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7*8월호 [연재기획I_행복찾기]맑은피가행복이다!
맑은 피가 행복이다!
유기성 ●
‘행복.’ 이 평범하고 익숙한 단어를 얻기 위해 인간은 길고도 고통스런 가시밭길을 걷고 있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공짜 점심이 없다고 하듯 내가 보기에 공짜 행복도 없다. 내가 원하는 행복의 양만큼 내 눈에서 피눈물 흘려야 그게 내 것이 된다. 간장종지만한 행복을 얻고 싶다면 그만큼 괴로워하면 되고, 항아리만 한 행복을 소유하고 싶다면 그만한 슬픔을 겪으면 된다. 하지만 태평양 같은 행복을 품고 싶다면 꼭 그만한 싸움을 해야만 한다. 자기 자신과의 처절한 사투를….
진정한 행복엔 전제가 필요하다. 첫째, 주체성이다. 철저히 주체적이지 않곤 결코 행복할 수 없다. 사회통념에 따라 대충 살면 죽을 때까지 열등감에 휩싸이고 불행해 빠져 허우적대기 십상이다. 전 세계 60억 인구 가운데 똑같은 얼굴이 없듯‘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소중하며 유일한 존재다. 신의 상품이 아니라 신의 작품이다. 그걸 투철히 깨달아야 한다. 그래야 당당할 수 있다. 하늘 아래 땅 위에 ‘내’가 가장 고귀한 생명임을 뼛속깊이 자각해야 한다. 그래야 어떤 실패와 모멸이 와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 온 세상 사람들이 다 바다로 가도 나 혼자 산으로 갈 수 있는 배짱이 있어야 한다.
그런 주체성 없인 내가 나를 사랑할 수 없다. 주체성은 ‘나를 알기’부터 시작된다. 나는 누구인가. 무엇이 나인가. 스스로 정답을 찾아야 한다. 가족도, 친구도‘나’를 온전히 알지 못한다. 나를 알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나밖에 없다. 내 취향이 바로 나다. 내 싫고 좋음이 나이고, 내 욕망과 스타일이 바로 나다. 각자‘나’를 냉철히 파악해야 출발이 순조롭다. 먼저 내가 나를 알고, 사랑해야 한다. ‘ 관계 맺기’나 소통도 그 다음이다. 내가 나를 귀히 여기고, 어여삐 여길 때 정신적으로 직립(直立)할 수 있다.
주체성 있는 사람이‘자기 고독’을 지켜낼 수 있다. 나는 이 세상에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본다. 자기 고독을 지켜낸 자와 그렇지 못한 자. 행복을 얻고자 눈을 바깥으로 돌리면 언제나 허기지고 늘 상처받는다. 행복을 원하면 먼저 자기 고독을 극복해야 한다.
그래야 스스로 치유할 수 있고, 나눔의 관계도 원만히 형성될 수 있다. 엄밀히 말해 부모, 남편, 자식도 타인이다. 그런데 주위의 주부들 보면, 대개 가부장적 가족주의 이데올로기에 의식이 묶여 24시간‘돌봄 노동’에 헌신하다 골병든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주부는 하녀도, 가정부도 아닌데, 자존감 없는 가족사랑은 피곤한 집착으로 식구들을 억압할 뿐인데… 같은 여성 입장에서 안타깝다. 지금 내 얼굴에 웃음이 없다면, 지금 행복하지 않다면, 행복하지 않은 것이다. 행복은 유예될 수 없다.
나는 어떤 종교적 신념도, 사회적 운동도, 인간관계도 자기 영혼을 훼손시키면서까지 지켜야 할 가치는 없다고 본다. 난 주체성 하나는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이다. 나는 홀로 당당히 내 길을 간다!
둘째, 긍정성이다. 기본적으로 자기 인생을 긍정해야 타인 또는 세상과 건강히 소통할 수 있다. 부정적인 자의식으로 똘똘 뭉쳐 말끝마다 비관적인 뉘앙스 풍기는 사람을 난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안 되는 사람은 안 되는 이유가 있고, 잘 되는 사람은 잘 되는 이유가 있다. 그 갈라지는 지점이 바로‘긍정’이다. 긍정적인 사람이 자아 존중감이 높고 자기 충실지수가 높은 법이다. 부정적인 에너지는 사람의 기운을 빼앗아간다. 긍정의 퍼센트를 높여 가는 것이 바로 인생길이라고 본다. 그래서 삶은 본질적으로 구도의 길과 흡사하다. 냉소적인 사람은 감사를 모르고, 성찰과 자기반성도 없다. 긍정적인 사람이 하루를 돌아보며 일기도 쓰고 명상도 한다. 긍정적인 사람이 기도한다. 어느 종교든 기도하는 사람은 어디가 달라도 다르다. 얼굴이 환하고 빛이 난다. 너그럽고 유연하며 충만하다. 기도하는 사람은 앞으로 전진한다. 남에게 용기 주는 말을 한다. 힘이 있다. 내 주위에 사회적으로 성공한 분들이 몇 있는데, 놀랍게도 그들 중 여러 명이 극단적 우월감과 매우 부정적인 의식 상태에 놓인 경우가 있다. 내가 갖지 못한 부와, 사회적 명예와, 좋은 직장과, 명성을 손에 쥐고 있는 사람들이 왜 얼굴에 웃음이 없을까? 왜 고운 미소가 없을까? 왜 긍정적인 감사가 없을까? 왜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 허약할까? 그리하여 타인에 대한 믿음도 왜 얄팍한 것일까?….
