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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3*4월호 [쟁점과현안]운하, 왜하니?
쟁점과 현안
운하, 왜하니?
권범철 ●
새로이 취임한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 한반도 대운하 때문에 온 나라가 시끄럽다. 학창 시절 세계사 시간 이후로 들어본 적이 없는 운하라는 것이 이렇게 우리를 피곤하게 할 줄이야. 어쨌든 운하라는 이 놈, 잘 알아볼 필요가 있다. 만약 운하가 건설되면, 이 땅에 사는 어느 누구도 그것을 피해갈 수 없을 터이니. 한 가지 미리 얘기해 두고 싶은 것은, 10년 동안 운하를 연구했다는 100명의 찬성 측 학자들에겐 안타까운 일이지만 조금만 생각해도 충분히 운하의 문제점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고로 여기서는 복잡한 건 접어두고 상식적인 수준에서만 이야기 해 보자. 운하를 이야기하는 것은 그것으로도 충분하다. 그만큼 운하 건설 측의 주장은 가소롭다.
운하는 주로 배의 운항을 위해서 만든 인공 수로이다. 즉 물이 흐르지 않는 곳을 배가 다닐 수 있게 땅을 파내어 물길을 연결하는 것이다. 경부운하는 한강과 낙동강을 연결해서 배가 다닐 수 있게 하는 것이고, 한반도 대운하는 경부운하 구상에 이어 우리나라의 식수원이자 주요 강인 한강, 낙동강, 영산강, 금강, 대동강, 청천강, 압록강을 연결하여 한반도 전체에 내륙 운하를 건설하겠다는 구상이다. 남한에 12개 2,100여km, 북한 쪽에 5개 노선 1,000여 km 등 총 17개 노선 약 3,100km를 총칭하여 한반도 대운하라 부른다.
운하를 이용하는 나라들은 대륙이 넓은 지역으로 유럽, 미국, 중국, 러시아 등이다. 그러면 우리나라에는 왜 운하가 없는가? 운하가 발달했던 유럽의 땅은 우리나라와는 달리 평지이며, 독일의 라인강과 도나우강은 수심도 깊고 유역 면적이 넓다. 라인강은 한반도 면적과 같고 도나우강은 한반도의 2배 크기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국토의 2/3가 산지이다. 게다가 수심이 얕고 비가 적게 올 때와 많이 올 때의 차이가 크다. 간단히 말해서 배가 다닐 수 없는 길이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 운하를 건설한다는 것은 단순히 물길만 이어주는 작업이 아니라, 모든 강바닥을 파내고 암반지대의 굴착을 통해 직선화시키는 제방 공사다. 배가 지나는 모든 강을 완전히 개조하여, ‘초거대 콘크리트 옹벽 수로’로 바꾸는 것이다. 명심하시라. 그냥 강물에 배 띄우는 게 아니다.
가장 우리를 당황스럽게 하는 찬성 측 주장 중 하나는 운하를 건설하면 수질이 좋아진다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자. 배 띄운 물의 수질이 좋아질 리가 있나? 현재 상수원보호구역에는 화물선은커녕 나룻배도 못 띄우게 되어있다. 대표적인 찬성 측 학자인 박석순 이화여대 교수는 운하를 건설하면 물이 정체되어 물이 썩는다는 의견에 “배의 스크루가 돌면서 물을 깨끗하게 한다”는 혁신적인 주장을 펼쳐 세간의 이목을 끈 바 있다. 진작 알았다면 수질 개선을 위해 지난 13년간 4대강에 28조 6천억원(현재가치로 환산하면 40조원 이상)이라는 어마어마한 돈을 투입하지않고 유람선이나 몇 척 더 띄워 지금쯤 한강 물 그냥 사발로 퍼 마시고 있었을 텐데, 우스운 것은 운하 건설이 수질을 개선한다고 하면서 취수원을 옮겨야 한다거나 간접취수방법을 도입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들 주장대로 배 띄워서 수질이 좋아진다면 왜 취수원을 옮기거나 취수방법을 바꾸어야 하는가.
더군다나 선박이 사고라도 난다면 문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운하가 발달한 독일의 경우 10년간 선박 사고가 매년 평균 500건이나 된다. 하루에 한번 이상은 꼭 사고가 나는 셈이다. 유럽은 주로 지하수를 식수원으로 사용하지만 우리나라는 흐르는 강물이 식수원의 70%를 차지한다. 먹는 물에 배 띄워서 사고 나면 우리는 무얼 마셔야 하는가? 한강과 낙동강은 3,000만이 넘는 사람들의 식수원이다. 어른들 말씀대로 먹는 걸로 장난치면 안 된다.
그리고 찬성 측은 운하가 향후 증가할 물동량에 대비한 물류혁명이 될 것이라 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운하로 옮길 짐, 없다. 지난 1월 대운하의 주요 고객이 될 국내 컨테이너와 벌크화물운송업체(화주)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한겨레, 2008. 1. 14)에서 76.7%의 업체가 대운하가 필요 없다고 답했다. 그리고 운하가 생긴다 하더라도 56. 6%가 이용하지 않겠다고 답했으며, 운하를 이용하겠다는 응답은 6.6%에 불과했다. 그나마 나머지 36.6%의 대답은, “그때 가봐야 안다”. 그때 가서 이용안하면?
