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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9*10월호 [민우ing]성폭력 범죄에 대한 법정문서에서 ‘욕정을 일으켜’, ‘ 욕정을 못 이겨’ 등의 문구 삭제를 요청합니다!
민 우 i n g
성폭력 사건 판결문에서 ‘욕정을 일으켜’, ‘욕정을 못 이겨’라는 문구를 쉽게 볼 수 있다. 누구에게나 있는 ‘욕정’은 통제 불가능한 그 무엇이 아님에도 성폭력 범죄 사실을 설명하는데 ‘욕정을 일으켜’, ‘욕정을 못 이겨’라는 문구를 사용하는 것이 적절한 것일까? 평소에 이런 의문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모여 6월부터 판례 검토, 인터뷰, 전문가 의견 청취 등을 통해 ‘어쩔 수 없이 욕정을 일으켜’ 성범죄를 저질렀다는, 가해 행위를 ‘이해’하려는 것 같은 혐의를 지닌 이 문구를 성폭력 범죄사실의 판시로 사용하는 실태, 이유의 분석, 이 문구의 사용으로 인해 끼칠 수 있는 영향들에 대해 살펴보았다.
성폭력 범죄에 대한 법정 문서에서
‘욕정을 일으켜’, ‘ 욕정을 못 이겨’등의 문구 삭제를 요청합니다! 1)
기획단 회의 모습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검.판사 이렇게 할 수 있다’기획단●
‘욕정을 일으켜’, ‘ 욕정을 못 이겨’사용 실태
2006년 1월 1일부터 2007년 6월까지 대법원에서 운영하는 종합법률정보에 공개된 24건의 성폭력 사건 중 범죄사실이 명시되어 있는 17건의 판례를 분석 대상으로 삼았고 이 중 9건(53%)의 판례2)에서 ‘욕정을 일으켜’, ‘욕정에 못 이겨’가 판시되었음을 확인했다.
가해자교육을 하면서 접한 50여건의 비공개 판결문 90%이상에서 ‘욕정을 일으켜’, ‘ 욕정을 못 이겨’가 사용되고 있는 것에 비하면 공개된 판례에서의 사용 비율이 현저히 낮았다. 따라서 비공개 판례까지 합계를 냈다면 ‘욕정을 일으켜’의 사용비율이 더 높아질 것이다.
공개된 판례뿐만 아니라 예비 법조인을 양성하는 교육기관인 사법연수원의 교육 자료인 [검찰서류 작성례](2002)에서도 이 문구3)를 2002년 이후부터 2007년 현재까지 똑같이사용되고 있다4).
교육을 받은 후 공소장이나 판결문을 작성할 때 ‘욕정을 일으켜, 못 이겨’등의 문구는 관례적으로 사용되며, 공소장에 사용된 ‘욕정을 일으켜, 못 이겨’등의 문구는 그대로 판결문에 인용되고 있다.
성폭력 범죄의 원인이 ‘욕정’때문이다?
남의 집에 침입하거나 어린 아이를 유인해서 성폭력 가해를 했다면 명백히 계획된 범죄임에도 판례는 ‘순간적으로 욕정을 일으켜’라고 범죄사실을 기술하고 있다. ‘욕정’이란 누구나 갖고 있는 욕구이다. 욕구를 갖는 것과 이를 실천한다는 것은 분명히 다른 문제임에도 공소장, 판결문에 ‘욕정’이라는 문구를 사용하는 것은 남성의 성욕은 강하고 이는 억제하기 힘들다는, 즉 그렇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또는 ‘이해할 만한 상황’이라는 사회의 잘못된 통념을 그대로 답습한다.
이렇게 성폭력을 폭력의 문제가 아닌 성적 욕망이 잘못 표출된 실수 정도로 사소화 하고 왜곡하는 결과를 가져오고, 가해자들은 성적 욕망이 일어서 자기도 모르게 가해를 했다고 주장하는 근거로 사용된다. 또한 ‘욕정’이 순간적으로 일어난다는 가정은 피해자가 가해자의 욕정을 일으킬 만한 어떤 행동을 했다는 피해자유발론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순간적으로 물욕을 참지 못하고’ 절도했다는 판결문은 없다!
타 범죄와 비교해 봤을 때도 절도죄의 경우 ‘타인의 재물을 절도할 의사를 가지고’라고 표현하면서 고의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는 반면, 성폭력 범죄의 경우 성폭력의 고의는 없었는데 마치 갑작스런 어떠한 정황으로 인해 가해하게 되었다는 듯이 ‘순간적인 욕정을 일으켜’등의 문구를 사용하고있다.
범행대상을 물색하던 중 귀가하는 피해자를 발견하고 따라 들어가 현금 등을 강취하고, 계속하여 욕정을 일으켜 강간을 했다고 판시한 판례의 경우를 보면, 가해자가 강도로 재물을 절취한 범죄사실에 대해서는 ‘타인의 재산(재물)을 절취하기로 마음먹고, 상습으로,’ 또는 ‘......을 강취하고’ 라고 기술하고 있음에도 성폭력 범죄사실에 대해서는 ‘성폭력할 마음을 먹고’라고 쓰지 않고 ‘욕정을 일으켜’라고 쓰고 있다.
