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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1*2월호 [국제통신원] FAMILY scene #1, #2, #3
[국제통신원]
‘FAMILY’ scene#1, #2, #3
난나
#1년 전, 이 맘 때쯤 영국대사관에 신청한 비자가 거절되면서 1년 간의 타향살이가 가능한 걸까 의문을 품으며 다시 비자를 신청했더랬지요. 자원봉사자격으로 주어지는 비자였는데 서류, 증명서는 기본이요 에세이까지 써가면서 두 번째 신청으로 비자를 얻었습니다.
그렇게 어렵사리 발을 디디게 된 이곳은 마치 내가 원래 이곳에 살았던 마냥, 이제는 또 하나의 나의 동네가 된 듯합니다.
#처음 얼마간은 런던의 한 가정에서, 학습장애가 있는 아동의 방과 후 생활 도우미 역할을 했습니다.
아이와의 소통이 만만치 않은 문제였는데, 전형적인 런던 중산층 가정의 문화를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했지요. 무엇보다 아이의 할머니와 아이의 부모가 보이는 관계의 지형을 보며 신기해했더랍니다.
부엌에서 가족이 식사를 하는데 식사 때마다 부부는 할머니께 알리지를 않습니다.
할머니가 볼일을 보고 식사 중 늦게 들어와도 식사를 권하지 않습니다.
노인을 홀대하는 버릇없는 며느리인가요? 알고 보니, 모든 생활은 두 가정으로 나뉘어 독립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서울 집 값 저리가라는 런던의 부동산 사정 때문에 아이의 부모가 할머니 집으로 들어와 살게 되었고,
자산을 반반 나누어 분담하게 된 배경으로 한 집의 공간과 생활은 두 파트로 나뉘어지게 되었습니다.
아이의 부모는 할머니를 위해 특별히 요리를 하지 않습니다. 할머니는 자기 찬장에서, 자신의 냉장 칸
에서 자신만의 건강식을 만들고 자기 응접실에서 손님을 접대합니다.
그렇다고 독립적인 생활이 냉랭한 관계를 의미하는 건 아닌 듯 합니다.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부엌에서 마주치며 오늘 하루 어땠는지 서로 조곤조곤 이야기를 나눕니다.
할머니는 평생교육원에서 열리는 철학 강의 이야기를 하고 아이의 엄마는 아이의 학교생활, 직장 일을 친구에게 무던히 이야기 하듯 그렇게 시어머니와 마주합니다.
개인을 중심으로 하는 독립적인 생활 양상을,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관계 속에서 목도하게 되었습니다.
#영국에서 있지만 함께 지내는 친구들 대부분이 독일에서 오다보니 오다가다 한 두 마디 독일어도 배웁니다. 그리고 독일에서 사는 이야기도 듣습니다.엄마의 남자친구. 엄마의 남편(하지만 아빠는 아닌).
이런 단어가 처음에는 생소하게 들렸습니다. 함께 지내는 친구의 1/3은 부모가 이혼 상태입니다.
부모의 이혼이 늘 부정적으로만 비춰지는 사회에서 자라온 나로써는, 가끔씩 드러나는 나의 우울
기질의 대부분은 가족의 이력에 바탕을 둔다고 생각하는 나로써는, 놀랄 일입니다. 흔히 생각하
는 가족으로부터의 그늘을, 그네들에게서는 보기 힘들기 때문이지요.
어렸을 때 엄마를 버린 아빠와 그의 여자친구가 방문하여 즐거운 한 때를 보낸 나의 옆방 친구는 나의 연구 대상입니다.
#휴가를 떠납니다. 1년간 무보수로-약간의 용돈을 제하고- 나름 열심히 살아온 스스로에게
선물과 쉼을 주고 싶습니다. 3월 중순,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며칠간 스페인과 독일을 돌아보고
오렵니다.
스페인에서는 여기 영국에서 보기 힘든 태양을 실컷 보고 싶고 독일에서는 함께 지내는 독일 봉사자, 그 아이의 집과 동네를 둘러보고 싶습니다. 항상 맑고 힘찬 기운이 느껴지는 이 친구는 주인 없는 빈 방에서 머무르라고, 기꺼이 나를 초대합니다. 그리고 엄마의 남자친구네 집에서도 며칠 묵을 수 있을 거라 합니다.
순간 이런 생각이 드네요. 그럼 내가 그 집에 가서 누군가에게 나를 소개할 때, 이렇게 말해야 하나?‘ 이 분의 여자 친구의 딸의 친구?!’
#수도꼭지 제대로 잠그지 않아 물 샌다고 열 살 아래 친구에게 타박을 듣고, 사람이 없을 때는 복도에 불을 껐으면 좋겠다며 평소에도 복도에 불을 꺼두는 친구들에게 한 수 배우고 있습니다. 사람과, 그 사람과 함께 하는 생활 속에서 나의 지경이 넓어지는 경험은 나를 풍요롭게 합니다.
돌아가서 무얼 할꺼냐는 질문이 쇄도하는 요즈음, 돈을 좀 벌어 세계여행을 하고 그때 다시 너를 만날 거라는 나의 대답은 그리, 맹랑해 보이지 않습니다. 정말, 그렇게 하고 싶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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