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5*6월호 [연재기획I_자매애는있는가]수다좌담: 여성들 간의 차이, 그리고 소통에 관하여
[2007년 5,6월호_연재기획I_자매애는 있는가?]
‘자매애’는 여성주의에서 당연한 것으로 혹은 당위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져 왔던 측면이 있었다. 이번 호에서는‘여성들 간의 연대’, ‘해방구로서의 여성주의 공동체’를 상징해왔던‘자매애’의 이상적 측면이 구체적 현실 속에서 어떻게 경험되는지 공유하고자 한다. 여성주의 조직이나 단체에 몸담고 활동한 적이 있거나 현재 활동 중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았다.
<수다좌담> 여성들 간의 차이, 그리고 소통에 관하여
남들은‘TGIF!’를 외치며 홀가분하게 일주일 간 쌓인 피로를 맥주 한잔으로 날리고 있을지도 모를 어느 금요일 늦은 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예전의 동지들이 평동 사무실에서 뭉쳤다. 한때 민우회에서 상근자로 활동했던 혹은 현재 활동하고 있는 그녀들은 처음엔‘자매애’라는 주제에 대해 약간은 뜬금없어 하기도 했다. 그러나 멍석을 깔아놓으니 의외로 할 말이 많았던 것이었다. 이번에도 줄이느라 엄청 애 먹었다.
수다참가자 ● 맨발, 원사, 오이, 연필, 오뎅(나중에 합류) / 정리 ● 맨발
‘자매애’하면 떠오르는 것은…
맨발 :‘ 자매애’에 대해서 먼저 떠오르는 생각이나 느낌부터 자유롭게 이야기해 볼까?
원사 : 나는‘자매애’하면 생각나는 사람들이 있어. 룰*, 공*, 생*. 내 안의 버거움이나 내가 제기하는 문제 때문에 힘들었을 때, 내가 말하는 것에서 취할 수 있는 장점들을 많이 잡아 줬어. 민우회를 떠나고도 민우회에 대한 애정이 있었던 게 그렇게 힘들었던 시기에 그 사람들의 지지, 자매애 때문이었던 거 같아. 그래서 항상 고마워.
오이 :‘이상적인 자매애’라는 것이 나에게는 별로 와 닿지 않아.‘ 자매애’라는 이름의 포장이 너무 크고 나에게는 손에 잡히지 않아서 그 말이 내게 너무 힘들었어. 여기 오기 전에 사람들에게“자매애에 대해 뭐라고 생각하냐?”고 질문을 했는데 4명 정도는 회피했고, 2명은 짜증냈고, 1명은“밥이나 먹어!”라고 했어. (하하)
원사 :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모두 감싸 안아야 할 거 같은 게 불편한 거 같아.
오이 : 맞아. 모두 감싸 안아야 할 거 같은 부담감. 그래서“자매애는 있냐?”고 물으면“특정인에 대한 자매애는 있지만 ‘범여성적인 자매애’는 없다”는 게 나의 답이야.
원사 : 나는 (자매애가) 있는 거 같아. 솔직히 그냥‘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편하긴 해.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불편함을 느끼는 것과는 반대로.
오이 : 어떤 사람이 그랬어. 자기는‘자매애’라는 말은 싫은데, 평범한 여자들에게 애정이 간다고. 그 여자가 잘됐으면 좋겠고…. 그런 것은 있는 거 같아.
연필 : 민우회에서 일할 때는‘자매애’에 대해서 별로 생각하지 않았는데 다른 곳에서 일하게 되니까 그런 게 너무 그리워지는 거야. 내가 일하는 곳은 여자도 많고 임신을 해도 노동조건이 안정되어 있지만 여성주의적인 조직은 아니거든. 문화가 너무 달라서 외로움을 많이 느꼈어. 민우회에서는 자기 얘기를 잘 하는 것이 운동의 시작이잖아? 자기 일상에서 과제를 잘 만들어 내는 게 능력이고 감수성인데, 그곳에서는 그걸 굉장히 두려워하고 소위 격 떨어지는 것처럼 생각하고, 잘못 살고 있는 걸 서로 안 보여주려고 하는 게 있어. 그래서 여자 동료들에게 자매애라는 걸 잘 못 느끼겠더라고. 지금도 민우회에 대한 향수병 같은 게 있는 거 같아.
이번 대담 제목, 유감!
