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der board list icon](/assets/common/header-board-list-icon-871ea5b4968af0aff7ac9000984dc947.png)
2008 3*4월호 [평동사무실에서]여성가족부 존폐 논의를 바라보며_권미혁
평동 사무실에서
여성가족부 존폐 논의를 바라보며
권미혁 ●
올초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여성가족부(이하 여가부)폐지 발표를 접하고 매우 분개하였다. 새 정부의 성격상 ‘공공성 약화’를 띄게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고 대선 당시 한나라당의 허약한(?) 여성정책을 봐왔던 터라 ‘여성가족부의 폐지’는 MB정권의 성평등언프렌들리 관점이 증명되는 것임과 동시에 여성정책의 후퇴냐 아니냐에 대한 가늠자로서의 지위를 갖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여가부를 폐지시키자는 발상 자체가 여성정책에 대한 고민의 결과가 아니라 여성정책의 경시에서 나온 것이 확실하였고 민우회는 ‘여성정책기구의 존치’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그러나 이 운동이 ‘여성가족부 존치’로 정리되면서 민우회는 “성평등 정책을 펼칠 정부기구는 있어야 하지만 그것이 꼭 여성가족부의 존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는 입장을 표명하였다.
주변의 다수가 여가부 존치로 정리되는 와중에 민우회가 다른 입장을 가지게 되면서 겪은 곤란함은 운동을 하는 입장에서 많은 것을 생각케 하였다.
우선 곤혹스러운 점은 민우회가 주장하는 내용을 제대로 전달하기가 어렵다는 점이었다.
논의가 ‘여가부 존치냐 아니냐’에 대한 관심으로 집중되다 보니 의견의 앞뒤 맥락이 함께 읽히기 보다는 ‘여가부 폐지에 반대하냐 아니냐’라는 질문에 대한 답에만 주목되는 분위기였던 것이다. 때문에 우리의 주장은 ‘여가부 존치 반대’라는 의미로만 읽히고, 심지어 민우회가 여성정책기구의 필요성 자체를 부정한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였다. 성명서를 통해 “성평등 정책을 전담하면서 이를 실효성 있게 집행할 수 있는, 즉 각 부처에 영향을 미치는 실효성 있는 기구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음에도 말이다. 그리고 이는 여성부에서 여가부로 바뀌는 과정, 그리고 2006년 여가부와 청소년위원회의 통합이 논의되던 과정에서도 여성정책기구에 대해 일관되게 주장해온 민우회의 입장이다.
우리는 나름대로 우리의 주장을 했지만 ‘여성계의 목소리’로는 ‘여가부 존치’가 가장 크게 부각되면서 민우회의 입장은 별로 주목을 받거나 사회의제화 되지 못했다.
‘주류’(?) 여성계와 입장을 달리한 - 그러나 인수위 안에 찬성인 것도 아닌 - 민우회의 주장은, 대립각이 분명하게 서 있는 논쟁 속에서 관심을 받기 어려웠던 것이다. 물론 주의를 끌기 위해서는 민우회가 더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고 논쟁했어야 한다는 부분은 인정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말이다.
이 기간 동안 한 조직의 대표로서 여가부 존치를 이야기했던 타 단체대표나 원로 여성운동가, 그리고 (민우회) 선배들을 만나는 것이 편하지 않았다. 대부분이 여가부 존치를 위해 열심히 뛴 당사자들이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나는 민우회가 그동안 같이 해왔던 운동의 대열에서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경험하였다. 그리고 아마도 민우회가 가진 역사와 위치 때문이겠지만, 여성계의 ‘주류’와 조금 다른 목소리를 낼 경우 훨씬 따가운 눈총을 받는다는 것을 느꼈다. 민우회 입장에 대한 질타의 내용 중 많은 부분이 ‘그동안 여성운동을 앞장서(?) 열심으로 해온 민우회가, 한 목소리를 내서 엠비정부의 성평등 정책 후퇴에 대응해야 하는데 어떻게 같이 하지 않을 수 있느냐’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도 갈등하는 지점은 있다. 방법론적으로 “여성가족부가 비록 잘 한 것은 없지만 일단 엠비 정부의 여성정책 후퇴의 상징인 여가부는 살려놓고 그 뒤에 새로운 기구의 상을 논의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하는 지적인데, 일면 타당하다고 생각하지만 그 뒤에 새로운 기구의 상을 논의하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실제 이후 과정에서 가족과 보육업무를 이관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의견이 달랐다.
이번 과정에서 나는 두가지 점이 아쉽게 느껴졌다.
그 하나는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다양한 의견들이 의미있게 의제화되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 다음으로 어쩌면 우리는 일에 쫓겨 운동 사회내의 소통에 대해 덜 노력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점. 그동안 의견은 다르지만 민우회와 토론하고 싶다는 사람을 한 사람정도 밖에 만나지 못했다. 과연 우리는 나와 다른 의견에 대해 정말 잘 알고 있는 걸까?
2001년 여성부를 만들 때와 달리 이번에 여성계는 한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앞으로도 이같은 입장 차이는 계속될 것이 분명하다. 여태도 그랬지만 보다 본격적으로 이런 입장의 차이가 어떻게 소통되고 어떻게 존중되며 그러면서도 운동의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게 아닌가 싶다. 차이를 드러내는 것의 의미와 과정이 공유되어야 하고 또 무엇을 위해서 차이를 드러내야 하는가도 이야기되어야 한다.
이번 과정에서 얻은 교훈이라면 횡단의 정치는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횡단의 정치를 가능케 하는 것은 (존중에 기반한) 소통을 위한 매우 의도적인 노력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권미혁 ●한국여성민우회 상임 대표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