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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9*10월호 [문화산책]‘여자들의 유쾌한 질주’ 서평·감상퍼레이드
2007 9*10월호 [문화산책]‘여자들의 유쾌한 질주’ 서평·감상퍼레이드
문 화 산 책 _ 서 평 . 김 상 퍼 레 이 드
네! 드디어 출간되었습니다! 민우회원과 활동가들이 20년간 써낸 주옥같은 글들을 모아 편찬한 수필집, ‘여자들의 유쾌한 질주’! 조금 낯 뜨겁지만(^^;) 이번 문화산책은 수필집의 감상을 들어보기로 했습니다. 인터넷 서점에서 날마다 판매순위를 갱신해가고 있는 화제의 그 책! 감상을 통해 만나 볼까요?
든든한 큰 언니들의 지혜를 읽다
LAYLA●
처음 읽어나갈 땐 '언니네 방' 시리즈와 비슷하려니 했는데 다 읽고 나선 언니네 시리즈와 확실히 구별되는 이 책만의 무게와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냥 겉으로 보기엔 '한국여성민우회'에서 엮은 이 책이 웹상의 글을 모아 엮은 언니네 방 보다 더 정치적이고 과격할 것 같지만 두 가지 다 읽어본 소감은 오히려 그 반대라는 것.
언니네 방이 예민한 감수성의 소녀, 어린 여자가 상처를 받고 치유하는 과정에서 여성주의를 만나 성장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면 여자들의 유쾌한 질주는 젊음의 불안함과 혼란의 시기를 견뎌낸 든든한 큰 언니가 생활 속에서 어떻게 여성주의를 실천하며 살고 있는지, 부딪힘의 고통을 통해 터득한 관대함과 여유로움이 어떤 것인지 보여준다.
그래서 육아, 직장 내 성차별, 가족 등 일상적인 소재의 이야기가 책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으며 실제 여성이 직장에서 부딪치는 차별에 대해 사례별로(^^;) 구체적으로 알 수 있고 육아와 관련해서도 마냥 남의 일만은 아니기에 '과연 나라면'이라는 맘으로 읽을 수 있었다.
직장 내 차별의 경우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차별 받고 있는지, 여성이 겪는 갈등이 어떠한 것인지 개인의 경험을 통해 생생하게 그려지므로 여성주의가 왜 필요한지 의구심을 갖는 사람들이나, ‘실생활에서 여성이 무슨 차별을 받는다는 건지 전 모르겠어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경우 이 책을 읽음으로써 가볍게 타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볼 기회를 얻을 수 있을 듯 하다. 페미니즘에 관심은 있는데 페미니즘 이론서 읽는 건 죽어도 못하겠다면 이것으로 시작해도 좋을 것 같다.
나는 나의 10년 후, 20년 후는 어떤 모습일까, 이 책을 통해 희미하게나마 그려보기도 하였다. 나 역시 지금에 최선을 다함으로써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으리라는 작은 희망을 보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보다 훨씬 열악한 상황에서 지금을 만들어 낸 큰언니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
여자를 알고 싶은 남자들에게
The스●
나는 감히 여자들에게 이 책에 대해서 머라 머라 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나는 어쭙잖지만 어설프지만 그래도 좀 이해를 해 보자는, 그들끼리는 진보적이네 하는, 몇 줌 안되는 남자들에게 이 책에 대해서 이야기 해 보고 싶은 것이다.
머리로 안다는 건 몸으로 안다는 것과 별 상관이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분명히 난 여자들의 문제에 대해서 머리로 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여자들의 문제에 대해서 직감적으로 알지 못하며 그 판단에는 상당한 양의 산소 소모가 필요한 이성적 사고과정이 있어야만 한다.
'태생적 한계의 극복' 이란건 블레이드 러너에서 로이가 자신의 DNA를 모두 바꾸어 줄 것을 요구하는 것만큼이나 내게는 회의적이다. 한계를 빨리 인정하고 인식수준의 오프셋값을 적절하게 설정하는 것만이 그나마 너무 빗나가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된다.
여성주의에 대한 나의 최초 접근은 논문이나 문헌을 통해서이나 이게 너무나 넓고 뒤얽힌 복잡다단한 다층구조임이 초반에 분명해짐으로써 가볍게 책 몇 권 봐서는 어림도 없는 일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계보 추적으로 전환하였으나 이 역시 여의치 않아 이제 답보상태 내지는 포기 단계에 근접해 가지 않나 한다. 그런데 이 책은 바탐업(bottom up)으로서의 재시도 가능성을 보여준다. 흔한 개별적인 사실에서, 공통적 즉 일반적 사실을 뽑아내는 것이다.
이 책에는 매우 원형적인 개인적.개별적 사실들이 있다. 그 사실들을 낳은 현실 속에서는 당신이 보지 못하였거나, 보고서도 아무런 느낌도 받지 못하였거나, 느낌은 있었으나 ‘좋은 게 좋은 거지’라고 넘어갔거나, 엉뚱하게도 태생적 우월감으로 즐겼거나 간에, 이 책의 이야기들이 그저 잘나지 못한 여자들의 호사스런 불만족의 잔소리쯤으로 들린다면, 앞으로 그대들이 내뱉는 정의니 평등이니 공정이니 사랑이니 등등 이런 예쁜 말들은 공허 그 자체일 것이다.
아주 오래전 아부지는 어린 아들에게 그러셨다
"남들과 똑 같다면 살아야 할 이유가 머냐? 신이 왜 그런 낭비를 하였겠니?"
"달라진다는 건 '왜' '왜' 에서 시작하는 거란다"
이 책에서 달라져야 할 이유를 재귀적으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도 약간의 비용과 심하게 굳어지지 않은 가슴만 있다면 말이다.
어쩜 이리 똑같은지!!
chika●
나는 아마 이 책을 선물 받지 않았다면 굳이 읽을 생각을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다. 왠지 모를 선입견이 이 책 역시 그저 그런 내용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내 머릿속에 집어넣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말 어쩌면 모든 이야기가 나와 나를 둘러싼 이들의 이야기와 똑같은지! 굳이‘페미니스트’라고 하지 않아도, 우리가 둘러앉아 수다 떨다가 나옴직한 이야기들이 한보따리이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 이야기라는 공감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을 낼름 다 읽어버렸다.
책 속에서 어느 누군가가 남자들은 모이면 남 얘기만 떠들어대지만 여자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고 했다. 그것의 단적인 예가 바로 이 책이 아닐까? 거창하게 여성운동 어쩌구…가 아니라 대한민국 땅에서 살아가는 이 시대의 여성으로서(간혹 남성으로서) 경험하는 이야기들에 대한 공감을 느끼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라 권하고 싶다.
이건 멀리 떨어진 별나라의 외계인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 우리들의 이야기이다. 그래서 홀랑 읽혀버리는 재미있는 이야기이다. 내 말 믿고 한번 읽어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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