오이 : 이 대담 제목이‘자매애는 있는가? 여성주의자들 간의 차이와 소통에 관하여’잖아? 나는 이 둘이 묶일 수 있는 건지 모르겠어. 서로 다른 얘기 같은데, 오히려 같이 있으면 위험하고 서로 분리되어야 한다고 생각해. 제목 자체가 불편해.
원사 :‘차이’와‘소통’은 서로 다른 지점들이 있고 그게 만나거나 부딪치는 건데 자매애와 같이 있을 때는 차이로 얘기되는 게 아니라 감정이 섞이는 거 같아. 자매애라는 게 관계를 굉장히 중시하는 용어이기도 하잖아. 소통 자체를 막아 버리고 감정을 먼저 끌어내서 허우적거리게 만드는 면이 있다는 거지.
오이 : 짝짝짝! 설명을 잘해줘서 고마워!
연필 : 여성이기 때문에 같이 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데‘그게 왜 필요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어. 민우회 안에서도 지부랑 본부랑 다른 점이 있잖아. 그런 차이가 서로를 발전시키고 있는 건데….‘ 우리가 여자이기 때문에 모두가 같아야 한다’또는‘왜 우리는 이해가 같지 않는가?’라는 강박관념만 버리면 오히려 새로운 연대감 같은 게 생길 거 같아. 아직도 뭔가 같이 가야 한다는 게 있어서 서로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를 했던 경우도 있었던 거 같아.
오이 :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여성이기 때문에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입장을 가져야 한다는….
연필 : (내가 일하는 곳에서) 보육수당 때문에 연차가 같아도 급여가 높아지는 경우가 있는데 미혼과 비혼인 여성들 사이에서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얘기가 나왔어. 그랬더니 아이 키우는 사람들은 너무나 분개하는 거야. ‘여자도 다 같은 여자가 아니다’라면서 굉장히 어이없어 했어. 그 문제를 제기했던 사람이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얘기해서 더 배신감이 있었던 거 같아. 그런 거에 대한 막연한 기대 있잖아. 자매애라는 말을 쓰지는 않아도‘같은 여자니까 사회적인 입장을 이해해 줘야 한다’는 기대가 있는 거 같아.
원사 : 엄마랑 같이 티브이를 보는데 성폭력에 대해 보도하던 기자가 여성들이 문제인 것처럼 말한 적이 있어. 그걸 보신 엄마가“거 봐라 여자들이 문제란다”그러는 거야. 열 받아서 여성운동하는 딸을 둔 당신이 그렇게 생각하니까 세상이 이 모양인 거라고 하면서 싸웠어. 내가 분노한 건‘엄마’여서 그런 게 아니라.‘ 나랑 유사한 경험을 가진 여자’라는 것 때문이었어.
연필 :‘자매애’하면 민우회가 떠올라. 월차 같은 거 받으면 민우회에 가서 그냥 앉아 있어. 그러면 피라미드 삼각방 같은 데 들어가 있는 느낌이야. 그 안에 들어가기만 해도 기운이 나는 거 있잖아. 민우회에 가면 아무 일 안하고 가만히 있어도 기운이 나는 거 같아. 이십대 때 민우회에서 있었던 게 얼마나 다행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어. 엄마는 나를 여자로 태어나게 했지만 내가 여자로서 살아가는 법을 알게 했던 것은 내가 선택해서 찾아 갔던 단체인 민우회였던 거 같아.
맨발 : 나는 3년 있었잖아. 그 이후에 시간이 많이 흘렀고…. 여기 오면 마음이 편해지고 고향에 왔다는 느낌이 들어. 내가 하는 일과 사람들과의 관계가 기계처럼 분리되어 있는 게 아니라 물 흐르듯이 연결되는 거 있잖아. 밖에 나가보니까 그런 걸 알게 되더라.
오이 : 맞아, 나가 봐야 알아. 그런데 난 (여기) 있어도 좋아. (하하)
‘자매애’, 이럴 때 불편하다!
맨발 : 근데 그게‘자매애’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은 불편해. 난 여성주의 운동에서도 자매애라는 말을 안 했으면 좋겠어.
오이 : 그게 언제 그렇게 느껴져? 난 별로 생각을 안 하고 살거든. 범사회적으로, 일상 속에서 ‘자매애’로 강요당하는 경험이 어떤 게 있을 수 있어? 공감이라는 이름을 내세우는 동질 의식, 그런 거야?
