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3*4월호 [쟁점과현안]범죄를 멈출 수 있다면 ‘치료’를 바라오!_이임혜경
쟁점과 현안
범죄를 멈출 수 있다면 ‘치료’를 바라오 !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이임혜경 ●
성폭력 범죄가 언론에 보도되면 기자들의 전화로 민우회 성폭력상담소(이하 민우성폭)는 살짝 긴장상태가 된다. 질문은 성폭력의 발생 원인부터다. 성차별적인 질서, 남성중심적이고 왜곡된 성문화, 위계적이고 권력적 구조, 폭력에 허용적인 문화 등이라는 대답이 왠지 겉돌고 원하는 ‘정답’이 아닌 것 같아 부담되기 시작한다. 질문이 이어진다. 아동과 여성들이 피해자가 되는 이유는? 자신(가해자)의 통제력이나 물리적인 힘이 발휘되는 사람과 상황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왜 성폭력은 재범률이 높나? 허걱. 원인에서 다 드러나고 있다. 여성에게 순결과 정조를 강조하는 사회, 성폭력 피해자를 바라보는 왜곡된 시선, 피해를 입은 사람에게 도리어 책임을 운운하는 통념과 분위기, 앞날을 쥐락펴락할 정도의 위치(감독, 교수 등)에 있는 사람에게 맞서봤자 해결은 안 되고 나만 더 힘들어지는 상황 등 피해에 대해 입을 막게 하니 어쩌면 재범을 만들어내는 건 바로 사회이다. 그걸 잘 알고 있는 가해자는 더 대범하게 범죄를 저지른다. 하지만 이런 대답 역시 와닿지는 않는 것 같고 뭔가 슝슝 통과하고 있는 느낌이다.
이번엔 대책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원인을 알았다면 그걸 변화시킬 수 있는 의식이나 문화변화 등 기반 마련이 필요하다는 말을 하지만 역시 제대로 안 먹힌다. 사람들은 뭔가 세고 강하고 확실한 대책이길 바라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가해자 신상정보의 지역주민열람제도, 위치추적전자장치부착제도(일명 전자팔찌)등 ‘안전’을 위한 정책과 법이 만들어지기도 하고 민우회에게 찬성이냐 반대이냐의 정확한 입장 표명을 원한다. 찬/반이 아닌 대답은 ‘정답’이 아닌 그 질문은 역시 매번 불편하다. 그런 와중에 최근 법무부가 성폭력 범죄 대책 마련의 일환으로 치료감호법 개정안을 내 놓았다.
「치료감호법」이란 심신장애, 마약, 알코올 등의 약물중독 상태에서 범죄행위를 한 사람 중 재범의 위험이 있고 치료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사람을 감호(감독하고 보호한다는 뜻)하며 치료하기 위한 법이다. 그리고 법무부가 개정하고자 하는 주요 내용은 치료감호의 대상에 ‘정신성적 장애’가 있는 상태에서 범죄행위를 한 사람, 즉 소아성 기호증, 성적가학증 등 정신성적(性的)인 장애를 지닌 성폭력범죄자를 추가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에게 ‘병과주의’ 적용의 문제가 하나의 쟁점이 되고 있다.
‘병과’란 쉽게 말하자면 징역형이 끝나고 난 뒤, 즉 형을 살고 나온 후 치료감호의 집행 기간(개정안 상 최대 7년)을 또 가지는 것이다. 현재 치료감호법에 명시된 심신장애, 마약, 약물중독 상태 범죄자에게는 대체주의 방식(치료감호를 받은 기간을 형기에 산입하는 것)을 적용하고 있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이는 연쇄성폭력, 성추행 후 살인, 유기사건 등 심각한 성폭력범죄가 계속 일어나면서 사람들의 특단의 대책마련 요구에 부응하는 것인 듯하다. 하지만 현재 법 상의 치료감호 대상자들과 재범의 위험성, 치료의 필요성이 있다는 요건이 같음에도 성폭력범에 대해서만 다르게 접근하는 것에 대해서는 많은 토론이 필요한 문제라 생각된다. 앞에서 말한 성폭력으로부터의 사회 ‘안전’을 위한 책들에 대한 찬/반 물음에 대한 불편함과 맥을 같이 하는 내용이다.
또 병과주의는 형 집행이 끝난 이후에 또 사회와 격리시켜 ‘감호’의 방식으로 치료를 받는 것으로서 근본적으로 이중처벌의 문제를 갖고 있다. 우리나라 헌법재판소는 치료가 필요한 자에 대해 사회를 보호하기 위한 처분이니 형벌에 병과 되는 것이 이중처벌금지원칙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판시한 적 있고, 미국 연방대법원도 같은 논리로 합헌판결을 한 바 있다. 그러나 미국 내에서 이에 대한 비판이 여전히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한다. 이번 개정안을 두고도 우리도 아마 많은 논쟁이 있을 것이다.
