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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1*2월호 [모람풍경] 리다의 한식조리사 합격기
[모 람 풍 경]
리다의 한식조리사 합격기
리다 ●
근무 중 전화 한 통을 받았다. 한식조리사 자격증 취득을 소재로 에세이를 써달라는 내용이었다. 갑작스런 제안이었지만 일단 약속을 하고 전화를 끊은 후 옆자리 직원에게 이야기를 하니 의미 모를 웃음을 짓는다.
한 달 전 우리 직원들은 내가 조리사 시험에 합격했다고 이야기를 해도 자기들 눈으로 자격증을 확인하기 전엔 절대 믿을 수 없다고 하였다. 왜냐하면 우리 직원들은 내가 만든 요리를 이미 두 번이나 먹어봤기(!)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조리사 자격증에 왜 도전하냐는 질문을 받아왔다. 나에게 조리사 자격증은 생존이며, 취미이며, 노후대비를 위한 수단이다.
나는 부모님하고 떨어져 산 적이 거의 없다. 그래서 부모님이 제공해 준 집과 음식, 그 밖에 부모님께 얹혀삶으로서 누리는 혜택이 많다. 이 모든 걸 당연하게 여기고 살다가 어느 날인가 문득 언젠간 부모님도 내 곁을 떠나실 텐데 다른 문제들이야 그렇다 치고 나를 위해 밥 한 끼, 반찬 하나라도 차릴 수 없다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었다.
누군가는 사먹으면 되지 하겠지만 매 끼를 외식으로 해결하기엔 경제적 비용도 만만치 않고 조미료 첨가나 인스턴트 식품 과다 섭취 등 건강과 관련한 문제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 음식을 만들면 되지 굳이 자격증을 딸 필요가 있냐고?
시도를 안 해 본 건 아니다. 집에서 요리책 보며 요리를 해 본 적도 몇 번 있지만, 예전에 엄마가 내가 만든 요리를 드시다가 하신 말씀이 이렇다.
“사랑하는 딸아, 맛없는 건 참겠는데 된장이 덩어리째 씹히는 건 도저히 못 참겠다.”
그래도 우리 가족한테 한 소리 듣는 건 다행이다.
2년 전에 직원들끼리 스키장에 가서 내가 카레를 만든 적이 있는데 아시다시피 양파는 요리의 끝에 넣어야 하는데 요리 책에 양파 넣는 시기에 대한 언급이 없어서 처음부터 넣은 적이 있다.
직원 왈, “언니 아까 양파 5개 넣었지? 다 녹았나봐. 카레에 양파가 하나도 안 보여.”
직원들은 2년 전 그 일을 지금도 우스갯소리로 하는데 그 당시 나는‘이젠 칼을 들 때가 되었구나.’생각했다.
한식 조리사 시험은 필기와 실기로 이루어진다. 실기는 55개의 메뉴 중 2가지가 시험문제로 출제된다. 요리에 문외한 이라 학원을 다녔다. 그 당시 수업 듣던 기억은 참담함 그 자체였다. 수업이 끝나면 각자가 만든 작품을 선생님 책상 위에 올려놓고 선생님은 누구의 작품인지 모른 채 하나하나 평가를 해 준다. 20여개의 작품 중 내 것이 단연 돋보였다. 크기도 삐뚤삐뚤, 한 가지 요리에 탄 흔적과 안 익은 흔적의
수많은 절묘함이라니….
어느 날은 선생님이 내 작품을 들더니 화를 버럭 냈다.
“도대체 이 분은 누구세요? 발로 만드셨어요?” …이러고 있다.
하루는 열심히 칼질을 하고 있는데 선생님이 조용히 다가와 말한다.
“자격증이 절박한 건 아니시죠?”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실기시험은 매달 응시할 수 있고 필기 합격 후 2년 이내에 취득하면 된다. 100점 만점에 60점 이상을 득해야 하는데 첫 시험 점수는 42점. 그 이후에도 비슷한 점수로 계속 불합격했다. 32점 받은 적도 있는 데 혼잣말로“과락은 아니네”중얼거리며 태연해진 나를 보고 정말 선생님 말씀대로 자격증이 절박하지 않은 건지 아니면 해탈의 경지에 이른 건지 나 자신도 의아했다.
작년 7월에 4번째 실기시험 불합격을 끝으로 몇 달 동안 요리공부를 하지 못했다. 8월에 교통사고를 당해 목디스크에 걸려 요리 준비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몸을 우선 회복하고 2008년부터 다시 준비하겠다는 각오를 한 후 시험감각을 찾기 위해 12월에 5번째 도전을 했다.
시험문제는 돼지갈비찜과 북어보푸라기. 두 가지 모두 정확한 치수를 잴 필요가 없어서 나처럼 손이 섬세하지 못한 사람에겐 좋은 기회였다. 82점의 점수로 합격을 한 후 사람들의 반응은“그거 국가자격증 아니지? 시행하는 곳 어디야?” 등등 도저히 자격증 발급기관을 신뢰할 수 없다는 분위기였으나 나는 너무나 큰 기쁨과 성취감을 맛보아 무슨 말을 들어도 기분이 날아갈 듯 했다.
앞으로 열심히 다른 요리들을 응용하여 사랑하는 친구들을 위해 맛있는 만찬을 준비할 날을 기다려야지. 그 때 초대하면 올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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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인언니? 고마워여, 언니랑 산 한번 가야되는데..
리다 늦었지만 조리사 합격 진심으로 축하해^^...(이제서야 이 글을 읽었슴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