셋째, 상상력이다. 상상력 없인 행복할 수 없다. 현실이 아름다운가? 아니다. 현실은 너절하고 치사하며 지긋지긋하고 역겹다. 악마적인 자본이 현실을 지배하고 있으며 잔혹하고 삭막하고, 벽돌처럼 차갑게 닫혀 있다. 어디에도 사랑은 없다. 어디에도 따뜻한 정은 없다. 어디에도 진정으로 나를 아껴주고 위해주는 사람은 사실은, 별로 없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상상력이 필요하다. 이 비정한 세상에‘내’ 사랑으로 따뜻함을 열어가야 한다. 내 열정으로 사람들 닫힌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한다. 인간의 존엄성을 내가 증명해 보여야 한다. 그래야 사람이다. 그래야 살아 있는 목숨이다. 선(禪)적인 직관 비슷하게 말해도 된다면, 몸뚱이는 다 살아서 왔다 갔다 하지만, 실상 진정 깨어있는 자는 몇 없다. 정말 영혼이 깨어‘사랑의 빛’을 뿌리며 걷는 자는 극소수다. 기존의 낡은 패러다임에 파묻혀 그냥 흘러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깊은 명상을 통해 체득한 우주의 생명에너지로 새로운 창조성의 지평을 열어가는 사람이 나는, 되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맑은 피다! 착한 사람이 덜컥 암에 걸린 경우도 너무 많지만, 일부는 피가 혼탁해서 암에 걸린다. 요즘 암이 마치 감기환자처럼 흔해졌지만, 역시 암은 오랫동안 쌓인 습관에서 비롯된다. 스트레스라고 말을 하지만 그 실체는 바로 부정적인 자의식이다. 남을 원망하고 미워하고 사랑이 부족한 일부 사람들이 스트레스에 취약하다. 긍정과 감사가 풍부한 사람은 웬만한 어려움이 와도 너끈히 이겨낸다. 스트레스에 강하다. 당연히 면역력도 높다. 똑같이 사회생활 해도 적극적이고 기쁨이 넘치는 사람은 늘 입가에 미소가 머물며 피가 맑다. 하지만 일부 냉소적이고 남을 무시하고 독선적인 자는 피가 더럽고 혼탁하다. 그런 사람은 표정도 구질구질하고 어딘가 굴절돼 있고, 지저분하며 영혼에서 악취가 풍긴다. 그런 자는 면역력도 나빠져 금방 외부의 질병에 지고 만다. 스트레스 지수와 혈관노화도는 비례한다고 한다. 질병은 천 가지, 건강은 하나다. 행복을 원하면 피가 맑아야 한다. 몸은 거짓말 안 한다. 피를 맑게 하고 싶다면, 왜곡된 자의식을 버리고 무상한 인생의 의미를 깨닫고‘이 순간에 나와 타인’을 진심으로, 지극정성으로 사랑하면 된다. 사랑의 표현만이, 따뜻함만이 정답이다.
겨우 이 정도 글을 쓰기 위해 나는 그동안 너무 많이 울었다. 서러워 울고, 좌절해 울고, 외로워 울고, 가난해 울고, 충분히 주었건만 상대가 내 진심을 몰라줘 울었다. 정말 많이 울었다. 하루 종일 울었고, 밤새워 울었고, 식음을 전폐하고 울었다. 울다울다 바닥까지 내려가 보니 더 이상 울 일이 없었다. 아무것도 기대할 것이 없었다. 누구에게도 의존할 이유가 없었다. 나는 그대로 나였다. 사지육신 멀쩡하고, 오늘도 밥 세끼 굶지 않고 은행 빚이 엄청 나지만 그래도 작은 보금자리가 있으니 감사하다. 총명하고 건강한 자식들 있으니 고맙다. 비록 무명시인이지만 시집도 냈고, 또 내 글을 마음으로 좋아하는 벗들이 있으니 기쁘다.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4천 원짜리 주말 조조영화를 남편과 단둘이 볼 때도 행복하고, 내가 정신없이 글 쓸 때 중1인 큰 아들이 점심으로 라면을 끓여줄 때도, 잔뜩 쌓인 설거지를 초3인 둘째 아들이 다 해줄 때도 행복하고, 외국가기 전 만난 후배가 쿠바 여가수 ‘알마 로사’의 음반을 선물했을 때도 감사하다. 인간에 대한 애정이 있는 이미현 바른생협 이사장이 ‘EM(미생물) 원액’을 주었을 때, 아는 출판사 사장이 이시무레 미치코의 <슬픈 미나마타> 책을 건넸을 때, 집에서 혼자 쌀 씻으며 사라 브라이트만의 예리하게 빛나는 노래를 들을 때도 나는, 행복, 하다!
행복은 내 손안에, 내 가슴에 있다. 내 주체성과, 긍정성과, 상상력과, 맑은 피에 있다. 어떤 조건과 상황에 있지 않다. 행복은 내 마음에 있다. 그걸 내 손으로 찾아내야 한다. 영혼 깊숙한 곳에 숨어 있는 ‘행복이라는 보석’을!
유기성(시인) ●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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