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7*8월호 [민우칼럼 창]이중적 성문화의 극복과 자율적 성영역의 확대
이중적 성문화의 극복과 자율적 성영역의 확대
성매매특별법, 금지주의, 도덕주의
조희연 ●
올해는 87년 6월항쟁 20주년이자, ‘민주정부’10년이 되는 해이다.
민주정부 10년이 된 오늘, 많은 사람들은 민주정부 10년의 실패와 한계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러한 실패와 한계에도 불구하고 국민정부 하에서 이루어진 6∙15남북화해, 국가인권위원회와 여성부의 설치에 대해서는 긍정적 평가를 내린다. 여성 정무장관, 여성특별위원회를 거쳐 2001년 국민정부 하에서 여성부가 신설되었다면, 참여정부 하에서는 2004년 성매매 특별법의 시행, 2005년 3월‘호주제 헌법불합치’판결이라고 하는 획기적인 제도적 변화로 이어졌다. 이러한 제도적 변화는 반독재민주화운동의 일부로 성장한 진보적 여성운동이‘주류 여성운동’-사회전체적인 구도와는 별개로-으로 전환되었다는 것과 궤를 같이 한다. 이러한 변화는 우리 사회에서 가부장적 질서, 성문화, 젠더정치, 성(sexuality/sex)을 둘러싼 여론질서에 중대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의미한다.
나는 요즘 여성부와 여성운동의 여러 성과 중의 하나로 제정된 성매매특별법의 시행을 둘러싼 실천이 뭔가 보완적으로고민해야 할 점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동안 진보적 여성운동은 우리 사회의 성매매를 극복하기 위해서 성매매특별법제정을 선도했고 현재 이의 철저한 시행을 지원하는 입장에 서 있다. 이는 긍정적인 것이다. 그러나 이와 함께, 자유롭고 자율적인 성의 영역(여기서부터 성은 섹슈엘리티보다는 주로 섹스의 의미에서 사용된다)을 확장하기 위한 급진주의적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성매매특별법에는 두 가지 성격이 공존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성노예 금지’, ‘인신매매 금지’, ‘여성에 대한 폭력 근절’이라는 보편적인 규범을 구현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성매매에 대한 금지주의(禁止主義)적 규율이다. 전자의 측면에서 성매매특별법은 한국사회를 세계적 표준에 다가가게 하는 계기가 된다. 후자와 관련해서 논한다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성매매와 관련해서 금지주의(禁止主義)나 합법주의, 규제주의와 같은 쟁점이 존재한다. 성매매특별법은‘금지주의’대‘합법주의’의 쟁점에서 자에 선다고 판단된다. 성매매특별법을 합법주의나 성노동자의 입장에서 쟁점화하는 입장도 있을 수 있겠지만-물론 이것도 우리 모두의 고민의 주제이다-현재 우리가 서둘러야 할 것은, 왜곡된 공식적인 성문화를 변화시키는 노력이다.
주지하다시피 우리 사회에는 성(sex)에 대한 이중적인 잣대가 존재한다. 공식적으로‘유교적’성비하(性卑下) 인식과 행태가 존재하면서, 비공식적∙음성적으로는 세계적으로 성매매에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 사회에 현존하는 성에 대한 도덕주의적 관념은 ‘공식적 성윤리와 비공식적 성문화’사이의 괴리를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동하면서, 성매매를 음성적으로 더욱 확대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처벌받지 않는 성매매는 역으로 이중적인 성문화를 다시 강화하는 악순환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성매매특별법이 전제하는 금지주의를 수용하되, 그것이 대중들에게 성문화 일반에 대한 도덕주의적 규율로 작용하지 않도록 하는 보완적인 실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노력에는 간통제의 폐지와 같은 제도적 변화에 대한 노력도 포함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차원을 넘어서서 성인식에 대한 급진주의적 전환이 더욱 근본적인 것으로 생각된다. 성은 수치스러운 것이고 은밀한 것이라는 인식을 바꾸어야 한다. 나는 성은 여성과 남성 주체들의 자기결정권에 따라 열려진 영역으로 생각한다. 즉‘둘이 좋으면 맘대로 하게 하라’고 말하고 싶다. 사회지배규범인 공식적인 성문화의 해빙(解氷)을 통해서‘자율적인 성의 영역’을 확장함으로써 성매매를 촉진하는 구조적∙관계적 근거를 동시에 극복해 가야 한다. 이러한 자율과 자유의 증대는 다양한 성적 취향의 표현양상에 대해서 우리 사회가 더욱 개방성을 갖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금지주의 자체의 지향에 대한 해석이 다양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사랑과 책임이 수반되지 않는 성’이 아닌 권력과 돈, 폭력에 의한 성을 금지하고자 하는 지향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성매매 금지를 추구하면서도 동시에‘사랑을 전제로 한 성의 자율적 영역’을 대폭 확장하는 노력이 함께 가야할 것이다(물론‘사랑을 전제로 한 성’자체도‘일부일처제적 성’과 동일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책임을 전제로 한 성’이라는 것도 장기적으로는 우리 사회의 사회제도적 변화를 통해서-물론 가족을 둘러싼 성역할의 변화와 함께-그 책임 자체의 하중(荷重)을 낮추어 가야 할 것이다.
여성운동은 또 하나의 쾌거인 호주제 폐지라고 하는 전환적계기를 맞고 있다. 호주제 폐지는 중장기적으로는 가족관계의 일정한 변화를 촉진하게 될 것이다. 하나의 제도변화는 다양한 현실적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만일 호주제 폐지로 인한 가부장적 구조의 변화가 이중적 성문화의 지속과 맞물릴 때, 가족 관계의 변화는 지체될 수 있을 것이며 따라서 자율적 성의 영역의 확대가 어렵게 될 수도 있다. 성매매 금지노력과 호주제 폐지로 인한 가족관계의 변화가 성문화의 자율성 확대와 음성적인 성매매의 축소라고 하는 방향으로 나가도록 하는 보완적 노력을 서둘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는 주어진 젠더질서로서의 남성과 여성의 경계를 뛰어넘어 새로운 젠더정체성을 구성하고자 하는 진보주의자들 모두의 몫이 될 것이다.
조희연 ● 성공회대에서 사회과학부∙NGO대학원 교수이자 민주주의와 사회운동연구소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2007년부터 한국여성민우회 이사로 함께하고 있다. 80년대부터 이론과 실천 영역에서‘학계의 마당발’이라고 지칭될 정도로 활발한 활동을 해오다가 최근에는‘종합병동’이라는 별명을 달고 다닐 정도로 '비실비실하게' 살고 있다.
홈페이지는 http://dnsm.s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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