이처럼 객관성을 유지해야하는 공소장이나 판결문에 ‘순간적 욕정을 일으켜, 못 이겨’가 사용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이 문구가 계획범죄 또는 우발범죄를 구분하는 역할을 하므로 반드시 필요하다면 이는 충동적이건 순간적이건 범죄 실행에 착수한 시점에서는 강간의 고의가 있었기 때문에 강간의 고의를 확실히 밝힐 수 있는 어구를 추가로 선택할 문제이다.
또한 범죄를 저지른 목적이나 이유에 대한 설명이 굳이 필요하다면 절도나 강도의 ‘금품을 강취할 생각으로’ 경우처럼 ‘강간할 의사를 가지고’, ‘강간할 목적으로’정도가 더 명확한 표현이 된다.
‘욕정을 일으켜’는 삭제되어야 한다5)
외국 판례의 경우에도 성폭력 범죄에 대해 사실적 정황을 설명할 뿐, ‘ 욕정을 일으켜’라는 등의 문구는 사용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이런 문구가 범행의 고의성이나 계획성을 배제시키고 판결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영국이나 미국 등 외국에서는 성범죄 사건 서류나 기록에 가해자의 범죄동기와 원인을 멋대로 추단하여 제시하는 ‘욕정’이라는 용어는 결코 사용되지 않는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누구를 등에 해당하는 객관적인 사실인 범행양태(Modus Operandi)가 기술될 뿐이다. (‘성범죄 수사, 기소, 재판에 습관적으로 사용되는 ‘욕정’이라는 표현의 부적절성에 대하여.’ 경찰대학 교수 표창원) 성폭력에 대한 왜곡된 통념 없이 범죄 사실을 기술하는 것은 법적 과정을 통해 피해를 구제받을 수 있다는 국민들의 신뢰와 더불어 가해자나 가해를 예비하려는 자에게는 가해에 대한 적절한 책임을 지는 과정이 있음을 알고 가해를 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효과도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욕정을 일으켜’, ‘ 욕정을 못 이겨’는 삭제되어야 한다.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검.판사 이렇게 할 수 있다’기획단 ●
깜냥, 달개비, 로카, 로씨, 블루, 오이, 위니가 함께 했습니다. ^^
1) 이 글은 검찰, 법원, 법무부, 사법연수원에 제출한 [성폭력 범죄에 대한 법정 문서에서 ‘욕정을 일으켜’ ‘욕정을 못 이겨’ 등의 문구 삭제요청서]를 요약했다.
2) 몇 가지 판례를 명시하면 피고인은 그 곳을 지나가던 피해자 공소인외(여,18세)를 발견하고 순간적으로 욕정을 일으켜 피해자에게 눈이 잘 보이지 않으니 길을 안내해달라고...(의정부지방법원 고양지원 2006. 6. 7 선고 2005고합146)
초등학교 교장실에서, 혼자 청소를 하고 있던 위 초등학교 재학생인 피해자를 보고 욕정을 일으켜...(중략)...피해자를 강제로 추행한 것을 비롯하여...(중략)...(울산지방법원 2006. 6. 13선고 2006고합32)
...(중략)...서울소재 놀이터에서 때마침 그곳에서 친구들과 함께 술래잡기를 놀이를 하고 있는 초등학교 5학년 피해자(여, 11세)를 발견하자 순간적으로 욕정을 일으켜 피해자를 강간하기로 마음먹고 (서울서부지방법원 2006. 6. 29 선고 2006고합112)
3) 피고인은 2001. 3. 4. 23:00경 서울 강남구 세곡동 산24 뒷산에서 그곳을 지난던 피해자 강정자(여, 19세)를 발견하고 욕정을 일으켜 동녀를 강간하기로 마음먹고 약 100미터를 뒤따라 가다가 인적이 없는 곳에 이르러 갑자기 동녀를 뒤에서 껴안고 소지하고 있던 위험한 물건인 길이 약 15센티미터의 드라이버를 옆구리에 들이대며 “말을 듣지 않으면 찔러 버리겠다”고 말하여 동녀의 반항을 억압한 후 왼팔을 잡고 그 부근 숲 속으로 끌고 들어가 1회 간음하여 동녀를 강간하고, 이로 인하여 동녀로 하여금 약 1주간의 치료를 요하는 처녀막파열창을 입게 한 것이다. (사법연수원, 검찰서류작성례, p.46. 2002)
4) 본 판례분석에서는 2002년 이전 검찰서류 작성례는 검토되지 않았음을 밝혀둔다.
5) 현재 전국 60여개 관계부처에 삭제요청서를 발송했다. 요청서에 대해 10월 22일까지 답변을 요구한 상태이고 이후 대응활동을 계획 중이다. 각 기관에서 어떤 답변이 올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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