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7*8월호 [평동사무실에서]임신이 상근활동에 미치는 영향_나우
임신이 상근활동에 미치는 영향
나우 ●
임신소식을 알리자 둘째언니는 자기가 꾼 꿈 얘기부터 시작했다. 갈치가 펄떡펄떡 뛰길래 잡아서 톡 잘라 갈치조림을 해 먹었단다.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무슨 태몽이 기이하지도, 멋지지도 않았다. 인터넷 지식인들에게 확인해보니 갈치는 딸 낳는 태몽이란다. 태몽으로 인정하고 나니 갈치라는 말이 어찌나 입에 착 붙던지, 단박에 태명은 갈치로 지었다.
그런데 얼마 후 엄마가 전화를 걸어“갈치 꿈은 태몽 아니다”하신다. 참 뜬금 없고 맥락 없는 부정이었다. 그래서 난 인터넷 지식인을 들먹이며 그것은 반박하기 힘든 무척이나 전문적이고 과학적인 이야기인양 얘기했다. 엄마도 움찔했는지 그저“갈치 꿈 태몽 아니야~”메아리를 울리며 전화를 끊고 만다.
엄마는 왜 그렇게 강하게 갈치를 부정했을까. 진실인즉, 나의 탄생 후 서른 해가 지나 엄마의 고해성사가 있었으니 나 역시 태몽이 갈치였단다. 물레방앗간에서 갈치가 튀어 올라 온 꿈이었다나. 딸만 연달아 넷을 낳은 엄마는 딸 낳은 설움을 고스란히 그 딸이 안게 될까 무척이나 노심초사 하고 있는 거였다. 엄마, 걱정 말라구. 내 까칠한 성격만 닮지 않는다면 솔직히 나 같은 딸, 멋지잖아? 크하하.
민우회 상근자들에게도 임신소식을 알리자 축하인사 외에 두 가지 재밌는 반응이 있었다. 하나는‘좋겠다! 이제 쉴 수 있잖아. 흑!’, 출산휴가조차 그저 쉬는 거려니 부러워하는 걸 보면, 다들 피로가 극에 달해 있지 않나 싶다. 또 하나의 반응은‘너 이제 어떡하니!’
나 역시 이 두 가지 감정이 온전히 존재한다. 아이를 낳아 본 사람이야 아이 낳고 키우는 것이 쉬는 게 아니다 이야기하지만, 경험한 바 없는 나로서는 휴가와 휴직기간을 합한 1년이 그저 달콤한 휴식기처럼 기대되기만 한다. 또 한편으론, 계획되지 않은 출산에 대한 당혹스러움에 겹쳐 양육에 대한 두려움이 몰려온다. 1년 후의 나를 상상할 때면, 아이를 키우며 일 하느라 동분서주하며 힘들어했던 사람들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아, 생각만 해도….
그래도, 내가 누군가. 민우회에 들어오자마자 평등한 일.출산.양육 캠페인을 맡아 2년이나 거리에서‘평등하게 나누면 직장과 가정이 양립된다’고 외치던 민우회 상근활동가 아닌가. 그래, 출산과 양육에 적극적으로 배우자를 참여하도록 육아휴직을 분담하면 양육도 즐거울 수 있고 양립도 가능할거야. 그래서 내가 법적 육아휴직 1년을 쓰고, 나의 배우자가 6개월을 이어받아 갈치를 키우기로 하였다. 그런데 사실, 나의 배우자 역시 자발적으로 육아휴직을 하겠다고 하고, 무척 즐겁게 내년을 기대하고 있는 모양을 보아, 양육분담을 하려는 기특한 뜻이라기보다는‘양육휴직은 곧 개인의 휴가’라는 뜻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혐의를 지우기가 힘들다. 뭐 어떠랴, 겪어보면 자기도 힘든 거 알겠지. 해보는 게 중요하다.
임신을 하면서 나의 몸은 놀라운 변화의 연속이었고, 마음도 하루에 몇 번씩 급변했다. 그럴 때에 과중한 업무는 때로 견디기 힘든 경험이기도 했다. 그때마다 내 머릿속에 떠오르던 문장 하나,‘ 사용자는 임신 중의 여성노동자에 대하여 당해 노동자의 요구가 있는 경우에는 경이한 종류의 근로로 전환하게 하여야 한다’는 것. 그래서 언젠가는 어찌나 일이 쏟아지던지, 징징거리며 경이한 근로로의 전환을 울부짖은 적이 있다. 사실 아무도 귀담아 들어주진 않았다(-_-;). 그래서 또 혼자 생각했다. 나의‘경이한 근로의 전환’을 위해서는 누군가 내 일을 가져가 줘야한다는 건데, 그건 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누가 내 일을 떠맡아준다 한들, 그 마음 불편한 상황이 임신한 내 몸과 마음에 긍정적일 것 같진 않다. 결국 그냥‘내가 하고 말지’로 혼자 마무리한다. 근데 또 생각해보니 내가 노동상담을 하면서, 임신한 여성노동자라면 묻지 않아도 늘 덧붙이던 이 말이 얼마나 실현하기 어려운 말이었던가도 반성하게 된다. 더 자세히 듣고, 현실에서 실천 가능한 상담을 하자는 기특한 생각까지 든다(눈치 챘겠지만 점점 혼자 칭찬하고 위로하고 힘주는 일에 익숙해지는 건 임신이 상근활동에 미친 지대한 영향 중 하나인 것 같다).
여하튼 점점 부풀어 오르는 내 배가 나도 신기한데, 상근자들도 같이 신기해하고, 나도 아직 갈치랑 말 트기어색한데 먼저 조금씩 갈치에게 말을 건네던 모습. 내 손발이 퉁퉁 부으면 자기 손발이 부은 것처럼 걱정해주고, 불량식품 못 먹게 잔소리 해주고, 후줄그레한 임신복을 고수하던 내게 칼라풀한 임신복을 깜짝 선물하는 상근자들을 보면서, 힘든 활동 속에서도 나름 임신은 즐거운 경험이 되곤 했다. 그렇게 민우회 상근자들과 함께 활동하며 갈치를 맞이하고 축하와 염려, 배려를 받은 지 벌써 8개월째. 이제는 낳고 키우는 것만 남았다! 아, 떨려. 저 건강하게 갈치 낳고, 즐겁게 키우다가 올께요!
나우 ● 이 글이 실린‘함께가는 여성’도 사무실에서
직접 건네받는 게 아니라, 집에서 우편으로 받아볼 수 있겠지?
아…그땐 함여도 정말 재밌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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