연필 : ‘여성주의자’라고 뭔가를 가르치는 것처럼 얘기하는 사람이 있어. 그러면 그 기준에 맞춰야 할 거 같아. 생각이 다를 수밖에 없는 건데, 그 사람을 만나면 왜 그 정도까지 여성주의자가 못 되는지 반성해야 될 거 같은 거야. 다른 사람들도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더라고. ‘혼나는 거 같다’, ‘가르치는 거 같다’,‘ 반성문 써야할 거 같다’고….
원사 : 난 그 사람 입장이 이해가 돼. 내가 그랬거든. 어떤 느낌이냐면 종교야 종교! 마치 종교같이 모든 게 그 기준으로 보이고, 맹신도들이 지하철에서 선교하고 싶어 하는 그런 느낌인거지. 그게 통제가 안 되는 거야.
맨발 : 세월이 흘러서 지금은 달라진 거야? 뭐가 원사를 달라지게 한 거야?
원사 : 자매애. 하하하. 아까 그 사람들 영향도 있고…. 근데 그건 자기 성숙이 있었던 것도 있어. 옛날에는 내 안의 그런 거 때문에 나 스스로도 버거웠거든. 근데 너무 웃긴 건, 요즘 그런 사람들이 내 주변에도 있잖아. 그 사람들을 만나기가 싫다는 거.(하하하)
연필 : 원사가 트러블 메이커였잖아. 논쟁을 일으키는 논쟁적 인간. 그런데 민우회에 원사 같은 사람이 있다는 게 민우회가 살아있다는 느낌, 균일한 집단만은 아니라는 생각에 위안이 됐어. 의외로 오래 있기에 ‘민우회가 포용력이 있고, 스펙트럼도 다양하다’고 생각했어. 나가니까 되게 서운하더라.
맨발 : 사람들이 원사를 많이 그리워한다니까.
오이 : 변한 모습을 통쾌해 하는 거지.‘ 인간이 됐구나!’민우회 사람들은 원사를 굉장히 기특해 한다. 난 원사를 싫어하지는 않았어. 원사는 그런 유형의 대명사였는데…. 하지만 사실 여성주의를 잣대로 다른 사람들을 재단하는 사람들이 나는 굉장히 불편해. 어떤 말에 대해 자신의 잣대를 휘두르는 사람들이 불편하고 싫고, 마음의 감정노동이 너무너무 심해. (하하. 원사 성토대회야?) 개인이 아니라, 이런 유형의 사람.
맨발 : 내가 들이받힘을 당한 적이 있거든. 민우회에 있을 때 내가 그 지 랄을 해서 받힌다고 생각도 했었어. ‘내가 했던 만큼 되돌아오는 구나’그런 생각을 했어.
원사 : 그게 재미있어. 그때는 너무 몰랐던 거야.
오이 : 근데 내가 공격적이고 모나게 구는 사람들에 대해 들이받지 못하는 것은 주눅이 들어서 그런 거 같아. 어떤 원칙에서 내가 벗어나 있는 부분, 내가 생각하지 못하는 부분, 내가 놓치고 있는 부분이 있을까 봐.
자매애, 있다? 없다?
오뎅 : 난‘자매애’에 대해 할 말이 없었어. 왜‘차이와 소통’을‘자매애’와 연결시켰을까? 궁금했어. 나는 연결이 안 된다고 생각해. 자매애가 소통의 근거가 되는 것도 아니고 있는 차이를 극복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되는 거 같지도 않거든.
원사 : 그런데 자기는 왜 여성을 만나? 여성단체는 여성들을 만나잖아.
오뎅 : 난 ‘자매애’가 있어서 여성들을 만난다고 생각하지는 않거든. 여성들을 만나는 게 남자들을 만나는 것보다 편한 건 있어. 그런데 내가 이 사람들이 편해서 이 사람들과 운동을 한다고 말할 수는 없거든. 편하다고 자매애라고 규정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연필 :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떠나보니까 그게‘자매애’라는 생각이 들어. 그냥 오래 다닌 직장이어서 그런가? 생각해 보면 그것과는 다른 차이가 있어. 내 생활이 운동이 되고 운동이 생활에 영향을 미치고 내 개인적인 얘기가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소통이 되는 것. 내 생활을 거침없이 얘기하는 것과 일을 하는 것 사이에 벽이 느껴지지 않는 것. 그런 공간과 사람 그리고 그걸 통해서 어떤 일을 하고 공동의 성취를 얻었던 기억들.
