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7*8월호 [세.여.소의 말걸기]아이들-오정희「유년의 뜰」
모 람 활 동 _ 세 여 소 의 말 걸 기
아이들
오정희「유년의 뜰」
세계로 가는 여성주의 소설읽기의 누에
요즘엔 해가 깁니다. 초등학교 1학년 선영이가 학교 끝나고 집에 가방 놓고 나와 학원가는 길에도 아직 해가 쨍쨍한 걸요. 아무 생각 없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는데, 양떼구름이 줄지어 종종종 어디론가 가고 있네요. 앗! 쟤네들은 어디로 가는 거지? 저렇게 가볍고 즐거운 몸짓으로 어디로 산책을 가나 보다. 부러워라.
그나마 하늘을 올려다 볼 정신머리(?)라도 있으면 다행이죠. 하늘과 구름을 보고 부럽다는 생각이라도 한다면 아직 희망은 있습니다. 하지만, 회색빛 아스팔트만 쳐다보며 학교와 학원을 왔다 갔다 하느라, 하늘이 무엇인지는 과학시간에나 잠깐 생각해보는 것은 아닐까요? 걱정입니다. 그리고 슬픕니다.
앗. 너무 멀리 왔네요. 오늘 저는 우리 모람에서 함께 읽은 오정희님의 단편‘유년의 뜰’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했는데 말이죠. ‘유년의 뜰’은 한국전쟁 시절 참 힘들게 살아가는 한 피난민 가정의 이야기입니다. 아버지가 없는 노랑눈이네 집에서는 어머니가 가장입니다. 저녁에 나가 밤늦게 돌아오는 어떤 일을 하며 돈을 벌어 오고, 오빠는 이런 어머니가 늦도록 들어오지 않아 기분이 나쁜 날이면 언니를 때립니다. 할머니는 잘 자라지 않는 막내 손주를 업어 키우며 그럭저럭 집안을 돌봅니다. 노랑눈이의 관심을 끄는 유일한 이웃인 주인집 딸 부네는 작은 방에 갇혀 살고 있습니다. 그녀가 정말 거기 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어느 날 죽은 부네는 지푸라기 인형이 되어 영혼결혼식을 올립니다.
우리 노랑눈이는 뚱뚱합니다. 곁에 정다운 사람 하나 없는 노랑눈이는 외로움을 달래려는 듯 먹고, 또 먹습니다. 할머니가 동네에서 몰래 잡아다 삶아 준 닭을 배부르게 먹은 어느 날 밤, 목이 말라 연신 우물물을 떠 마시던 노랑눈이는 ‘고요하고 알 수 없는 소리로 가득 차 있는’ 우물 속을 들여다봅니다. 가난하고 어리기에 큰 소리 한 번 내지 못하고 항상 묵묵한 이 아이가 우물에서 들은 소리는 무엇일까요?
다시, 요즘의 아이들을 생각해 봅니다. 글쎄요, 전쟁과 입시지옥, 이 둘을 함께 놓고 생각한다는 것은 무리겠지요. 하지만, 전쟁이 무엇인지 채 알기도 전에 그 안에서 힘들게 버텨 내고 있는 어린 노랑눈이를 보며 아픈 마음은, 태어날 때부터 영어가 멋들어지게 쓰인 동화책을 선물 받는 조카 선영이를 보며 씁쓸했던 마음과 참 비슷했습니다.
왜 우리의 아이들은 이렇게 힘이 들까요? 왜 1950년대의 노랑눈이는 한창 즐겁게 뛰어놀 나이에 말없이 우울한 가족과 이웃의 모습이나 지켜보며 무거운 몸으로 힘들게 움직이고, 2000년대의 선영이는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왜 배우는지 모르는 여러가지에 눌려 피곤해 해야 하는 걸까요?
‘유년의 뜰’은 슬픈 전쟁의 시대를 지나가는 피난민 가정의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자꾸 노랑눈이가 눈에 밟힙니다. 아버지가 돌아오던 날, 훔쳐 먹은 케이크를 토하며 들여다 본 똥통 속에서 노랑눈이는 또다시 ‘무엇인가 빛 속에서 소리치며 일제히 끓어오르고 있는’ 것을 봅니다. 다시 적응해야 할 새롭지만 희망 없는 삶, 그 앞에서 노랑눈이는 크게 외치고 싶었을지 모릅니다. 나도 힘들다고, 이렇게 계속 버티기엔 너무 지쳤다고 말입니다.
세계로 가는 여성주의 소설읽기 모임 ●
앉아서 세계의 여성, 문학을 만나는 모임.
귀찮은 것이 많은 사람들이지만 소설에 대한 애정은 많음.
이번 책은 ‘난 여자들이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http://womenlink.or.kr/moram/에서 세여소를 찾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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