성차별적 문화, 왜곡된 성인식 등 성폭력에 대한 원인분석과 구체적인 변화 모색 보다는 눈에 보이는 강한 정책과 법을 경쟁하듯 내놓는 것에 대한 우려 점은 있다. 그러나 많은 논란으로 개정안 전체가 폐기되기 보다는 치료가 필요한 정신성적 장애를 가진 성폭력범에게는 치료를 하는 방안이 모색되었으면 하는 게 솔직한 심정이기도 하다. 장애가 있고 그로 인해 범죄를 저지른다, 재범의 위험성이 있다? 그렇다면 방치하고 요행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뭔가 적극적 조치인 치료를 받고 낫게 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는가.
하지만 고민이다. 가장 먼저, 성폭력 가해자는 회사원, 국회의원, 교사, 교수, 신부, 목사 등 신분과 교육정도를 가리지 않고, 심지어 정책과 법을 만들고 있는 사람들조차 의식과 문화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에도 성폭력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이 대부분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는 잘못된 통념을 갖고 있는 현실에서 이 개정안 논의가 성폭력 범죄자에 대한 고정관념을 갖게 하는 것은 아닐까 우려가 된다.
둘째, 정신성적 장애란 소아성기호증, 성적가학증 외에 관음증, 접촉도착증, 노출증 등을 포함하는 개념인데 이들의 정신이상 여부 판단기준에 있어서의 의문이 강하게 든다. 전문의의 판단의 문제일 수 있으나 ‘성적 장애’를 어떤 기준으로, 어떤 방법으로 정확하게 예측하고 분류할 수 있는지에 대한 많은 논의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사회의 성문화, 성적 도덕기준, 상대적인 가치가 개입되는 ‘성적’인 문제를 어떻게 장애로 진단할 수 있을지 말만 들어도 고민스럽지 않는가.
셋째, ‘장애’로 진단이 내려지는 것이 가해자에게 어떤 의미인지 고려하는 것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 이는 성폭력 상담을 하며 느끼는 ‘술’에 얽힌 답답함으로부터 시작됐다. 성폭력 가해 당시 만취한 상태였다는 진단을 받아 심신상실자(심신장애에 포함되는 개념이다)로 인정, 감경 되는 예가 너무 많다. 심신상실 상태에 있는 동안은 의사무능력자(책임무능력자)라는 이유이다. 이런 사례는 널리고 널렸다. 위험의 발생을 예견하고 자의로 심신장애를 야기한 자의 행위는 처벌을 면하지 못하며 형이 감경되지도 않는다는 형법 10조 3항의 조항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례처럼 ‘술’은 다 통하고(?)있다. 이러니 정신성적 장애 진단이 제대로 된 처벌을 피하는 도구로 사용될지 모른다는 의심과 함께 정확한 진단과 판결에 대한 신뢰를 갖기 힘든 문제가 있다.
그럼에도 필요하다에 한 표를 던지는 이유는 그 목적이 ‘치료’라는 점 때문이다. 민우성폭은 97년부터 개인 및 보호관찰소, 구치소 등의 집단 가해자교육을 진행, 한 해 약 40여명의 가해자들을 만나 왔다. 성의식 변화, 성폭력에 대한 이해, 잘못된 통념 깨기, 성적의사소통 등의 인식을 변화시키는 교육을 통해 재범을 막고 성폭력을 예방하고자 함이다. 40시간 정도의 교육으로 큰 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우나 그럼에도 가해자들의 생각의 변화를 감지하는 순간이 있기 때문에 내용에 대한 고민을 하며 지속하고 있다. 이렇게 사족과 같은 말을 길게 하는 이유는 범죄의 내용이나 죄질을 보아(이 역시 분명하지 않은 판단이긴 하다) 우리들의 소박한(?) 교육으로 어떤 변화를 이끌어 내기 힘들다고 판단되는 가해자가 분명 있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이다. 그리고 이 경우 교육 대상자에서는 일단 제외, 가해자의 의지가 있어 신경정신과로 연계를 고민할 때도 있으나 그것도 아니라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 없다.
가해자교육이 변화의 가능성을 믿고 성폭력을 예방하기 위한 한 가지 방법으로 쓰이는 것이라면 성폭력 범죄 예방책의 다각화 방안으로서 치료, 의료적 조치를 고려해야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징역형을 집행하면서 치료를 병행하는 방법, 징역형 이후 ‘감호’가 아닌 병원과의 연계 시스템 구축을 통한 통근 치료의 의무화 등 이중처벌의 소지를 줄이고 치료효과를 높일 수 있는 방안이 다양하게 있을 것이다. 주먹구구식 생색내기 정책과 법이 아닌 목적이 ‘치료’에 있다면 그에 부합하는 내용과 조건, 환경에 심혈을 기울였으면 한다.
이임혜경(오이)● 소모임 못 가고, 원고 늦고, 빵구 내고,
사람들과 놀지도 못 하고, 일에만 파묻히고…. 이건 아니지 싶습니다.
봄 햇살이 좋은 날, 책상 위 쌓인 자료들부터 치워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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