그 동안 여자관계 문제 많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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