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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1*2월호 [민우ing]] 2007 고용평등상담 분석에서 주목할 만한'기타 등등' _ 신기루
[민 우 i n g]
2007 고용평등상담 분석에서
주목할 만한 ‘기타 등등’
신기루 ●
“남성적 질서 자체가 힘 있는 것은 그것의 정당화에 대한 설명이 필요 없다는 점이다. 노동에 대한 성적인 구분이 그러하며 각 성에 주어진 활동과 장소, 시기, 도구들에 대한 엄격한 분배 또한 이 힘에 의해 작동한다.”
P. 부르디외,「 남성지배」
2007년 한국여성민우회 고용평등상담실에 접수된 상담은 총 323건이다. 300여건을 조금 넘기는 사례들로 여성노동의 전반적인 흐름을 파악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겸손을 한 자락 깔고, 올 한해 상담을 돌아보고자 한다. 일반적인 내용은 홈페이지 뉴스를 통해 접할 수 있으니 여기서는 의미 있는 사례(어떠한 관점에서 의미인가는 묻어두자, 대개 그 의미란 재미일 것)들을 몇 가지 살펴보려고 한다.
민우회 여성노동운동 20년, 고용평등 상담 활동 또한 20년이다. 명시적, 물리적 폭력과 차별이 1987년부터 2007년까지 이어지고 있다. 동시에, 남성1)이 지배하는 사회구조에서 파생하여 이를 강화, 재생산하는 언어와 생활양식(사고방식, 언어표현방식, 행동방식, 표징, 낙인)을 통한 차별은 그 존재감을 더해가고 있다. 대중여성운동, 일상 속의 여성운동을 구현하는 민우회에서 일하는 자로서, 구조적 혁명 등 본질적 논의를 거부, 회피하는 자로서 “여성노동자의 열악한 현실을 보여주는” 류의 사례는 뒤로한다. 사례를 분류할 때 소위 ‘기타’에 해당하는 사례들이 이 글에서는 주요사례이다. 이것들은 여성노동자들의 자기 성장을 보여주면서도 동시에 새롭게 출현하는 한계를 포착하고, 남성노동자의 지위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강화하는 데 동원되는 언어, 생활양식의 작동이 드러난다는 데서 흥미로운 것들이다.
남성1)은 무엇으로 여성을 지배하는가? 고용상의 성차별 기타 사례에 이런 것이 있다.
● 매년 피복비를 책정하여 남자직원에게는 점퍼를, 여직원에게는 치마 유니폼을 지급한다. 치마 유니폼 착용을 안 하겠다는 여직원에 대해서 사유서 제출과 일체의 피복비 지급을 받지 않겠다는 문서를 제출 할 것을 요구한다.
● 접객기준 내용을 보면, 매니큐어 색깔 지정, 손톱 정리 수준 등도 있고, 머리 모양도 모두 업스타일로 해야 된다고 하고, 일종의 머리망을 지급하여 그것으로만 머리를 고정해야 한다고 한다. 이 접객기준은 공식, 비공식적인 모니터링의 대상이 되고 인사고과에 반영된다.
여기서 미용, 의상, 피부 관리, 화장품, 손톱의 상태 등을 통해서 표출되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여성성’에 대한 기대가 엿보인다. 남성은 바지, 여성은 치마라는 자연스러운 범주화, 머리부터 손톱까지 신체의 각 부분에“단정하고 깔끔한” 여성성을 재현할 것을 인사권을 통해 ‘근엄하게’요구한다. 그런데 여성들은? 남성의 기호와 취향에 만족을 주고 이들의 사기를 북돋아 주는 취향에 부합하지 않는 것에 대한 고민, 그 요구에 믿음과 지지를 철회하는 것에 대한 고려, 탈출하고자 하는 욕망이 있어 이 두 사례가 소중하다.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은 여성에 대한 상징들 위에 비정규직에 대한 구분과 배제를 덧입는다. 즉, 비정규직여성을 평가하는 방식, 일하는 공간에서 이들과 소통하는 방식은 반말, 구분된 호칭, 매서운 눈초리, 혹독한 관리, 혐오의 표출로 나타나고 있다. “ 비정규직 여성이라서” 가 특정한 행위에 대한 근거로서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공간에서는 이미 비정규직 여성에 대한 상징폭력이 작동하고 있다.
● “계약직이냐 정규직이냐?” 고 물어보길래, 왜 물어보는지 의아해했지만 친절하게 답변을 했다. 그런데도 불친절하게 답변했다고 시비를 걸면서 폭행을 했다. → 혐오 표출 가능!
● 보험설계사의 개인 고용한 비서로 일하는데 회사에서 업무상 오해가 있었다. 나를 작은 회의실로 불러서 무서운 눈초리로 노려보고 반말로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몰아붙였다. 멸시의 눈초리와 윽박지르던 분위기를 잊을 수 없다. → 무시와 윽박지름 가능!
