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11*12월호 [연재기획]'엄마와 딸'-그녀의 사모곡_박유
◎ 연재기획
① 페미니스트로 산다는 것
② 자매애는 있는가
③ 행복찾기
④ 여성주의자, ‘관계’ 속에서 나를 보다
⑤ 여성주의자, ‘관계’ 속에서 나를 보다
두 번째 이야기 ‘엄마와 딸’
두 번째 이야기 ‘엄마와 딸’
지난 호에서 ‘모녀 관계’에 관한 내용이 없어서 아쉬웠다는 후문이다. 그만큼 ‘모녀 관계’에 대해서 할 말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이번 호에서는 ‘엄마들’과 ‘딸들’의 이야기를 담아보기로 했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영웅 신화는 아마도 ‘위대한 어머니’의 신화가 아닐런지. 여기에 실린 ‘엄마들’과 ‘딸들’의 이야기는 ‘어머니’를 둘러싼 신화들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고, 새롭게 만들어가는 ‘모녀 관계’에 관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이 이야기들은 또 하나의 ‘위대한 모성’ 신화가 아니라 오히려 ‘그것에 관한 이야기’이다. 즉 ‘나쁜 엄마’와 ‘완벽한 엄마’라는 이중적 속박을 살아내는 우리들, 그리고 그 관계를 새롭게 풀고 만들어가는 우리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녀의 사모곡
박유 ●
1994년 6월 6일, 우리집 앞마당에 엄마의 옷과, 언니의 책과, 내 자전거가 불에 타고 있었다. 멀리서나마 숨죽이고 그 광경을 보면서 작은 어깨를 바들바들 떨었다. 눈물 대신 이루 말할 수 없는 공포감에 목이 졸린 느낌이었다. 그래도 다행이야, 엄마는 죽지 않고 무사히 저 악마의 손아귀에서 벗어났으니까. 엄마가 아주 먼 곳으로 떠나서 더 이상 고통 받지 않기를, 하루빨리 이혼해서 평화롭게 살기를 간절히 바라던 11살의 여자아이. 그게 바로 나였고, 그날의 내 심장은 철저히 난도질당했다.
그래, 난 가정폭력이 난무한 그런 집에서 자랐던 불우한 아이였다.
어린아이가 무슨 죄냐는 동정과 함께 ‘술병신’아비를 둔 딸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았다. 아빠는 술을 마시고,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부수고, 엄마를 때리고…. 엄마는 맞고, 울고, 집을 나가고, 다시 돌아오고…. 순간의 위태로운 평화는 예상대로 쉽게 깨어지곤 했다. 지금까지도 나를 괴롭히는 정서불안과 불행에 대한 익숙함은 아마도 어린 시절 기억에 대한 조건반사인지도 모르겠다. 깨진 술병 조각과 응고된 피가 내 육체를 가득 채우고 있는 듯한 아주 더러운 느낌.
엄마, 엄마…. 제발 도망가
엄마를 발로 차려는 아빠 옆에서 울고불고 매달리면서 불쌍한 우리엄마 때리지 말라고 빌었다. 차라리 날 좀 죽여 달라고도 했다. 엄마의 머리채를 휘어잡아 땅바닥에는 머리카락이 한 움큼이다. 나는 또 재빠르게 엄마의 머리를 내 두 손으로 감싸 안았다. 그런 지긋지긋한, 역겨운 곳에서 엄마는 별로 벗어나려고 하지 않았다. 난, 그냥 괴롭고 미쳐버릴 것만 같았고 어떻게 되든 상관없으니 그 끔 찍한 폭력의 현장만 목격하지 않으면 됐다. 그걸로 족하니 제발, 제발 멀리 도망가라고 엄마의 어깨를 떠밀었다. 그래도 항상 엄마는 돌아왔다. 우리 곁에서 밥을 했고 빨래를 했고 품을 팔러 나갔고 끊임 없이 일했다. 엄마가 없었다면 나는 대학은커녕 지금쯤 어디 창녀촌에 처박혀있을지도 모르겠다. 가정폭력과 가난 속에서도 이것이 자신의 운명이겠거니, 소름끼칠 정도로 무서운 담담함으로 내 곁에 서 늙어가셨다. 나는 엄마의 고통과 희생을 뜯어 먹고 사는 기생충과 같았고, 그렇게 기름지게 내배 를 채우고 다녔다. 예쁜 옷 한 벌, 좋은 화장품 하나 사본 적 없는 그런 나의 성모마리아의 무릎에 어느날, 종양이 생겼다고 했다. 내가 그녀의 무릎을 병들게 한 것이다.
오른쪽 다리 무릎에 물혹인지 악성종양인지 모를 그 무언가가 생겼을 때도 농사일이 바쁘니 병원에 갈 시간이 없다고 고집을 부리셨다. 가슴 속 깊이 서러움이 매여서 그렇게도 당신 자신을 돌보지 않 는 모습이 답답해서 미친 듯이 화를 냈다. 매일매일 전화로 병원에 가라고 윽박지르던 나였다. 알았으니 걱정 말라는 엄마의 목소리가 희미해질 때쯤이야 나는 어릴 때 그 모습 그대로 굵은 눈물을 뚝뚝-흘렸다. 수술 날이 다가오고, 아직 검사결과가 나오지 않았을 때 나는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넋을 잃었고, 겨울 바람처럼 차갑게 감정이 말라버렸다. 아직은 아니라고, 아직 당신은 내 곁을 떠날 준비 를 해선 안 된다고, 늘 그 자리에 있어야 한다고…. 내게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을 주어선 안 된다고, 아직 내가 당신에게 보상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고 원망과 두려움에 갇혀있었다.
