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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9*10월호 [모람풍경]지엄 또는 지음_임계재
2007 9*10월호 [모람풍경]지엄 또는 지음
지엄 또는 지음(知音)
청요리집(임계재) ●
"요게가 남해거덩, 니 말대로 지엄인 분 전원주택에 왔다 아이가!" 지엄? 그게 뭐지? 친구 언니의 전화를 받고 헤맸다. 아무리 생각해도 난 그런 말 한 적 없는 것 같은데... 머리를 한참 굴린 후 가까스로 해독했다. 지음(知音)의 경상도 버전이었다. 중국을 대표하는 강 두 개는 황하(黃河)와 장강(長江, 즉 양자강)이다. 시험문제 같이 김 새는 이 표현을 쓰는 이유는 강가에 얽힌 이야기 때문이다. 유방(이 사람은 이름이 다리 허리 다 두고 하필 유방인지...)이 한나라를 세우는데 노련한 지략참모였던 장량(장자방)이 “토사구팽” 당하기 싫다는 명구를 남기고 숨어들었다는 곳인 장가계, 한국에서 가려면 중국 국내선 비행기 갈아타는 코스 가운데 양자강에 둘러싸인 도시인 무한(武漢)이 있고 바다처럼 물결 넘실거리는 강가, 여간해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한적한 곳에 고금대(古琴臺)가 있다.
춘추시대, 대단한 음악가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유백아(兪伯牙), 중원에서 이름을 떨치던 그 마에스트로는 자칫 줄 잘못 섰다가는 목숨이 날아갈 어지러운 정치판을 피해 강가로 몸을 숨겼다. 초나라를 휘돌아 흐르는 장강은 오죽이나 길고 넓은지. 구석구석 절경이 널린 어느 계곡으로 숨어든 그는 물가에 앉아 자신이 가장 잘 연주하는 금(琴)을 튕기기 시작했다. 물 흐르는 소리, 새가 우짖는 소리를 비집고 세상 최고의 고수 유백아의 연주가 울리자 어떤 땔나무꾼이 말을 걸었다. “당신이 지금 연주하는 곡을 듣자니 높은 산에 흐르는 물소리 같구려” 어라? 다름 아닌 <고산유수(高山流水)>를 연주한 참인데 이 촌사람이 어떻게 이 곡명을 알았지?
세상에 모습 드러내지 않은 채 나무꾼으로 살아가는 은자(隱者) 종자기(種子期), 그리고 군웅할거에 아수라장이던 중원 땅에 이름 날리던 음악가 유백아는 이렇게 음악 한 곡으로 서로의 내공을 알아봤다. 구태여 구구한 설명은 필요하지 않은 관계가 됐단 말이다.
얼마 후 백아는 자신의 유명세를 원하는 간절한 요구에 중원으로 돌아가면서 일년 후 돌아오겠노라고 약속했다. 그러나 그 일년은 새 끼를 치고 또 쳐 몇 년이 되었고 드디어 약속을 지키려 양자강 기슭 종자기가 사는 곳에 왔을 때 친구는 반갑게 맞아줄 수 없었다. 종자기의 무덤에 이른 유백아, 가슴을 훑어낼 통곡이야 누구라도 짐작할 터이고 이제는 더 이상 자신의 음악을 들어줄 사람이 세상에 남아있지 않으니 앞으로 금을 연주하는 것은 아무 의무가 없을 것이었다. 그래서 유백아는 그토록 아끼던 거문고의 줄을 끊어버렸다. 이 이야기가 지금까지도 전해지는 백아절현(伯牙絶鉉), 또는 지음(知音) 고사의 배경이다. 그들이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았는지 나는 모른다. 다만 한 가지, 진정으로 마음이 통하는 존재, 막힘이나 해석이 필요하지 않은 채 마음 통하는 행복이 어떤지는 잘 안다.
지음, 또는 서양식으로 말하면 <영혼의 친구(soul mate)> 쯤 될 이 말은 세상 어떤 일이 있어도 신뢰하고 서로에게 북돋움이 되는 사이를 말하는 것 아닐까. 어떤 경우에도 일단 편들고 긍정할 사람, 완벽한 신뢰와 의심 없는 지지를 바탕으로 하는 관계인 사이. 지음에는 세속적 이해관계나 뭐 주변에서 흔히 잘못 해석되는 자존심 따위는 끼어 들 여지가 없는 사이 말이다. 삶에서 자존심과 자신감이 생기게 해 주는 사람이 지음이기 때문이리라.
개인적으로 친구라는 단어에 몹시 인색한 내게도 이런 친구가 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우선 편들고 긍정할 수 있는 사이, 주위에서 무슨 험담을 해도 당장에 맞장구치고 부화뇌동하지 않는 안정적 신뢰의 관계다. 자칫 목숨 놓을 뻔한 상황이 되었을 때 마지막 얼굴이라도 봐야 나머지 삶을 이어갈 거라며 울면서 먼 나라에서 달려온 지음 말이다.
“부모 팔아 친구 산다”는 말이 가슴에 와 닿지 않았던 젊은 시절 만난 지음은 서툴고 불안전한 시절, 세상에 별 일이 다 있다는 것을 도대체 받아들일 수 없어 펄펄 뛰는 나는 편협 그 자체였고 친구는 지긋한 사투리로 애초 꽉 막힌 나의 그 꽉 막힌 물꼬를 탁 탁 틔워주었다. 서울서 갇혀 자라며 겨우 중고등학교에서나 우수했던 밥맛 없는 범생이에게 인간의 삶이 얼마나 여러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지를 보여준 사람, 인간에 대한 선의(善意)를 끝까지 놓지 않았던 큰그릇을 친구로 삼을 수 있었던 내가 얼마나 복 받은 인간인가는 젊었을 때는 몰랐다. 그러나 살아갈수록 새록새록 지음의 존재를 깨닫고 지금은 순간순간 감사하고 산다.
목숨의 귀함을 가장 높은 순위에 올려놓고 지푸라기 같은 힘이나마 다른 이에게 보탬이 됐으면 하는 최근 나의 움직임에 선의의 불을 지펴 준 나의 지음은 여전히 돈 안 되는 여성 운동하느라 삐쩍 곯은 모습에 수십 년째 지독한 사투리 억양의 외국어를 나름대로 유창하게 구사하며 눈썹 휘날리도록 곤경에 처한 여성들에게 힘 돋워주느라 바쁘다.
모든 것을 다 품고 받아들이는 대지의 여신인 여성들이여! 나처럼 운 좋은 사람이 부럽다면 그대들도 지음을 하나씩 갖도록 하자. 자잘한 이익일랑 휙 내던지고 서로의 소리를 어디서고 대번에 알아들을 수 있는 지음 덕분에 오지게 행복한 인생이 되도록 말이다.
청요리집 임계재 ● 중문학자
숙명여대 지역학 연구소 중국학 책임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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