그래서 들고 나온 비책이 있다. 바로 ‘관광운하’. 운하노선을 따라 관광레저 지구를 개발하여, 서울에서 부산까지 크루즈 관광을 한다는 것이다. 찬성 측 말을 빌리자면 “운하는 관광소득을 증가시키는 21세기형 SOC ”이다. 그러나 이는 물류운송을 위한 사업이 관광사업으로 변질된 것으로, 이야말로 운하건설의 경제성 없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지역의 특성을 무시한 천편일률적인 관광레저 지구 개발이 정말 지역발전을 가져올 수 있을까? 개발업자, 건설자본의 배만 불려주지 않을까? 과문한 탓인지 모르지만 유럽에 운하가 많다는 이야기는 들어봤어도, 유럽에 운하 구경하러 간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그나마 겨울철에는 운행하기도 어렵다. 운하는 일정한 수위를 유지하기 위해 물을 가두어 두어야 하므로 얼기 쉽다. 찬성론자들이 운하 선진국으로 모시는 독일의 경우, 운하가 얼어 3개월 동안 운항을 하지 못한 적도 있다. 운하가 관광수입을 올릴 수 있다면, 그건 아마도 스케이트장 입장료 수입이 될 것이다. 스케이트 타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3개월이면 충분하지 않겠는가.
겨울엔 운하를 놀린다 치더라도 여름엔 그 자체로 재앙이다. 알다시피 우리나라 여름, 비 제법 쏟아진다. 현재 한강상류에 있는 댐들은 홍수가 오기 한달쯤 전에 물을 방류한다. 그래야만 홍수기에 물을 저장하여 하류의 홍수피해를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운하를 건설하면 한강과 낙동강에 댐을 추가로 지어 물을 채워야 한다. 배가 다니기에는 수심이 너무 얕기 때문이다. 따라서 배의 운항을 위해 항상 일정한 수위를 유지해야 하므로 여름이면 늘 홍수 피해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찬성 측은 홍수가 오기 전에 이 댐들의 물을 모두 방류하면 홍수를 예방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면 배는? 당연히 못 다닌다. 배 다니라고 가둔 물을 모두 방류해버렸으니 배가 걸어가지 않는 이상 다닐 방도가 없다. 겨울엔 얼어서 못 다니고, 여름엔 홍수 나서 못 다니고, 배는 언제 다니나? 물류혁명의 꿈은 멀어져만 간다.
이런 운하, 도대체 왜 하려하는 걸까. 이제는 정말 궁금하다. 누구라도 이득 보는 이들은 있지 않을까. 우리는 건설사를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KBS2 추적60분, 2008. 2. 13)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이 조사에서 물류수입만으로 수익성 확보가 가능할 것인가에 대한 항목에서 건설사의 91%는 불가능하다고 답했으나, 경부운하 건설에 참여할 것인가란 항목에서는 80%의 건설사가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건설사가 이 땅의 물류혁명을 위해 자원봉사를 하는 게 아니라면 그 속셈은 뻔하다. 그것은 바로 운하주변 개발권 확보이다. 민자 사업으로 진행되는 운하건설에서 수익이 나지 않을 경우 운하주변 개발권 특혜 등을 통해 정부가 보전해주리라는 기대를 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보전해준다? 그 말은 당신이 개발업자의 이익을 보전해준다는 말과 같다. 운하 건설을 하게 되면 국민 1인당 50만원이란 세금을 더 부담하게 될 것이란 보고가 있었다. 요컨대 100% 민자로 추진한다는 말은 운하 건설에 참여하는 기업의 이익을 100% 보장해주겠다는 말과 같다. 개발은 막대한 투기이익을 거둘 수 있는 가장 유력한 방식이다.
100대 건설사 여론조사, 운하건설에 참여하는 이유는? 운하주변개발 60% 터미널 운영 23% 물류수입 9% 관광사업 참여 4% 레저위락시설개발 4% <출처 :KBS2 추적60분> |
자, 이제 운하를 한마디로 정의해보자. 운하는 전국의 강을 콘크리트 옹벽 수로로 만들어 개발업자, 투기꾼, 지주들의 배를 불려주는 사업이다. 아름다운 자연을 파괴하고, 그곳의 생명체와 역사를 죽이고, 마실 물을 더럽히고, 홍수 피해를 감수하면서 운하를 꼭 지어야 하는가? 아직도 운하의 필요성을 끊임없이 주장하는 사람들, 그들은 운하가 경제를 살리고 나라를 부흥으로 이끄는 일이라고 여전히 떠들어대고 있다. 수많은 반대 목소리에는 귀를 닫은 채, 언제나 ‘나라’를 위하는 길이라고 떠드는 그 입, 이제 그만 좀 다물라. 그 ‘나라’에 아마도 나는 없을 테니…
권병철 ● 환경정의 토지정의센터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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