역시, 엄마는 나만의 성모마리아. 다행히 악성종양이 아니었고, 수술도 비교적 성공적으로 끝이 났다. 병원도 수술비가 제일 싼 곳으로 가서는 퇴원하는 날엔 의료보험이 되어서 돈이 적게 나왔다고 행복해 하던 그 모습. 수술상처가 아물기 무섭게 다시 일을 하러 나가던 그 모습. 요즘 세상에 참 촌스럽게 들리는 사모곡이 내겐 유난히도 아픈 까닭이다.
앞 산 노을 질 때까지 호미 자루 벗을 삼아
화전 밭 일구시고 흙에 살던 어머니.
제발, 제발 내 곁에 있어줘요.
호미자루를 닮은 엄마가 담긴 시골들녘 풍경 안에서, 나는 그 자리에서 한 시도 움직이지 말고 그대로 있어달라고 애원한다. 아마도 나는, 우리 가족은 엄마의 희생이 좀 더 필요한 모양이다. ‘자유’와 ‘젊음’과 ‘여자’의 의미들은 그녀에게 사치와도 같은 것, 그녀는 그런 것들을 좋아하지 않아, 그녀는 이미 우리에게 하나의 성모마리아상이 되어서 ‘속박’, ‘ 늙음’, ‘ 어머니’의 의미에만 익숙하다. 그녀의 곁에서 우리는 그녀의 삶을 탐하면서 주린 배와 허기진 영혼을 채운다. 그녀가 해 준 따끈따끈한 쌀 밥, 그녀가 쥐어 주는 돈과 관심, 점점 약해지고 늙어가는 그녀의 손 등에서 가끔, 그리고 잠시 동정의 미소를 짓다가, 자신의 삶은 오로지 자신을 위해 장식하려고 그녀를 향해 벽을 만든다. 그게 나고, 그게 너고, 그게 가증스러운 우리다.
엄마가 많이 못 배워서,
완벽한 엄마는 아니었던 것 같아.
남들처럼 학원 못 보내줘서 미안해.
그만, 당신은 내게 눈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사람이었고, 당신은 희생과 사랑으로 충만한 나만의 여신과도 같았으니, 그만. 당신이 부족했다는 말을 당신 입으로 하는 것은 내가 도저히 용서할 수 없을 것만 같으니까. 자신과 같이 고된 삶을 살지 말라고, 너는 배워서 책상 앞에서 편히 일하라고.
뼈가 부서지는 한이 있어도 너 하나만큼은 끝까지 공부시켜주겠다고. 그런 가슴 아픈 말, 이젠 더 이 상 듣기 싫으니 그만, 그만하라구요.
친척결혼식 때문에 서울에 올라와서 내게 데려다달라고, 맘껏 의지하려고 했던 그 뒷모습이 얼마나 나를 아프게 했는지, 달랑 2만원 주고 사드린 분홍색 셔츠에 어린 아이처럼 고맙다고 말하던 그 목소리가 얼마나 나를 아프게 했는지, 나는 그녀가 이 모든 아픔을 알아주기를 바랬다. 항상 자상하고 검소한 모습으로 남아주기를…. 조금이라도 변하면 그녀에게서 나의 애틋함과 사랑을 거두어 갈까봐 겁이 나기에, 그대로 있어줘요.
학처럼, 선녀처럼…
그러나 나는 엄마처럼 살 자신이 없어서 결혼도 싫고, 한 아이의 어머니가 되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구역질이 난다. 언젠가 나 또한 내 딸의 심장 한가운데에서 이 세상에서 가장 눈부시고 아름답고 치열했던 삶의 주인공으로 남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이내 부정하고 싶다. 엄마가 걸어온 길을 보고, 그녀의 인생 속에서 보호받고 자랐던 나이기에 이 학습된 공포를 도저히 견뎌낼 수가 없다.
엄마에게 땅을 사드리고 싶어요.
난 어쩌면 이미 엄마를 닮아버렸고, 그런 삶에 소름끼칠 정도로 익숙해져있는지도 모르겠다. 스물넷에 이 세상 눈물겹고 독하게 살아내야 한다고 스스로를 옭아매던 나였으니까. 다음 생애를 기약하려고 할 때, 나는 그녀의 엄마로 생을 살아내고 싶었다. 그녀의 한평생에 한이 되었던 중학생 교복을 입혀주고 , 마음껏 연애도 할 수 있게 해주고, 외국에 나가서 공부도 할 수 있게 해주고 싶으니까. 눈물겨운 삼류 드라마에 철지난 유행가 가사 같다고 해도, 유치하다고 해도, 말만 그럴듯하다고 비아냥거려도 나 또한 그녀만의 성모마리아가 되고 싶고, 그녀의 눈 속에서 호미자루처럼 아련하게 남아 있고 싶다.
멋진 커리어우먼, 있어 보이는 고학력자, 잔뜩 꾸민 옷차림과 화장.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사회의 온갖 찌꺼기들에게 거침없이 세치 혀를 놀리는 당당한 여자. 모성애의 신화로부터 자유롭고 남편과 늘 동등하게 양성평등을 참 실현하는 해방가. 일과 가정 속에서 삶의 균형을 잃지 않으면서도 자식을 영재로 길러내서 일간지 사회면을 장식하는 페미니스트. 이 따위 겉멋과 영혼의 주변에서 맴도는 수식어구들은, 알아. 내게 어울리지 않다는 것. 나는 지금 이 순간도 내 젊음을 어떻게라도 희생해서 그녀의 삶에 위안이 되고 싶으니까. 이게 바로 그녀를 닮은 나니까, 난 그녀의 딸이니까….
박유 ● 그리운 그녀의 모습,
계속 내 안에 두고 살게 하고 싶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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