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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11*12월호 [모람풍경]올 겨울 준비할 월동물품2개 _체리향기
올 겨울 준비할 월동물품2개
체리향기 ●
11월 셋째 주, 때 이른 한파가 몰아치면서 첫 눈도 내리고 노랗고 불그레한 나뭇잎들을 다 떨궈내면서 ‘겨울이 다가왔다’고 알리며 지나갔습니다. 곧 겨울이 한창이겠지요. 거리를 덮는 하얀 눈, 아침에 보는 얼음, 김장, 추워내는 하얀 입김, 난방비 걱정 이런 게 다 겨울의 이미지이겠지요. 우린 월동이란 말로 추운 겨울을 준비합니다. 겨울잠을 자거나, 따뜻한 곳을 찾아가는 새들 다 월동을 하는 방법들입니다.
겨울은 조용하고 움츠리고 봄을 기다리는 이미지로 다가옵니다. 추운 야외보다는 따스한 방과 고구마 간식으로 다가오는 우리의 겨울밤, 온난화로 예전 같은 혹한은 아니지만 그래도 춥고 얼음 얼고 눈 내리는 계절, 우리도 월동 준비 해 볼까요? 제가 준비한 ‘문화적’월동 물품은 음악 시디 한 장과 산문집 1권입니다. 참 흔한 월동 용품 이지요? 너무 흔하지만 또 그 만큼 어렵지 않게 쉽고 편하게 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반짝거리는 시디를 얹어 놓고 재생 단추를 누르는 느낌도 참 좋은 일입니다. 두꺼운 책도 훌륭하지만 그리 두껍지 않은, 가볍게 우리 일상 을 돌아보는 책도 참 좋은 책입니다.
여린 것들을 보듬는‘대륙의 목소리’
첫 번째 물품은 한국의 ‘월드뮤직’팬들에게 아주 유명한 아르헨티나의 메르세데스 소사의 1982년 귀국 공연 실황 음반,‘ en Argentina’입니다. 1978년 메르세데스 소사가 아르헨티나 군부 독재 정권에 저항하다 해외로 추방당하고 망명 생활을 하다 1982년 귀국해서 공연한 실황 음반입니다. 이 실황 공연의 분위기를 전한 어떤 평론가 의 말을 빌리자면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약간의 공포, 더 많은 설레임 더 많은 환희와 열정이 넘친”공연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당시 아르헨티나는 군부 독재 정권이 막바지에 이른 상황이었으나 여전히 공포 정치를 펼치 고 있었습니다. 소사의 귀국 공연을 앞두고 군부는 소사에게 공연을 취소하라고 협박을 했습니다. 신변의 위협 속에서도 소사는 공연을 감행했고 소사의 공연장을 찾은 아르헨티나 민중들은 소사의 용기와 민주화에 대한 열망 으로 수 만 명이 공연장을 찾았고 소사의 노래 하나 하나에 환호하며 소사를 지지했습니다. 이 열광하는 수 만 명의 열망 속에서 소사는 그의 대표곡 ’Gracias a la vida(삶에 감사를)’를 부르다 흐느낍니다.
이 흐느낌에 공연장을 아르헨티나 민중들은 감사의 마음을 담은 환호로 화답합니다. 소사의 노래와 아르헨티나 민중들의 열망이 하나로 만난 것입니다. 소사의 노래가 그토록 민중들에게 하나의 희망이 된 것은 소사의 포용력 넘치는 호소감 짙은 목소리와 더불어 소사의 이력 때문입니다. 1935년 아르헨티나 북부 뚜꾸만에서 태어난 메르 세데스 소사는 민요 경연대회에서 입상한 뒤 성공한 가수의 길을 걷습니다. 우선 소사의 울림 넘치는 목소리는 흔히 사람들이 ‘대륙의 목소리’라고 부르는데 좀 과장되었다 하더라도 소사의 목소리를 비유하는 데 딱 어울립니
다. 울림 깊은 목소리의 소사는 소외 받고 억압받는 이들의 슬픔과 사랑, 희망을 노래합니다. 칠레의 비올레타 파 라, 아르헨티나 아따유왈파 유팡끼 등이 주도한 ‘누에바 깐시온(새로운 노래)’운동은 남미 민중들의 슬픔과 희망을 노래하는데 이 가운데에 소사가 활동합니다. 이 운동의 중심에서 소사는 남미 인디오들의 억압을 노래하고 민 중들을 핍박하고 착취하는 군부를 비판하며 자유를 노래합니다. 계속 되는 군부의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자유의 노래’를 계속했던 소사를 아르헨티나 민중들은 자유와 희망의 상징으로 받아들인 겁니다.
군부의 폭압 아래 숨 죽이던 민중들은 희망의 상징인 소사를 열광과 환호로 맞았던 것이지요.
이 음반에는 소사 음악의 중요한 노래들이 많이 담겨 있다고 합니다. 비올레타 파라의 곡이지만 소사가 불러 유명해진 ‘Gracias a la vida(삶에 감사를)’는 소사의 대표곡이 됐습니다. 이 노래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시작됩니다 . 세상을 볼 수 있게 해준 눈, 들을 수 있게 해준 귀, 문자, 행진을 할 수 있게 해줘서 감사하다고 말하다 나중에 흐느끼죠. ‘Solo le pido a dios’ 그의 유명한 후배 록가수 레온 히에코와 같이 불렀습니다. 신에게 내가 정의에 무감하지 않고 이웃의 아픔에 무감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소사의 민중들에 대한 애정과 자유에 대한 희망이 뚝뚝 느껴집니다. 이 외에도 이 음반에는 소사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노래들이 그득합니다.
월동품 두 번째, 나희덕 산문집‘반통의 물’
제가 소개하는 두 번째 월동품은 나희덕 시인의 산문집 ‘반통의 물’입니다. 시인의 산문집인 게 느껴지듯이 시와 같은 감성에 산문의 옷이 입혀져 있습니다. 산문의 역할이 ‘사색’이라고 할 때 나희덕 시인의 산문은 이 말과 잘 맞습니다. 일상에서 느끼는 소소한 생각과 질문, 지나간 기억과 옛 우화들이 적절히 인용되어 이 산문집은 조용한 질문과 세심한 감성들로 충만합니다.
산책을 하다 하루살이의 움직임에 울컥 눈물을 쏟고 작은 텃밭을 가꾸다 자신의 욕심과 마주치기도 합니다. 그건 시인의 일이기도 하지만 우리들의 욕심과도 연결 되겠지요. 추운 북쪽에 사는 토끼가 먼저 봄을 느낀다는 우화를 통해 간절한 기다림이 희미해져 가는 우리 세대를 아쉬워하기도 합니다.
시인이 머리말에서 말하고 있지만 이 산문집은 명쾌한 답보다는 ‘질문’을 좀 더 던지고 찬란한 순간 보다는 아쉬운 기억을 좀 더 말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의 삶을 반추하며 오래 오래 생각하게 하며 가슴을 데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밤 길은 추운 겨울 날 밤, 소사가 자유와 희망에 대한 열망으로 한 곡 한 곡 토해낸 노래들을 들으며 나희덕 시인이 조근조근하게 말하며 던지는 일상의 자잘한 질문들과 함께 이번 겨울을 보내봤으면 하는 것이 제가 제안하는 월동품입니다.
체리향기 ● 약간 간지러운 별칭을 지닌 체리향기는 세여소의 열혈 모람이며
열혈 지지자이기도 합니다. 현재 노동넷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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