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7*8월호 [민우ing]비정규직 법, 상상을 멈추게 하는 거짓말
비정규직 차별 집중상담
비정규직 법, 상상을 멈추게 하는 거짓말
비정규직 차별, 찾아 바꾸기
신기루 ●
7월 1일, 평범한 어떤 날이 특별한 의미를 갖기 시작했다. 기간제및단시간노동자보호등에관한법률, 파견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 노동위원회법. 이 세 가지 개정법률이 시행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정부에 의해‘비정규직 보호법’으로 불리고 노동자들에 의해‘비정규직 해고법’, ‘ 비정규직차별확산법’으로 불리고 있는 비정규직 관련법의 시행을 전후해 7월 1일은 하나의 경계가 되었다.
사용자 대표 단체 경총은‘인력관리체크포인트’라는 보기 좋고 읽기 좋은 법안 설명서를 펴내 이 법에 대응하는 사용자의 자세를 설파했다. 노동부에서는 지금도 경품 당첨자가 발표되고 있는‘비정규직 보호법 바로 알기’사이트를 통해 법안 홍보를 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빠르게, 상당히 ‘신선한’ 방식으로 ‘형식상’ 정규직화를 실시했다. 그리고 지난 7월 1일 법 시행을 기념하여 노동부 직원과 이상수 장관 등은 상징적으로 우리은행 본점 앞에서 시루떡을 자르고 가두행진을 하기도 했다.
여성노동자들은 비정규직의 절대적 다수를 차지하고 있고, 또 경영 위기든 국가의 위기든 위기가 올 때마다 가장 먼저 임금이 깎이고 해고되는 대상이므로, 비정규직 법 시행과 관련된 일련의 문제는 여성노동계의 매우 중차대한 사안이었다.
법이 만들어낼 정세에 개입하기 위해 고용평등상담실은「비정규직 차별, 찾아 바꾸기」와「비정규직 차별 집중상담」을 진행했다. 이 법의 적용대상은 여성노동자들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과연 여성노동자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고용형태를 이유로 한 차별상황을 체크해 보고, 법을 긍정적으로 활용해 볼 수 있는 여지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활용해 보자는 취지도 있었다. 참여게시판도 만들었다. 우리나라 비정규직 인구가 800만이라는데 비정규직 스스로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비정규직이 아니더라도 우리사회의 주요 과제인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어떤 시선을 갖고 있는지 ‘800만의 상상’ 을 통해 알아보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야심찬 게시판은 알만한 몇 사람이 주고받은 글들로 채워지고 ‘파리 날리는’ 상상 게시판이 되고 말았다. 이런 지경에 이른 데까지 몇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어쨌든 이 법을 계기로 비정규직 문제 전체를 풀거나 논하기에는 태생적인 한계(?)가 있었던 것은 아닌가 싶다.
상반기에 접수된 비정규직 상담은 49건이었다. 전체 상담의 28.2%를 차지하고 있으니 상당히 높은 셈이다. 상담내용을 구체적으로 보면, 직장내 성희롱 상담은 18건, 성차별 해고 및 근로조건 차별 상담이 14건, 산전후휴가, 생리휴가 등의 상담이 8건이었다. 법 시행을 전후해 상담이 급격하게 증가했다든지 하는 확연한 차이는 보이지 않았지만 의미 있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이제 막 노동시장에 진입한 20대 여성노동자 ㄱ씨는 정규직 채용공고를 보고 응시를 했다가, 한 달이 지나 근로계약서를 작성할 때는 1년짜리 근로계약을 해야 했다. 정규직이나 마찬가지고 형식적으로 쓰는 계약서일 뿐이라고 했지만 계약기간이 종료되면서 더 이상 일할 수 없었다. 4년간 계약을 갱신하면서 일한 ㄴ씨는 비정규직 관련법이 시행되기 전에 비정규직을 정리해야 한다면서 동료 10명과 함께 계약해지 됐다. 회사에서는 한 달을 쉬고 다시 나오라면서 무기계약, 파견, 2년 계약 중에 하나를 고르자고 했다. ㄷ씨는 10년을 일한 학교에 임신 사실을 알리자 그동안 아무 의미도 없었던 계약기간이 끝났다며 그만두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ㄹ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농협에서 창구텔러직 일을 시작했다. 13째 근무할 무렵 IMF구제금융을 맞아 남편대신 명예퇴직을 해야 했고 바로 다음 날부터 똑같은 일을 하는 계약직이 됐다. 그리고 7년 동안 계약서에 사인만 하면서 일했다. 비정규직 관련법 시행을 앞두고 남성노동자들은 경제사업장 등으로 전직하여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되었다. 반면 창구텔러직 여성노동자 전원은 모두 계약 해지됐다. ㅁ씨는 한부모 가장이 된 후로 생계와 양육을 책임지기 위해 단시간 노동자로 취업했다. 오후에 출근해서 저녁에 퇴근하는 줄 알았던 직장은 오전근무로 시간이 바뀌기 일쑤고 수당 없는 초과근로도 자주했다. 전화 건수를 채우지 못하면 남아서 일을 해야 했고 남성 상사들의 불쾌한 시선과 언어폭력, 무시에 시달려야 했다. 제 날짜에 임금을 받는 정규직에 비해 언제 임금이 나올지 몰랐다. 여전히 비정규직이라서, 여성이라서 받는 차별은 지속되고 있었다. 법이 일말의 효과라 도 발휘했나 싶을 정도였다.
