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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11*12월호 [평동사무실에서]우리들의 행복한 이사_날리
우리들의 행복한 이사
날리 ●
대학 4학년 때였나? 둘이서 한방을 써야했던 좁은 하숙집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나만의 방, 부엌, 화장실을 갖게 되었던 그 때의 그 행복한 기분을 십수 년이 지난 지금에도 눈을 감으면 느낄 수 있다. 부모님의 원조로 마련하게 된 작은 전셋집이었지만 앞으로 달라질 생활을 기대하며 얼마나 뿌듯하고 설레였는지…. 그렇게 처음으로 서울 바닥에 나의 보금자리를 마련한 이후 나는 북쪽과 서쪽을 넘나들며 다섯 번 이사를 했다. 집의 크기는 조금 커지기도 작아지기도 했으나 물론 아직 전셋집이고, 여전히 재계약시점이 오면 전셋값이 오를까 마음이 조마조마하고 괜히 부동산 유리창 광고지를 꼼꼼히 보게 된다.
다섯 번의 이사를 거치면서 항상 느끼게 되는 것! 하나, 이사는 참으로 신경이 많이 쓰이는 귀찮은 일이라는 것. 둘, 서울의 전셋값은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 셋, 이 많은 집들 중에서 내 몸 하나 뉘일 곳을 찾기는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려운 일이라는 것. 넷, 도대체 뉴스에서 떠들어대는 서울 어딘 가에 몇 십 억 하는 집들은 누구네 집인가 하는 궁금증. 다섯, 우울증을 동반한 상대적 박탈감(?) 등 등이다. 평소에는‘뭐 꼭 자기 집을 가져야 하는 건가, 월세를 안내고 사는 것도 어딘가’라고 생각하고 살다가도 이사 때가 되면 내 집 마련에 대한 욕구가 쓰린 속 저 밑에서 꿈틀대며 잠을 설치게 되기도 한다. 가난도 운명인지 옮겨 다녀야 하는 건 내 집만이 아니다. 내가 일하는 민우회도 사정은 마찬가 지다. 장충동 여성평화의 집에서 이곳 평동으로 옮긴지 5년. 전세였지만 20-30명은 너끈히 앉을 수 있는 교육장도 있고 서울 중심부에 위치해서 회원들이 들르기에도 좋고, 여기저기 토론회 찾아가기도 좋았었는데, 이 동네가 재개발구역으로 지정되어 곧 떠나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다. 평동 언덕배기에 여기저기 걸린 각종 건설사들의 현수막이 나붙기 시작하면서 상근자들의 마음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올해는 민우회 창립 20주년! 어찌 보면 열심히 활동한 반증이겠지만 그래도 창립 20주년인데, 회원이 만칠천 명인데 여전히 비싼 임대료에 관리비를 내면서 이사 걱정까지 해야 하다니….
결국 올 한해 우리들은 각자의 저 깊은 속에서 꿈틀대는 내 집 마련의 욕구를 모아모아 사고(?)를 치기에 이르렀다. 이름하야 사무실 이전기금마련 프로젝트!
회원들의 빽을 믿고, 민우회를 아끼는 분들을 믿고, 나를 불쌍히(?) 여기는 친구들을 믿고 시작한 사무실 이전 계획은 이제 스물여섯 명 활동가들의 에너지를 시험하기에 이르렀다.(흠, 사실 고백하 자면, 그 과정에서 ‘왜 이사를 가야하는 걸까?’, ‘그냥 건물이 무너질 때까지 끝까지 버텨볼까?’, ‘ 철거투쟁을 해야 하는 거 아니야?’, ‘ 우린 왜 이리 가난한 걸까?’등등의 넋두리들을 쏟아놓기도 하였다.) 몇 백 번 아니 몇 천 번의 전화와 이메일과 만남과 걷기대회와 회원의 밤, 앞으로 계획된 일일호프까지(헥헥…) 큰 행사도 많았고, 다들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어느새 한 해를 마무리해야 할 때다. 올해 초 처음 시작할 때만해도‘이게 과연 가능할까?’ 싶었는데 마침 이사를 준비하는 세 단체(함께하는 시민행동, 환경정의, 녹색교통)를 만나 함께 건물을 짓자고 의기투합을 하며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게 되는 좋은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멀게만 보이던 이사의 구체적인 상들이 조금씩 뚜렷해지고 여름에는 이사 갈 땅을 정하고 드디어 계약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곧 기반공사에 들어가고 내년 8월에는 준공될 예정이다. (와우~!)
맨땅에 헤딩하듯 시작한 사무실 이전 사업이 한해를 마무리하는 지금에는 맨땅에 삽질을 하게 되는 성과를 남기게 되어서 참으로 뿌듯하다. 많은 분들이 기금을 모아주셨지만 안타깝게도 아직 많이 부족하다. (총 필요 예상 기금은 6억, 현재 기금모금액은 1억 5천만원… 억!!!ㅜ.ㅜ) 연말에 일일호 프도 해야 하고 여전히 기금을 요청하는 전화를 해야 한다. 갈 길이 멀다. 하지만 새로 생길 안정적인 우리들의 보금자리를 생각하면 가슴 한 켠이 살살 떨리는 것이 기분 좋은 설렘이랄까… 마치 첫 자취방이 생기던 그때의 그 기분을 다시 느끼는 것 같다. 더 이상 이사 걱정을 안 해도 된다는 것, 회원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우리들의 활동공간이 생긴다는 게 내 집이 생기는 것 보다 기쁘고 배부르다. 무엇보다 기금마련을 하면서 만났던 많은 분들, 재개발을 걱정하며 이것저것 물어보는 회원들, 자녀의 돌잔치를 대신해서 기부한 S, 적금을 털어 기부한 K언니, 여행자금을 선뜻 내놓은 그 분, 익명으로 기금을 내어주신 분들, 민우회의 안정적인 보금자리 마련에 마음을 모아주신 많은 분들, 그분들 의 설렘과 기대와 함께하는 우리들의 이사는 행복하다. 눈감으면 행복한 연말이다….
날리 ● 열라 날고픈 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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