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7*8월호 [쟁점과현안]상상력이 필요한 때
상상력이 필요한 때
따우 ●
비전문가, 군 가산점제에 대해 떠들다
먼저 이 글의 청탁은 한두 다리도 아니고 몇 다리를 건넌 후에 내게 건너왔음을 밝힌다. 전문가가 써도 될까 말까 한 글을, ‘ 재미있게 살자’외에는 별 생각도 없는 나 같은 사람에게 맡기다니‘함께 가는 여성’편집 팀도 어지간히 급했나 보다. 어쨌든, 그만큼 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 써야할 글을 내가 망치는 것은 아닌지 약간 걱정은 되지만, 비전문가라는 장점(!)을 살려 거침없이 얘기를 풀어 보기로 한다.
일단 사실관계 확인. 1999년 헌법재판소는 군 가산점제가 평등권, 공무담임권,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고 한다. 하지만 정작 나는 관심이 없었다. 왜? 나는 이미 취직을 했었으니까. 그리고 나는 공무원이 될 생각이 전혀 없었으니까. 그런데 왜 이렇게 시끄러운 거야? 우리나라에 공무원 하겠다는 제대군인(군필자)이 이렇게 많았나? 공무원 할 거 아니면 그냥 조용히들 좀 있지? 하는 생각만 들었다.
그로부터 8년. 그 동안 나는 (둘 사이에 큰 상관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회사를 관두고 여성주의자가 되었고, 여성단체 활동가가 되었다(불과 한 달 전의 일이니 나는 여전히 ‘비전문가’맞다). 그동안 헌법재판소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는지, 사람들의 기억력에 계속 문제가 생기는 건지, 위헌 판결에도 불구하고 군 가산점제는 잊을 만하면 누군가 한 번씩 들고 나오는 이슈가 되었다. 바로 얼마 전에도 아무개 의원께서 터뜨리셨단다. 여성가족부와 여성. 장애인 단체의 적극적인 반대로 국방위 통과가 미뤄지기는 했지만, 어느 때보다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나.
군 가산점제는 여.남의 문제가 아니라 제대군인.국가의 문제
IMF 이후에도 공무원은 여전한 인기 직업인지라 그런지 이번에도 온 나라가 시끌시끌하다. 토론방송에 나와 원색적인 발언을 쏟아냈다는 아무개씨는 ‘거성’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하고, ‘양성’징병에 사회봉사 제도까지 군대 관련주장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져 나온다. 가산점을 받고 싶으면 여자도 군대 가거나(그럼 장애 여성과 남성들은 어떡해?), 군복무 기간만큼 사회봉사를 하라는 거다. 어쨌든‘가산점을 받고 싶으면’말이다.
그런데 여전히 공무원 될 생각이 없는 나는, 문득 이런 의문이 드는 거다. 왜 다들‘가산점’에만 목매는 거야? 8년 전의 의문이 스멀스멀 다시 기어 나온다.
자, 보자. 공무원 채용할 때 가산점 달라고? 국가를 위해 봉사했으니 국가에서 실시하는 시험에는 가산점을 줘야한다고? 좋아, 그 정도 어렵겠나. 헛, 그런데 그렇게 되면 사기업에 취직하는 사람들은 어떡하나? 제대군인 간 차별 아닌가? 아뿔싸, 그럼 사기업에도 줘야겠네. 응? 그럼 자영업자는 어떡해? 자영업자한테도 군 가산점제를 주자(자영업자한테 어떻게‘가산점’을 주냐고? 어허, 상상의‘여지’를 발휘하시라). 등등등 등등등. 그런데 이 방식은 결국 벽에 부딪히게 된다. 국가가 ‘모든’ 제대군인한테 가산점을 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 ‘혜택’ 내지 ‘보상’을 못 받는 사람이 생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럼 그들이 받는 불평등은 어떻게 해소할 텐가? 철푸덕. 대책이 없다(이쯤에서 여러분이 왜 이 문제가 여성.장애인 대 남성의 문제가 아니라 징집 제대군인 대 국가의 문제인지 눈치 채셨길 바란다. 그러니 공무원 안 될 제대군인들이여, 단결하라!).뭐, 대책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다. 어차피 국가가 제대군인을 평생 먹여 살릴 게 아닌 이상‘있을 때 잘해’주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그렇다. 이제 여기서 군대문화 민주화, 사병월급 현실화, 국민연금에 반영, 이런 얘기가 나오는 거다. 결국 2년 동안의 군 생활이‘썩는 것’이라고 생각지 않게 되면 군 가산점제 논란은 자연히 없어질 거다. 물론 그 정도로 군대가 좋아지면 징병제는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질 테고, 모병제 내지 군대 해체 주장이 등장할 테지만. 군대 없는 세상은 생각만 해도 즐겁다(어떻게 군대가 없어지냐고? 어허, 상상력!). 그럼 여기 따라오는 얘기. 그럼 세금 더 낼래? 응! 얼마든지 세금 더 낼 용의 있다. 월급이 적어서 세금도 얼마 안 걷어가는 게 한 가지 아쉬움이긴 하겠지만.
사고의 지평을 넓히자
그렇다면 군 가산점제가 도입될 경우, 이 제도로 가장 큰 이득을 보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군필자? 남자? 땡! 바로국가다. 가산점만 주면! 계속해서 최저임금을 들이대기도 어려운 월급으로‘신체 건강한’남성을 2년 가까이 부릴 수 있다. 따로 보상해 줄 명분이 사라지니까. 가산점만 주면! 비민주적 군대문화? 낙후된 시설? 크게 투자할 필요 없다. 군대, 지금처럼만 하면 되는 거다. 어차피‘징집’이니까 반항한다고 어쩔 것인가. 다시 말하자면, 국가에게는 군 가산점제가 손 안 대고 코 푸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인 거다. 가산점제 하나로 모든 보상 의무를 나몰라라 할 수 있으니까.
따라서 지금 논란의 핵심이 되어야 하는 것은, 군 가산점제가 아니라 무엇이‘대한민국 신체 건강한 남성’들을 상대적 박탈감에 휩싸이게 했는가, 이다(가산점제가 없어서 그렇다는 말은 말자. 예전에 가산점제 있을 때도‘기꺼이’입대한 사람은 별로 없었던 거 다 안다). 즉, 가산점 찬성이냐 반대냐 하는 이분법적 논란에 종지부를 찍는 일이다(의원님들도 그렇고 여성.장애인 단체도 그렇고 가산점제 문제 터질 때마다 엇비슷한 얘기 되풀이하기 지겨울 거다).우리는 오랫동안 주어진 틀 안에서 생각하기를 강요받아왔고, 모난 돌이 열심히 정 맞는 것을 지켜봐 왔으며, A와B 중 하나만 선택하라는 윽박지름도 당해 왔다(그래서 가산점에 목숨 거는 사람들도 한편으로 이해는 된다). 그렇지만 이제 새로운 제도, 새로운 세상을 앞당기기 위한 상상력이 필요한 때다. 이 상상력이라는 게, 전국 어린이 사생대회 나갈 때만 필요한 건 아니잖은가.
따우 ● 회원에서 상근자로 다운그레이드
(downgrade)된 지 갓 한 달 지난 상근활동가.
회의는 싫다고 맨날 툴툴거리면서도
필요한 일은 어떻게든 하고 있다고 자부(?)하는,
재섭는(!) 캐릭터입니다,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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