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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9*10월호 [민우칼럼창]신정아 스캔들과 페미니스트의 시선_유선영
민 우 칼 럼 창
신정아 스캔들과 페미니스트의 시선
유선영 ●
<문화일보>에서 신정아 누드사진과 관련 기사를 처음 보았을 때 가진 첫 반응은 분노와 개탄이었다. 그리고 이내 섬뜩해졌다. 유독 약자에게 가혹하고 폭력적이며 잔인하기까지 한 한국 사회의 집단적 인성구조의 한 단면인 공격성의 심연과 맞닥뜨린 듯한 섬뜩함이었다. 예를 들면, 도움을 청하는 성폭행 피해여성을 다른 남자들이 연이어 성폭행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은 것처럼, 규율되지 않은 인간의 어떤 본성은 자신 앞에서 울고 있는 약자를 보호하기보다 자신의 욕망의 도구로 포획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장애인,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 이주노동자, 청소년과 어린이에 대해 행해지는 비상식적인 폭력과 학대도 약자를 만만히 여겨 분출하는 공격적 인성의 일면이라고 생각하며 이러한 공격성이 식민치하, 6.25전쟁, 그리고 오랜 군사독재체제를 지나면서 우리에게 습성화된 집단적 인성구조라고 생각하곤 한다. 강자에게 순응하는 한편 약자를 공격함으로써 자기효능감을 충족하는 파시스트적 인성구조가 우리 안에 있는 것이다.
신정아는 미디어에 가짜 학위와 허위학력으로 교수가 되고 국제비엔날레의 총감독이 되었다고 밝혀진 순간부터 언론이 ‘아무렇게나 해도 되는’, ‘낙인찍힌 하층민’이자 약자로 전락하였고 그녀의 비리가 한 꺼풀씩 벗겨질 때 마다 점점 더 아래로 떨어졌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녀가 사람이라는, 권리를 가진 인간이라는, 희로애락의 감정을 가진 생명체라는 사실을 점점 잊어 갔다.
가짜학위로 출세한 여자, 권력 실세의 정부, 미술계 원로들과의(부적절할 수도 있는) 관계를 통해 성공한 여자, 다수의 남성들과 데이트를 한 전략가, 신용불량자이면서 명품과 BMW로 사치스러운 생활을 한 이중인격자, 기독교신자이면서 불교계를 들락거린 다중인격자 등 속속 드러난 그녀의 전력과 과거행적들은 그녀를 공공의 적으로 만들기 충분한 것처럼 보였고 누드사진을 공개 해도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는 것처럼 착각하게 했다.
사실 일이 이렇게 흘러가리라는 것은 처음부터 짐작했었다. 신정아의 성공은 처음부터 ‘권력의 役事’임이 너무나 분명했던 것이다. 그래서 가짜학위 스캔들이, 그녀를 비호해준 권력의 실체가 드러나게 되면 정치스캔들로 발전하고, 이어 섹스스캔들로 마무리할 것이 빤했다. 그래서 난 그녀의 진짜 남자가 수면 위로 올라오길 기다렸다. 그리고 그 실체가 전부는 아니더라도 어느 선까지는 드러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모처럼 섹스스캔들을 만난 우리의 하이에나 언론이 매일 새로운 소식으로 믿음을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만간 대한민국의 고위 관료, 유력 정치인, 소위 원로라는 지도급 인사들, 기업, 청와대 권력이 어떤 식으로 연결되어 있고 그 안에서 권력이 어떤 식으로 작동하고 있는지 그 숨은 진실이 일각을 드러낼 순간을 기다렸다. 밀실의 거래는 충격적인 정치스캔들을 통해 비로소 드러나곤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캔들이 충격적일수록 지배층과 권력구조의 문제점들도 적나라해진다. 스캔들보도도 나름의 방식과 형태로 사회적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다. 신정아 스캔들이 없었다면 민주화에 대한 자신감을 곧잘 천명하곤 하는 2007년의 시점에서 한국의 유력 인사들과 권력, 영향력을 가진 남성들-물론 일부겠지만-이 어떻게 서로 연루되어 있고 서로의 애인을 위해 비밀한 거래를 하고 있는지 들여다 볼 길이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내 그녀 주변의 남자들, 대학 총장에서, 종교계의 유력실세, 미술계 실세들과 원로들, 전 총리이자 대선후보, 그리고 참여정부 하에서 승승장구하면서 국가 돈을 주무르다가 청와대로 입성한 정책실장 등이 속속 모습을 드러냈다.
어쨌듯 약자에게 군림하는 권력의 치사하고 야비한 속성을 확인하고 싶었던 나의 기대는 어느 정도 충족된 셈이었다. 하지만 언론의 초점이 이렇게까지 집요하게 신정아만을 물고 늘어지리라곤 예상하지못했다. 배후가 밝혀지면 자연스레 보도가 그 배후의 권력실세에게로 집중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예상은 누드사진이 나오면서 깨졌고 다음날 ‘신정아의 도홧살이낀 관상과 말년 곤궁한 운세’라는 기사까지 나오면서 철저하게 부서졌다. 이렇게 예상이 틀리게 된 것은 언론 또한 권력의 순환고리 안에 한 자리 차지하면서 현 권력체제를 유지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하고 있음을 잠시 잊은 탓이다. 그리고 여성주의자로서의 자의식에 충실해서 이 사안을 살짝만 비틀어 생각했다면 처음부터 남성과 기득권 중심의 언론생리를 간파했을 것이다. 신정아도 자신이 가진 자본인, 여성으로서, 인간으로서 매력을 백분 활용한 능력있는 여성으로 볼 수 있었다면 말이다.
그녀의 잘못에 초점을 맞추면서 그녀가 여자라는 사실 또한 잠시 제쳐둔 것이었던 것이다. 더구나 이곳은 대한민국이다. 기득권을 가진 자는 이를 나누어줄 사람을 고를 때 결코 능력만을 최우선으로 삼지 않는 곳이 이 나라이다. 사건의 핵심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던진 그녀가 아니라 그녀의 사랑을 얻을 때도, 그녀에게 힘을 줄 때도 남자로서 자신이 가진 직위와 권력을 남용하고 사적으로 동원한 그 권력과 힘을 가진 남자들인 것이다. 누드사진보도는 이 점을 처음부터 애써 외면한 나로 하여금 여성주의자로서 보다 급진적일 필요가 있지 않는 가하고 자문하는 계기가 되었다.
유선영 ● 민우회 이사. 현재 한국언론재단에서 언론과 미디어에 대한 무지 다양한 연구들을 하고 있으나 본인이 중요하게 여기는 전공은 한국문화사 또는 대중문화역사이다. 타고난 안티기질(?)로 여성주의자로 자타가 인정해주지만 실제 활동가로서 행동은 못하고 있음에 죄책감을 가진 채 민우회에서 부르면 달려가는 것으로 면죄부를 얻고자 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보수적 학회 내에서 여성이자 문화연구자로서 나름 목소리를 냈다는 자부심도 없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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