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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1*2월호 [생혐이야기] 세상과 통하는 법
[생협이야기]
세상과 통하는 법
*최정은
첫아이 임신 무렵 친정에서 농사지으신 감 1박스가 집으로 배달 되어왔다. 먹을 식구도 없는데 이를
어째…. 먹다가 먹다가 복도를 오가는 이웃의 동정을 살폈다. 그땐 정말 이웃이라고는 눈인사조차 나누지 못하고 지낼 만큼 주변 사람들과 교류를 하지 못한 채 지내고 있었다. 쟁반에 감을 받쳐 들고 이리 저리 눈치만 살폈지만 결국 이웃집 벨을 누르지 못했다. 남은 감들이 썩어 쓰레기가 되었다.
결혼 후 내게 공식적인 도피처였던 내 집이 감옥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내가 지금은 지역 공동체에 매달려 일을 하는 사람이 되어 있다.
첫아이를 낳고 보니 이 녀석은 자폐가 의심될 만큼, 나만큼이나 사람 만나기를 무서워했다. 내가 집 밖을 나서지 못했던 것처럼 아이는 장소를 가리고 낯을 가리고 환경을 가렸고 밤낮으로 울어댔다.
집안에 감도는 공기의 흐름에도 반응하는 극도로 예민한 아이를, 나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고 울면서, 울면서 아이를 돌봤다. 그러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 그 애를 데리고 세상으로 나왔다.
일산지역을 중심으로 두 살 무렵의 아이들을 가진 엄마들의 공동육아 준비모임에 어렵게 발을 들였다.‘ 함께 크는 자연육아’라는 이름을 붙이고 온라인 카페를 열어 온-오프라인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고만 고만한 아이들을 둔 일곱 가정을 시작으로 아이들을 함께 놀리기 시작했다. 그 아수라장 같은 틈바구니에서 엄마들은 5분마다터지는 울음소리와 함께 아이를 업고 안고 젖을 물리면서 책을 읽고, 발제하고, 토론하고…. 지금 생각하면 웃음밖에 안 나지만 그때 고생하며 읽었던 책들이 지금 나에게 가장 큰 자산이 되었다고 본다. 모임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민우회 생협이었다. 회원 대부분이 생협 조합원이다 보니 생협 매장은 우리가 회원을 모으는 좋은 헌팅 장소였고 식재료 구입 창구였다. 처음엔 단순히 식재료 구입에서 시작되었는데 어느새 생협의 생명 살림 운동에 동감하게 되고 새로운 사실들을 많이 알게 되면서 식생활 강사로까지 활동하게 되었다.
일산 지역 내 어린이집, 유치원, 방과 후 교실, 민우회 랄랄라 민우학교, 환경연합 등에서 식품 첨가물에 대해 수업을 진행했다. 그러나 일상에서는 엄마의 이런 노력을 아는지 모르는지 나의 완고함과 아이의 욕구가 부딪히면서 끊임없이 충돌하였다. 그러한 갈등을 경험삼아 처음의 네거티브 전달방식에서 벗어나 지금은 좀 더 아이들이 쉽게 받아들이고 스스로 죄책감이 들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전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런 음식들을 만들어 내는 어른들이 문제인 것이지 아이들이 죄책감을 느끼고 충격을 받아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때론 이런 것까지 교육받고 음식을 골라 먹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고 서글프다.
공동육아 모임 경험과 민우회 생협을 통해 나는 세상과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내가 사회에 관심을 갖고, 배움에 대한 갈증을 해소시켜준 곳도, 여성주의라는 새로운 시각을 세워준 곳도 바로 민우회였다. 어쩌면 나처럼 사회와 단절된 것 같은 소외감 속에서 힘겨워하면서 자신의 삶의 사회적 의미를 간절히 찾는 여성들이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곳에서 만난 많은 여성들의 모습이 나를 변화하게 만들었다. 나의 일상도 자연스럽게 바뀌었다. 지금은 고양여성민우회 부설 지역아동센터 꿈틀이에서 상근교사로 다시 일을 시작하였다. 내가 꿈꾸던 일을 실현하도록 기회가 생긴 것이다. 아직은 좌충우돌 배우는 과정이지만 아이들과 하루하루를 즐겁게 채워나가려고 노력한다.
일을 시작했지만 오히려 생활은 좀 더 느긋해질 수 있어졌다. 아마 마음이 더 풍요로워지고 여유를 가지려고 노력하기 때문일 것이다. 좀 더 느리게 먹고(슬로푸드, 전자렌지 안 쓰기, 현미밥 오래 씹어먹기 등), 좀 더 때를 기다려 가르치려 하고, 가장 어렵지만 차츰 비우면서 살아가고자 한다. 대신 그자리에 함께 먹는 밥상에 내 이웃들의 숟가락을 올리고 잇다. 나는 그렇게 세상과 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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