오뎅 : 나는 민우회를 떠나 본 적이 없어서…. 여성이라는 게 자매애의 근간이 될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운동이란 게 생활운동을 전제로 하는 것이고 운동이기 때문에 그런 걸 추구하는 건데 그걸 자매애 때문이라고 말을 하는 건가 싶기는 해.‘ 그게 과연 자매애 때문일까?’하는 생각이 드는 거야.
원사 : ‘자매애’라는 용어자체가 불편하긴 해.
연필 : (그 단어를) 쓰고 싶지는 않은데 연대감 같은 게 나한테는 많이 힘이 돼. 특히 여자이기 때문에 느끼는 이해관계보다는 그것을 뛰어넘는 우리들만의 관계 맺기와 일을 풀어나가는 방식, 이런 거 있잖아. 그런 경험을 통해 느꼈던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뭔가의 방식이 있는 거 같아. 어떤 상황에 직면해서 다른 사람과 그런 걸 공감하게 되면 자매애를 느끼게 되는 것 같아.
오이 : 누군가 말했는데, 자기는 자매애는 별로 안 좋아하는데 지하철에서 어떤 여성이 남성에 의해 성추행을 당하고 있을 때‘내가 도움을 줘야겠다, 뛰어 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도와준 적이 있다는 거야. 그때 그 사람에게 도움을 주면서 서로 공감한다는 느낌이 들었대. 그것도 분절적이긴 하지만 저변에 뭔가 깔린 다른 의미가 있는 거 같아.
대담 소감 : 자매애가 중요한가?
맨발 : 이제 마무리를 해야 될 때가 왔는데, 한마디씩 소감이나 마무리 멘트해 줘.
원사 : 요즘 점점 할 얘기가 없어지고 입장이 없어지고 그렇지 않아? 활동을 오래하면 그런 거 같아. 자매애도 뭐라고 할까? 잘 모르겠어. ‘자매애’라는 게 중요한가 싶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 드는 생각은 어쨌거나 그런 것들이 나에게 소중하기도 하다는 것. 굉장히 큰 힘이 되고 의미가 되기도 했고 어떤 때는 그런 사람끼리 살고 싶기도 하고….
오이 : 난‘자매애’같은 이상적인 말은 별로 안 좋아해. 그런 거 말고 구체적인 사람들에 대한 ‘의리’ 같은 게 중요해. 같이 일하면 싫어하게도 되지만 지속적인 관계를 갖게 되면서 서로 연결된 끈이 강해지는 느낌 같은 거 있잖아? 그게 더 와 닿아.‘ 자매애’라는 말은 나에게 추상적이고 와 닿지 않아. 강요하는 거 같고 불편함이 존재해. 주변의 구체적인 사람들에 대한, 많은 여성들에 대한 소중한 감정들은 있지 만 ‘자매애’라는 말은 인류전체에 대한 사랑 같아. 그래서 너무 추상적이야.
연필 : 나는 이 대담이 자매애나 여성주의를 보여주는 거라고 생각해. 조직문화가 다르다는 게 느껴지는데, 보통 이런 대담을 한다고 모이면 힘줘서 얘기하잖아. 1번부터 3번까지 정리해 와서 리포트 보면서 참고문헌 몇 개는 들먹거리면서 얘기해야 할 거 같아. 지금처럼 그냥‘잘 모르겠는데….’이런 말은 자기를 깎아 내리는 행위지. (하하) 이렇게 가감 없이 얘기하고, 내가 어떻게 보이는지 생각하는 게 아니라 내 생각이 가감 없이 받아들여지는 게 중요하잖아. 그래서 이런 자리 자체가 나한테는 자매애를 확인하는 자리야. (하하)
오뎅 :‘왜 난 여성을 만나는가?’생각해 보면, 난 여성이기 때문에 좋고 싫은 경험을 동시에 한다고 생각해. 솔직히 여성인 게 편할 때가 있어. 싫은 사람이라도 그 사람이 싫다는 것조차 편하게 다가올 때가 있거든. 그런데 다른 집단이든지 남성적인 사고를 갖고 있는 데를 가면 같은 여자라 해도 불편한 게 있어. 그게 서로간의 소통과 이해의 차이로 인해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원사 : 근데 뭔가 더 할 얘기가 남아있는 거 같아 아쉽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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