● 40대 정규직 남자 조리장이 이름을 붙여 ‘ㅇㅇ아줌마’라고 부른다. 우리들은 40, 50대이고 조리원이라는 직책이 있는데도 이렇게 부르면서 반말로 이것저것 지시 한다. → 분리 호칭!
누구랑 비교해서 상처 주는 것이 쉽고도 저열한 방법이자 차별의 가장 보편적인 수법이다. 비정규직 여성은 이러한 수법에 의해 현재, 가장 촌스러운 상징폭력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들의 직무에 관한 저평가와 비정규직 여성들을 대하는 위 사례와 같은 방식에 동의하지 않는 것, “비정규직 이니까” 가 이러한 차별을 정당화 하는 자연스러운 근거가 되지 않도록 사회적 동의와 인준의 과정에서 최대의 긴장과 해체를 만들어 내는 것이 곧 저항이다. 사용자들이 차별적 구조를 만들고 문화적 정당화 기제를 퍼뜨리는 주체라면, 이를 인준하여 공모하는 것은 모든 사회구성원이다. 민주사회 참여사회, 문화주권 행사하자.
직장내 성희롱은 해마다 고용평등상담실에 가장 많이 접수되는 사례이다. 올해도 31.6%(102건)의 성희롱 상담이 있었다. 성희롱 기타 사례에서는 성희롱의 개념에 대한 무한한 확장이 우리의 운동을 살찌우는 것인지 고민하게 했다.
● 과장이 들어와 나를 보더니 ‘너 혹시 별명이 떡판이 아니냐?’고 말했다.
● “하체가 굉장히 건강하신 것 같아요. 그래서 맨날 바지만 입으시는 구나” 했는데.
직장내 성희롱이 법제화된 지 10년, 남성권력에 대항하여 가장 통하는 말이 된 ‘성희롱’은 직장내에서 남성들에 대항하는 대표선수가 되었다. 법(다른 이름으로 남성 질서)이 인준한 공식 언어 ‘성희롱’이 외모 비하, 불쾌한 농담, 불쾌한 관계를 해소하는 만능의 수단이 아님에도 이런 사례에서 많은 내담자들은 법적인 대응과 고소가능여부, 성희롱인지 여부를 물어왔다. ‘성희롱’을 빌리지 않은 저항은 어떤 것이 있을까? 불쾌감을 표출하는 것은 특정한 계급의 이해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수용하지 않으려는 긴장을 만든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 문화적인 임의성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바꾸어 버리는 것에 남성 지배의 핵심이 있다. 이 과정에 균열을 만드는 것이 저항하는 여성의 몫이다. 이쯤에서 가장 재미있는 사례를 소개한다.
● 노래방에 가서 모두가 서서 노래를 부르는 분위기였는데, 감사가 다가오더니 내 가슴을 만지고 지나갔다. 너무 기분이 나쁘고 황당했다. 노래방이 끝난 후에 감사와 같은 차를 타게 됐다. 분노가 생겨서 감사를 한 대 쳤다.
노래방에서 나갈 때까지 참을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들이 처한 상황이자 한계일 수 있지만, 끝내 자신의 분노를 방치하지 않았다는 데 반전이 있다.
상징적인 폭력이 수용되는 과정은 그 경로마저도 보편적이고 자연스러워 이것을 따를 때 안정감을 느끼게 된다. 굳이 화장을 안 하거나 바지를 고집하거나 걸걸한 목소리와 거친 피부를 드러내거나 하지 않는다면 보다 안정적으로 살 수 있다. 가슴을 빤히 쳐다보거나 만지는 손길이 있을 때 끝끝내 참아버린다면 성희롱이 가능한 일상은 ‘자연스럽게’재생산 된다. 무언가 불쾌한 순간이 다가온다면, 그것이 법적 ‘성희롱’이 아닐지라도, 불쾌감, 분노를 표현함으로서 일상적 차원의 상징폭력을 흔들 수 있는 역사적! 중차대한 순간이다.
사회적으로(남성지배질서가) 일하는 여성에게 부여한 이미지, 태도, 사고, 성향, 언어가 있다. 이것들 안에서 움직이고 있다면 ‘기타 사례’에 대해 황당함만 느낄 것이나 이것의 내재화를 거부하고 있다면 꿈틀! 시선으로, 말로, 태도로, 옷으로 저항할 수 있다. 바야흐로 이미지가 지배하고 이미지로 싸우는 시대이다.
신기루 ● 나의 심신활동은 온통♡로 구현된다.
1) 이 글에서 ‘남성’은 SEX가 남성인 일반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가부장적 질서에서 지배계급으로서 지위를 점하는 집단으로서의 남성, 남성성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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