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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3*4월호 [국제통신원]다시 그리운 쌍문동 생협 공동체.._김금미
국제통신원
다시 그리운 쌍문동 생협 공동체
김종애, 윤희경, 이경미 그리고 김인숙 선생님에게
김금미 ●
지난 연초, 다들 바쁜 와중에도 개의치 않고 ‘해쳐 모여’ 하며 지난 우리의 저력을 다시금 과시하긴
했으나 너무나 아쉬운 짧은 만남이었어요. 95년부터 5년 이상 매주 한번씩 생협공동체를 하다가 캐나다로 이민 간 이후, 3년 반만의 만남이라 서로들 참 할 얘기도 많았건만 반가운 소식만 주고 받는 정도로 만족해야 했죠. 엊그제 인숙 선생님이 전화로 이 글을 부탁했을 때 사실 그 때 못다한 얘길 더 나누고 싶은 마음이 앞섰던 것 같아요. 전화로 지금 한국은 38 행사로 바쁘다고 했는데, 이곳 캐나다 토론토에서도 천여 명의 여성들이 플랭카드를 들고 거리 시위하는 사진이 일간지에 실렸더군요. 이런 류의 연례 행사로서는 북미에서 최대행사라고 하면서 짤막한 인터뷰 기사도 실렸는데, 특히 폭설에 추운 요즘의 이 곳 날씨를 감안할 때 남녀 평등을 주장하는 그들의 열정에서 우리 민우회 회원들의 활동을 보는 듯했습니다.
이 곳 캐나다는 그야말로 다민족의 집합체라 할 정도로 해마다 수많은 이민자들이 세계 각지에서 몰려들며 기존의 백인 위주의 사회 색깔을 점차 바꿔가고 있습니다. 특히, 다문화 지향 정책으로 미국과는 달리 각 민족의 색깔을 존중하는 터라 여기저기서 동시에 최소 서너 개 이상의 외국어를 동시다발적으로 듣게 되는 게 예사죠. 물론 이 곳 토론토 시는 영어가 공식언어로 되어 있건만, 영어와 프랑스어를 국어로 인정하는 나라라 모든 공산품에는 이 두 개 언어로 각각 설명문이 적혀 있어요. 처음엔 이런 낭비가 어디 있는가 했는데 서로를 존중한다는 것이 마치 사회의 이념처럼 뿌리 박혀 있어 경제적이라는 이유로 그들의 윤리를 희생시킬 수는 없다는 것이 통념이 되어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질 않죠. (물론 역사적으로 꾸준히 퀘벡 주에서는 독립을 주장하고는 있지만. )
그렇다고 어디 사람 사는 데 편견과 차별이 없을 수 있나요? 나부터도 인도나 파키스탄의 음식 냄새만 맡으면 인상부터 써지니까요. 사실 캐나다 오기 전까지만도 내가가보고 싶은 나라 5위안에 인도가 들어 있었어요. 그들의 초월적인 삶을 무척이나 경탄해마지 않았으며 시성 타고르의 원족 경로를 따라가보고도 싶을 정도였죠. 또 언젠가는 마더 테레사의 집에 가서 몇 달씩 봉사 활동도 해보리라고 마음먹기도 했었어요. 이 곳 토론토에는 특히 동남 아시아와 중동에서 온 이민자들이 많은 터라 여기저기서 보자기 (히잡)을 두른 여인네들, 심지어 여자 아이들을 흔히 본답니다. 그들을 볼 때마다 우리나라에서 온 이민자들은 한결 같이 약간의 비호의적인 시선으로 투덜대곤 하죠. 그들의 문화를 존중하긴커녕 받아들이려고 하지도 않죠. 그러면서도 그들의 유창한 영어에 한편으로 기죽고 또 한편으론 그들의 독특한 어조(inglish)를 비아냥거리면서 그들을 저급의 문화인으로 치부하는 게 상례예요. 이 같은 편견이 어디 우리민족과 인도인 사이에서만 이루어지겠습니까? 모든 인간관계란 상대적인 것이 아니던가요? 왜 여성 단체가 남녀평등을 부르짖기 시작한 1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 여전히 같은 구호를 외쳐야 하는데요? 저는 모든 게 같은 맥락에서 비롯된다고 봐요. 같은 뿌리에서. 아집과 이기심. 이해심과 관대함의 결여. 즉, 편견과 차별화 혹은 변별화. 누가 이민 가서 무엇이 제일 좋더냐고 묻는다면 전 단연코 대답할 수 있어요. 이런 편견의 비좁은 내 자아를 국제적인 무대에서 시험해볼 수 있게 되고 그래서 이리저리 부딪히면서 교정 받고 있음에 감사한다고. 그래서 더 넉넉해진 맘으로 삶을 끌어안을 수 있게 되었노라고. 캐나다에 오기 전에는 영어란 오직 한 언어, 기껏해야 두 서너 개의 버전 (영국식, 미국식, 혹은 호주식 정도의)을 지닌 하나의 외국어로만 알던 터였던 내가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였던가를 Konglish는 물론이려니와 changlish, spanglish, Janglish 등을 들으며 이해하며 하나의 교감을 끌어내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수많은 버전을 가질 수 있는가를 절감합니다.
김금미 ● 서울에서 태어나 영문학과 미술사학을 전공한 뒤,
지금까지 미술사 서적을 번역해오고 있으며
여러 대학에서 미술사 관련 강의를 한 바 있다.
현재는 캐나다에 살고 있다. 그는 생협의 같은 나눔조를 통해
알게 된 친구들(김종애, 윤희경, 이경미, 김인숙)과의 인연을
‘특별히 소중한 만남’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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