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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9*10월호 [연재기획]자매애란 이름과 여성들의 집단지혜_이오
2007 9*10월호 [연재기획]
자매애란 이름과 여성들의 집단지혜
- 강문순 님의 글을 읽고
이오 ●
‘함께 가는 여성’ 180호에 강문순 님이 쓰신 글(‘자매애는 있는가를 읽고’)은 그에 앞서 179호에 게재된, 자매애를 주제로 한 기획의 방향성과 내용에 대한 문제제기로 보인다. 그 기획에 참여하고 글을 썼던 입장에서, 오랜 동안 “여성운동 속에서 살아온”강문순 님의 진지한 관심이 반갑고 감사하다. 자매애(라는 이름)를 고민하는 분들과 좌담에 참여했던 분들께 강문순 님의 진심이 전해졌으리라 생각한다.
우선 자매애에 관한 기획의 취지를 다시 언급하는 것을 시작으로 이해의 폭을 넓혀보고 싶다. 차이와 동일성이 교차하는 여성들의 다양한 관계를 성별 정체성을 주재료로 한 ‘자매애’라는 렌즈로 수렴하여 바라보는 것이 타당한지, 자매애가 여성들의 이상적 가치임이 분명하다면 현실에서는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하나의 ‘고정된’여성 정체성을 전제한 듯한 자매애 담론을 넘어 여성들간의 차이와 소통에 대해서도 허심탄회하게 말해보자는 것 등이 애초의 의도였다. 그래서 가벼운 수다좌담의 형식을 취한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합의된 것은 여성들 간의 연대와 지지 등이 여성들에게 큰 힘을 준다는 당연한 전제였다. 역사 속에서 쌓아온 여성운동의 성과가 이를 증명한다. 공적인 이슈들에서부터 공식적으로 언어화되지 못한 여성들의 감정적.물질적.관계적 문제 등 생활세계의 숱한 어려움들에 이르기까지 여성들 사이의 연대와 공감과 지지가 얼마나 여성들에게 용기를 북돋우는지 부인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여성들의 아름다운 관계를 두고 어떤 이는 자매애라 할 것이고,어떤 이는 자매애라는 이름의 그릇에 담는 데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또 후자의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계급.인종.국적.학력.지역.장애유무.혼인여부.정치적 입장 등등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차이를 아우르는 여성들 간의 연대가 어떤 부분에서는 가능하고 어떤 부분에서는 불가능하다고 보는 입장도 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자기 둘레의 가까운 사람, 혹은 자기가 신뢰하거나 지지하거나 연민을 갖는 대상과의 호의적 관계는 자매애로 느끼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엔 아예 자매애란 ‘없는 단어’로 여기는 이도 있을 것이다. 한편 “자매애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보편적 가치의 실현을 위한 노력”으로 보는 의견도 적지 않을 것이다. 이런 뜻에서 자매애라는 이름에 부여된 ‘과도한 믿음’이나 아우라를 한번쯤 되돌아보자는 것도 취지의 일부였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이유에서 ‘자매애는 있는가’라는 다소 도발적인 제목도 나오게 되었으며, 이것이 곧바로 ‘자매애는 없다’는 주장으로 읽히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최근에 만난 한 여성주의 활동가는 자매애라는 말에 “여자라는 이유로 모든 걸 감싸야 한다는 함의가 묻어 있어서” 현실에서 쓰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녀는 “마치 특정 종교가 ‘형제, 자매’라고 호명함으로써 개인의 차이를 지워버리는 것과 비슷한 느낌을 받아 불편하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비정규직 탄압으로 악명높은 모그룹은 경영진과 직원들과 프랜차이즈 점주들이 서로 ‘형제님, 자매님’으로 호명하게끔 종용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 그녀도 여성들이 지향하는(지향해야 하는) 이상적 가치로서 자매애라는 말이 계속 존재할 필요가 있다는 데는 동의했다. 이상적 가치가 존재할 때 비로소 현실타령만 하지 않고 그 현실을 바로잡고 개선하기 위한 ‘현실이성’을 발현할 수 있는 까닭이다. 그런데 다시 생각하면 이 같은 이상적 가치를 반드시 ‘자매애’로 명명해야 하느냐는 의문도 나올 수 있지 않을까.
한 지인이 내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성찰성이 크게 결여된 데다 사회적 약자를 외면하고 철저히 강자의 편에 서는 것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비쳐지는, 더구나 사회적으로 큰 힘을 갖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위치에 있는 여성이 생물학적 여성이라는 이유로 물리적.언어적 폭력을 겪는 일이 생긴다면 그 여성을 도와줄 때 자매애라는 명분을 동원할 수 있을까. 내 대답은 이랬다. “그 누구도 여자라는 이유로 폭력의 대상이 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러므로 잘못된 현실을 바로잡고 여성으로서 훼손된 존엄성과 인권을 회복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한 행동은 필요하다. 하지만 그건 내게 자매애는 아니다.” 그 지인은 웃으며 내게 ‘편파적’이라고 말했지만 굳이 반박하진 않았다. 여성주의자라고 해서 ‘모든’여성에게 애정을 가져야 한다는 암묵적 전제 같은 건 몹시 불편한데다 나는 폭력을 당한 그 여성에게 한 올의 애정도 지니지 않은 상태이다. 이럴 경우 성별 정체성을 기준으로, 나와 성별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자매애’로 뭉뚱그려 포장할 순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사안에 따라 연대할 수는 있다. 그런데 어쩌면 자매애라는 말을 선뜻 입에 담기 어려워하는 여성들의 속내는 상당부분 이와 비슷한 무늬를 띠고 있다고 하면 지나칠까. 이런 맥락에서 기획특집의 주제를 ‘자매애란 무엇인가’ 또는 ‘차이와 소통으로 본 자매애’정도로 했더라면 좀 더 폭넓은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지 않았을까 혼자 뒷북을 치기도 한다.
여성들의 생존권과 복지, 건강권을 향상시키는 데 세계적으로 연대하고 지원하자는 취지의 해외단체들이 내건 웹상의 슬로건으로 ‘시스터후드’가 자주 눈에 띈다. 이처럼 움직일 수 없는 진실, 혹은 모든 여성의 인권을 아우르는 공통분모 앞에서는 나 역시 자매애란 이름을 굳이 거부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극히 복잡한 현실에서, 여러 차이를 지닌 여성들 사이에 얽힌 문제를 마주쳤을 때 자매애를 적절히 발휘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이러한 고민들을 풀기 위해서는 머리와 가슴에 간직한 정치적 올바름의 가치나 페미니스트 잣대의 당위적 명제를 어떤 경우에나 최우선으로 들이대기 이전에 그것들을 ‘어떻게’ 현실 속의 여성들과 만나게 할 수 있을지 궁구해야 하고, 많은 여성주의자들이 그렇게 하고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여기에는 수많은 여성들의 경험과 정보와 지성이 축적된 ‘집단지혜’가 필요할 것 같다. 집단지혜의 장은 구하면 열릴 것이라 믿는다. 여성들이 엮는 지혜의 위키피디아1)가 열린다면 바로 지금의 이 주제를 첫머리로 올리면 어떨까 싶다.
"이름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장미라고 불리는 저 꽃도 이름이 어떻게 달라지든,
향기는 결코 달라지지 않을 텐데 "
-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中-
1) 모두가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고 고칠 수 있는 체제의 사용자 참여의 온라인 백과사전. 비영리 단체인 위키미디어재단이 운영하며 전세계 200여 개 언어로 만들어 가고 있다.
이오 ● 함께가는 여성 편집이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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