비정규직 법 시행 때문에 몇 가지 차별과 부당한 대우가 늘었다. 법 시행과 관련된 사례를 중심적으로 살펴보면, 비정규직 법이 해고의 직접적인 사유가 되거나 시행을 앞두고 차별금지 규정의 회피 수단으로 분리직군제, 하위직급 신설, 차별 채용∙배치 등이 나타나고 있었다. 비정규직의 일부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되, 기존 직급외에 최하위 직급을 신설하여 배치하는 식이다. 이런 방식은 우리은행에서 창의적으로 도입하여 정부와 타 기업에 훌륭한 응용 예를 제공한 바 있다. 그러나 이 직무급제는 임금 차와 승진 제한 등 차별을 존속시킨다. 분리의 대상은 대부분 여성노동자들이다. 여성노동에 대한 낮은 평가와 성별분업의 두터운 벽을 인정하는 현 상황에서 분리 직군제, 하위직급신설은 성차별을 더욱 공고히 할 뿐 아니라 또한 차별진정 제도를 희석시키는 방식으로 기능할 것이다. 성별, 고용형태에 의한 차별은 직무상 차이로 포장되는 것이다.
2007년 7월 1일 시행된 비정규직 법률은 법안 제정과정에서 비정규직 차별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대안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논란이 되어 온 바 있다. 6월 3일 노동부가 펴낸 차별시정안내서와 6월 18일 발표된 시행령은 차별을 시정을 하기에는 헐겁고 노동자가 이용하기에 복잡한 것이 차별시정제도라는 점을 드러냈다. 시행령을 통해 여성노동자들이 주로 종사하는 사무직, 유통, 판매직에서 파견직은 확대되었고 2년이 지나 정규직으로 전환될 사람은 너무 희귀해 구경나게 생겼다.
7월 1일이 다가오면서 잠잠함이 불안하던 그 즈음에 KTX 새마을 승무원 노동조합은 무기한 단식 농성에 들어갔고 이랜드 일반노동조합은 매장을 점거했다. 7월 1일이 시행이라면 설마 6월 30일까지만 일하라고 할 것인가, 그렇게 빤히 보이는 뻔뻔한 해고를 할 것인지 의심스러웠지만 그런 일이 일어났다.
뉴코아와 홈에버에서 현재까지 1,000명을 해고했는데, 시행령 전날인 6월 30일 뉴코아에서 300명을 정리해고 했다. 영화 보러 가거나 피죤, 슬리퍼를 사던 그 홈에버는 파란 옷을 입은 계산원 여성노동자들의 파업현장이 됐다.
비정규직 관련법은 여성노동자의 시선, 관점, 이해, 요구를 담은 법이었나? 혹자는 ‘2년 후 정규직전환’과 ‘차별시정제도’라는 두 개의 장점에 희망적 시선을 보내며 관리감독만 잘 해낼 수 있다면 이 법이 유용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말도 했다. 7월 1일이 지난 지금은 이 물음에 대해 보다 명확한 답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차별과 불안은 인간을 파괴한다. 차별과 불안 중에 무엇을 택하겠느냐고 묻는다면 어떤 대답을 할 수 있겠는가?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을 제시할 수 있는, 비정규직을 사용하려고 하는 사람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을 보호할 수 있는 법이 되어야 한다. 이 법에 대한 비판적 질문을 던지고 재구실을 할 수 있도록 바꾸어 내는 노력이 남은 과제이다. 그런 의미에서 집중상담이라 칭할 것도 없이, 기간을 정할 것도 없이 찾아 바꾸기의 노력은 지속돼야 할 것 같다.
신기루 ● 미록♡♡♡ 농구가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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