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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11*12월호 [쟁점과현안]‘직장내 성희롱 가해자에 대한 해고가 부당하다’는 판결을 걱정하는 몇가지 이유_김창연
쟁점과현안
‘직장내 성희롱 가해자에 대한 해고가 부당하다’는
판결을 걱정하는 몇 가지 이유
김창연 ●
최근 직장내 성희롱과 관련하여 세 가지 판례1)가 뒤통수를 잡아당긴다. 세 판례 모두 비슷한 점이 있다. 성희롱 가해자에 대한 해고가 부당하다고 본다는 점, 그리고 부당함의 이유는 각기 다르지만 직장내 성희롱과 관련한 오랜 통념을 답습한다는 점, 그래서 앞으로 다른 성희롱 사건에 대한 판례가 어떻게 나올지 심히 우려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세 판례에서 해고가 부당하다고 판단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나타난다. 첫째는 ‘가해자가 술김에 한 실수이니 고의성이 적다’는 것이고 둘째는‘피해자의 진술에 일관성도 없고 성희롱을 본 목격자도 없으니 피해자의 주장이 객관적이지 않다’는 것이며, 셋째는 ‘가해자는 오랫동안 성실하게 근무해 온 직원이니 해고까지 하는 것은 심하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K여고 사건에 대해 서울행정법원은 학생들에 대한 가해자의 성희롱 행위가 “원고의 성적 인 의도나 동기를 충족시키기 위해 이루어졌다기보다는 원고가 술김에 학생들에게 과도하게 친밀감을 나타내면서 도가 지나쳐 실수한 행동”이라고 보고 있다. 그리고 가해자는 “지난 30년 동안 별다른 과오 없이 성실하게 교직생활에 헌신하여 온” 직원이기 때문에 해임은 과중한 처분이라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S생명 사건에서도 서울고등법원은 “원고가 (…) 들뜬 상태에서 술에 취하여 우발적으로 여직 원들에게 지나친 행동을 하게 된 것”으로 보고 있다. 마지막으로 I공사 사건에 대해 중앙노동위원회는 가해자의 몇몇 성희롱 행위가 “목격자가 없는 점 등을 종합하여 보면 객관적인 증거가 부족”하고 피해자의 진술에 “일관성이 부족”하며 “(가해자가) 이를 전면 부인하고 있고 목격자 등 객관적인 증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
어떤 일이든 잘못한 사실에 대해서 징계나 처벌을 내릴 때에는 그 정도가 잘못에 비해 지나치게 약하거나 과하지 않은지 면밀하게 검토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징계나 처벌의 정도가 잘못에 비해 적절하지 않을 때 이를 조정하는 것 또한 필요할 것이다. 이는 성희롱 사건이 라고해서 다르지 않다. 그러나 문제는 징계의 정도가 과하다거나 혹은 약하다고 판단하게 되는 기준 이 무엇인가에 있다. 위의 세 사건들은 피해자의 권리와 가해자의 권리가 충돌할 때, 법원 및 구제기 관이 어떠한 논리를 통해 궁극적으로 누구의 손을 들어주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K여고 학생들이 기본적으로 누려야 할 안전하게 공부할 권리와 내가 원하지 않을 때 타인에 의해 나의 신체를 침해당하지 않을 권리는 가해 교사의 일할 권리와 충돌한다. 이 상황에서 서울행정법원은 피해자의 권리에 대해서는 눈을 가린 채 단지 가해자가 술에 취해 있었고 성실한 직원이었다는 이유만으로 가해자의 권리를 우선시하는 선택을 하고 있다.
S생명 주식회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성희롱 피해자인 여성 직원들은 직장에서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권리와 자신의 몸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지만, 서울고등법원의 판결은 피해 여성들의 노동권 등 기본적인 권리보다는 가해 남성의 일할 권리를 더 보호하는 판단을 내리고 있다. I공사 사건 역시 중앙노동위원회는 피해자들의 진술에는 귀를 막은 채, 목격자가 없다는 이유로 가해자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 과정에서 법원 및 구제기관이 사용한 논리들은 직장내 성희롱 혹은 성폭력 관련 판단에서 버려야 할 시각으로 오랫동안 논의되어 온 것이다. 술에 취해 있었다고 해서 고의성이 없었다거나 죄의 정도 가 약하다고 보는 시각은 오직 성희롱 사건에서만 되풀이된다. 더군다나 가해자의 성적의도 유무가 성희롱 여부를 결정지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성희롱 판단에서 핵심적인 부분이다. 따라서 술에 취했든 그렇지 않든 가해자에게 고의성이 있었는가, 즉 가해자에게 성희롱을 할 의도가 있었는가의 여부 는 성희롱 유무를 판단함에 있어 개입되어서는 안 될 요건이다. 또한 성희롱이나 성폭력 사건은 대부 분 목격자나 명확한 증거가 있기 어려운 상황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성희롱 사건 유무의 판단이 증거 나 증인에 의존할 경우 대부분의 성희롱 사건은 발생 자체가 부인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또한 마찬가지로 성희롱 유무를 판단하는 데 있어 기준이 될 수 없다. 가해자가 오랫동안 성실하게 근무해 온 직원이었다는 기준 역시 논의의 여지가 있다. 성희롱 가해자가 성실한 직원이어서 징계의 정도가 경감되어야 한다는 인식에는 피해자가 성희롱 가해자와 계속해서 얼굴을 맞대고 일해야 하는 같은 직 원이라는 고려가 없기 때문이다. 법원 및 구제기관의 위와 같은 판단기준은 직장내 성희롱 사건에서
피해 여성이 아닌 가해 남성의 노동권을 보호하고 지지하는 것으로 귀결되고 있다. 이러한 태도는 여 성의 노동권보다는 생계부양자로 전제되는 남성의 노동권을 일차적으로 고려하는 성별 역할에 대한 통념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혐의를 가능하게 한다. 직장내 성희롱으로 인해 안전하고 즐겁게 일할 수 없다는 여성과 성희롱 가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이 직장에서 계속 일해야겠다고 주장하는 남성을 두고 법원이 옹호하는 것은 남성이며, 그를 보호하기 위해 사용되는 방법은 피해자의 주장을 듣지 않는 것이다. 여성의 노동권은 남성의 그것에 평등하지 않다.
이 세 판결을 우려하는 또 다른 이유는 이러 한 법원 및 구제기관의 태도가 앞으로의 직장내 성희롱 사건의 해결에 미칠 영향 때문이다. 이 판결 들은 직장내 성희롱 가해자를 징계하고자 하는 회사 측의 의지가 법원의 부적절한 논리로 인해 꺾인 사례이기도 하다. 직장내 성희롱을 근절하고 예방하려는 기업의 노력이 여전히 아쉬운 현실에서 이러한 사례는 오히려 그러한 노력을 저해할 수 있으며, 이후 다른 판결에서도 이 세 판결의 기준이 반복 될 수 있다는 점 또한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판결들로 인해 지금까지 쌓아 온 직장내 성희롱 관련 성과들이 뒷걸음질하는 일이 없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해묵은 논쟁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법원 및 구제기관의 성인지성이 무엇보다 요구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두 눈 크게 뜨고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어야 할 것이다.
김창연(곰)● 서울시 여성가족재단
올 겨울 외로움과 추위를 잘 이기고 내년엔 한 달에 한 번쯤 영화를 보고
두 달에 한 번쯤은 1박 2일짜리 여행을 다니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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