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5*6월호 [20주년행사스케치] 우리, 위로받다 _ 봉달
2007 5*6월호
[민우ing] 이런 저런 이야기 그리고 20주년 행사
두 번째 이야기 _ 우리, 위로받다
5.13 ‘웃어라, 여성! 희망을 걸어라!’행사를 준비하면서 상근활동가들의 몸과 마음이 지쳐가던 무렵, 한 활동가가 쓴 글이 모람터놓기 게시판(회원자유게시판)에 올라왔다. 모두들 겪고 있지만 소리 내어 말 할 수 없었던, 실없는 농담으로 흘려버리거나 혼자 깊은 한숨으로 덮어두던 그 무엇을 만져주는 글이었다. 회원들도 친구들 앞에서 민우회 콘서트 티켓을 꺼내면서, 혹은 더 옛날 딸기쨈이나 유자차를 지인들에게 권하면서 비슷한 생각을 해 보지 않았을까. 여러 회원들과 나누고 싶어 이 곳에 소개한다.
눈물나게 좋은 봄날에
봉달 ●
갑자기 눈물이 후두둑 떨어질 때가 있다. 눈부신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사람이 많은 복잡한 길을 가다가 아무 이유 없이 눈물이 나는 날이 있다.
얼마 전 한 상근자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집에 가려고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사람이 꽉 찬 버스만 왔다고 한다. 그래서 버스 몇 대를 그냥 보낼 수밖에 없었다는 거다. 한참을 그러고 있는데 지나가던 다른 상근자를 만났다고 한다. 그런데 그 순간 눈물이 나더라고 했다. 별 이유도 없이 그렇게 눈물이 나는 일이 요즘 많다고 했다.
나도 그랬던 적이 있었다. 96년 나는 대학 5학년이었고 총학생회에서 일하고 있었다. 당시 난 졸업과 운동 사이에서 어정쩡하게 헤매고 있다가 뒤늦게 총학생회에 결합한 상태였다.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게 내가 하고 싶은 것인지 늘 혼란스러웠지만 누구와도 터놓고 말할 수 없었다. 그리고 학기 시작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2학년 후배가 시위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 후부터 나는 아무것도 감당할 수 없었다. 현실도 무서웠지만 내 주변의 사람들이 더 무서웠다. 진심으로 지지받고 소통하고 있지 못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화장실에서도 울고 집회에서도 울고 플래카드 앞에서도 울었다.
내 현실이 감당하기 힘들 때, 내가 인정받고 지지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 지금 내가 하는 일의 의미가 자꾸 왜곡될 때, 그 모든 것들이 내 한계를 넘어서는 순간, 나는 종종 무너지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그 현실을 함께 견뎌낼 사람들이 없다고 느낄 때 그 무너짐은 주체할 수 없어진다.
오늘 너무 파래서 눈부신 하늘 때문에 눈물이 날 뻔 하다가,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그 상근자의 마음이 함께 떠올랐다. 지금 민우회 상근자들의 마음이 그렇지 않을까 살며시 생각이 든 것이다. 그리고 나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걱정도 같이.
20년 동안 우리는 진심으로 여성운동을 해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의 운동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알고 그 힘으로 운동을 하고 있음도 안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 그런 믿음이 자꾸 사라질 때가 있다. ‘민우회가 이번에 20주년인데, 집 마련 기금모금을 해. 좀 도와줄 수 있어?’이 말을 할 때 그렇다. 아니 내가 아는 사람들의 리스트를 바라보며 누구에게 말해야 조금 덜 상처 받을까 생각할 때 그렇다.
나는 그렇지 않음을 알고 있지만 이 말을 하는 게 자꾸 ‘뭔가를 구걸하는 느낌’이 드는 걸 어쩔 수 없다. 나의 마음은 불편해지고 나는 한없이 작아지고 그런다. 이 말을 꺼내기 위해 수도 없이 마음을 다져야 한다. 수많은 기업을 만나고 그 기업들한테 퇴짜를 맞는 대표 선생님들도 그럴 것이다. 그동안 연락 한번 못 하다 갑자기 전화하여 어렵게 이 말을 꺼내야 하는 상근자들도 그럴 것이다.
결국 말도 못 꺼내보고 끊어버린 전화기를 바라보다가, 어렵게 꺼낸 말에 아무 답이 없는 친구를 원망하다가, 내 활동이 그 만큼의 신뢰도 주지 못했음에 자책하다가, 이런 걸 자꾸 해야 하는 내가 초라해지다가, 집도 없이 가난한 민우회에서 일하게 된 걸 원망하다가, 그러다가 나는 점점 구겨져 가는 내 얼굴을 보게 된다. 그리고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짜증을 내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뭔가 잘 안 풀리는 것 같아서 화가 나고, 누군가 말을 걸려 하면 가만히 좀 내버려 달라고 말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민우회 활동을 하면서, 여성운동을 하면서 힘든 일은 수도 없이 많이 만나게 된다. 그리고 지금 내가 버거워하는 일은 단지 그 중 하나일 수도 있다. 다만 더 괴로운 건 내 자존감에 생채기가 오래도록 남아 있기 때문일 거다. 나의 ‘자존감’과 타인의 ‘자존감’이 서로 교감하고 함께 높아지는 활동을 꿈꾸는 내겐 더 그렇다. 그렇다면 지금 내게 필요한 건뭘까? ‘인정’과 ‘지지’가 아닌가 싶다. 괴로움과 어려움을 알아주고, 의심이 들 때마다 아니라고 말해주고, 내가 작고 초라해 질 때마다 넌 소중하다고 말해주고, 생채기가 생길 때마다 함께 아파해 주는. 내 옆 사람들과의 소통, 그리고 그들이 내게 주는 인정과 지지.
다시 생각해 보면, 이 일은 아주 힘들기도 하지만, 민우회에 대한 지지와 성원을 직접 확인하게 되는 가슴 벅찬 경험이기도 하다. 모두들, 괜히 화장실에 숨어 남몰래 눈물 닦지 말고 그 괴로움과 속상함을 솔직하게 털어놓아 보자. 그리고 열심히 정말 열심히 위로하고 격려해 주자. 서로서로.
2007. 4. 30. 봉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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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서 정말 마음 뭉클했습니다. 요즘 제 마음과도 너무 맞고요...무한한 지지와 격려, 위로 보냅니다!! 아자아자! 우린 할 수 있어요~ 우린 소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