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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9*10월호 [연재기획]‘페미니스트’는 어떻게 시누이로 단련되는가?_아비오
2007 9*10월호 [연재기획]
‘페미니스트’는
어떻게 시누이로 단련되는가?
아비오 ●
난 남자매1)들이 결혼하겠다 할 때부터 다짐했었다. ‘드라마 속 시누이’는 되지 않으리라. 그 파트너들과 잘 지내리라. 하지만 어디 인생이 마음먹은 대로만 되던가. 남자매들의 부인들과의 관계. 그것은 왠지 어색하고도 균형을 잡기가 어렵다.
주로 이 어려움을 느끼는 것은 명절이다. 사실 명절이 아니면 딱히 만날 일이 없어서 생각해볼 일도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실제로 만날 일이 1년에 한 두 번 있는 나로서는 좋은 관계유지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닐 수도 있다. 생글생글 웃으며 좋지도 싫지도 않은 관계를 대충 유지하는 것은 사회에 나와 2~3년간 굴러보면 누구나 익힐 수 있는 기술이니깐. 그렇게 지냈었다. 한 1~2년간은.
그런데 조카들이 하나 둘 씩 태어나고부터는 달라졌다. 어렸을 때 부터 부모와 따로 지냈던 터라 워낙 데면데면 하던 부모님과 남자매들도 아이가 생기니 가족이라는 아우라가 생기게 되고, 특히 그 아우라는 남자매들과 그 부인들, 그리고 아가들을 중심으로 생겨나 왠지 그 경계밖에 나와 부모님이 있는 형세다.
아가들과 남편에게 헌신하게 되는 그녀들도 보게 되었다. 모두 모여 밥을 먹을 때나 상에 올려지는 굴비니 갈비니 하는 특급반찬들. 같이 있는 시부모나 시누이를 면전에 두고 먼저 남편과 아이들 몫을 챙기느라 여념 없는 그녀들을 보면(나도 일년에 한두 번, 집에 내려갔을 때나 먹는다고!!) 왠지 얄밉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형식적으로라도 노친네들을 먼저 챙기지 않는 그녀들을 볼 때면 정이 뚝!
친구 만나러 간다고 시어머니에게 애 봐달라고 전화 거는 그녀. 아기 키우느라 친구 한 번 변변히 못 만나본 그녀의 외출을 지지하지만, 자기도 스케줄 있다고 딱 잘라 거절하는 엄마가 멋져 보이는 건 머냐!
친구들과 수다 떨 땐, “명절 때 가능하면 시집에 천천히 내려가. 일찍 가면 일 밖에 더하냐?”라면서, 당장 명절날 상 차리는 시간이 되서야 집에 도착한 그녀를 보면 ‘정말 양심 불량이야. 울 엄마가 너네 밥 차려줘야 하냐? 오면 자기네들이 다 먹으면서... 왜 노인을 부려먹고 그래?’라고 속으로 궁시렁 거린다. 그리고 스스로 그 이중성에 괴로워한다.
‘페미니스트 시누이’되기 어려움의 정수는 밥 먹을 때, 그리고 밥 먹은 후에 발생한다. 아빠와 오빠, 그리고 엄마가 밥을 먹고 있는 동안에 그들의 밥상을 살피며 그녀들은 부산히 움직인다. 나는 남자들만 앉아서 밥을 먹고 있는게 배알이 꼴려 그녀들에게 같이 한꺼번에 앉아 밥을 먹자고 하지만 그녀들은 거절한다. 이해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것은 나에게나 쉬운 일이다. 그녀들에겐, 우리가 온통 시집식구들이니 따로 먹는 게 맘이 편할 듯도 하다. 그래서 다 드시고 나중에 먹겠다 한다. 그러면 나도 먹을 수가 없다. 그녀들을 시집의 밥수발자로 만들지 않으려면 내가 밥상에 끼면 안 된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나도 같이 밥수발을 든다. 진짜 열 받는다.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니다. 모두 밥을 먹은 다음에는, ‘설거지를 누가 하느냐’라는 중대사가 남아있다.
명절 때도 장사를 하는 가업을 이어가는지라 밥 먹을 때만 집에 들어오는 남자매들와 아빠에게 설거지를 시키는 것을 평등하다 생각지 않는 나로서는 과연 엄마, 남자매의 부인들, 그리고 나 중에 누가 해야 할 것인지 늘 고민이지만 결국 내 몫이다. 왠지 남자매의 부인들이 하게 되면 시집에 와서 시누이와 시어머니는 편히 놀고 ‘올케’들만 일하는 그런 ‘집’이 된 거 같아 좌불안석이다. 그래서 못된 시누이가 된 거 같은 부담감에 시달리며 가시방석에 앉아 있느니 차라리 ‘내가 하고 만다.’ 그래서 가끔 명절은 나에게 고되다.
그래도 내가 ‘페미니스트 시누이’의 어려움을 얘기할라치면, 주변의 ‘페미니스트 올케’들이 한마디씩 거든다. ‘올케’의 마음에 대해. 그래 그래, 서로의 자리를 충분히 이해하기가 이렇게 힘든겨.
가족 안의 평등한 역할분담이 처음부터 이뤄지지 않았기에 여자들 사이에서 요구와 역할이 갈등한다. 작은 파이와 큰 부담 안에서 서로 발버둥 친다. 그녀들의 탓이 아니건만, 겉보기에 ‘여자들의 적은 여자’가 된다. 남자들을 변화의 대상에서 제껴 놓은 채 여자들끼리 짜증을 나눠 가지려니 쉽지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제 어쭙잖은 ‘페미니스트 시누이’되기는 관둘란다. 내가 중간에서 ‘착한 일’다 하면, 좋은 소리나 듣지, 변화란 없다. 나도 그 안에 끼어서 그녀들의 입장도, 내 입장도, 부모님의 입장도 같이 서로 나누는 것으로 하자. 강박은 가라. 나도 살자.
1) 위로 오빠, 아래로 남동생. 이럴 경우, 내가 남자가 아니니, ‘ 남자형제들’이란 말도 적당하지 않고, 그렇다고 그들이 남자이니 ‘자매들’이란 말도 적당하지 않고, 그래서 얼렁뚱땅 만들어본 단어다.
아비오 ● 일이 생길 때마다 잠깐잠깐 불만을 토하기만 하던 주제이다 보니 도대체가 글이 정리가 안 된다.
살다보면 길이 나오겠지 싶은 생각이다.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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