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3*4월호 [민우역사기행]1994년-2000년, '열린가족이야기한마당’ 속으로_유경희
민우역사기행
1994년-2000년,
‘열린가족이야기한마당’ 속으로
유경희 ●
민우회가 1994년부터 2000년까지 ‘열린가족이야기한마당’의 이름으로 ‘가족’에 대한 목소리를 냈던 것은 ‘정상가족이데올로기’에 대한 도전과 사회적 공론화를 위한 것이었다. 가족 내 평등한 관계, 다양한 가족선택권이 존중받는 사회를 꿈꾸는 민우회의 ‘가족’이슈의 핵심은 가족 내 민주화, 가족간 차별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의식과 문화적 차원에서 많은 논의를 필요로 하는 ‘가족’담론은 현재도, 그리고 앞으로도 쭈-욱 유효한 과제인 것이다.
1994-1996
평등·민주적인 가족 문화 우리가 만든다!
민우회 동북지부(서울, 1992년)창립 당시 지역여성의 일상적 삶을 주제로 한 운동과제를 모색하고 있었다. 그 중 가족생활에서의 성별분업적인 형태에서 나타나는 남녀차별·부모자녀간의 위계질서에 대한 문제의식이 제기되었고, 이는 의식과 문화차원의 접근이 필요함을 인식하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가족 내 권위주의, 부계중심 가족생활, 남녀차별과 같은 가부장적 가족문제에 대한 변화를 끌어내자는 공감을 얻었고 실천운동으로 연결되었다. 1994년 가족실태 조사를 실시하여 가족구성원간의 역할에 대한 불만과 기대를 알아보고 이를 토대로 가족구성원간의 민주적 관계에 대한 의식변화를 위한 운동으로 진전시키고자 하였다. 지역의 민우여성학교 참여자들과 활동가들은 가족 내 생활 속에서 반드시 지켰으면 하는 것에 대한 소박한 토의를 진행시켜 나갔다. 이것이 ‘열린가족이야기한마당’ 출발의 배경이 되었다.
본부로 연결된 첫 번째 ‘열린가족이야기한마당’에서는 가족체험수기 발표와 평등가족문화 형성을 위한 부부 24계명이 공유되었다. 당시 회원들은 부부·부모자녀의 바람직한 관계에 대한 그들의 실천과 바램의 목소리를 글로 옮기는 작업을 시도하였고, 그 과정에서 설레임과 부담스러움이 공존하는 긴장감을 맛보기도 하였다. 평등한 가족관계에 대한 희망을 담은 부부 24계명은 책으로 구성되어 확산되었고,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다.
1995년 가족과성상담소 개소 이후 이어진 2회 ‘열린가족이야기한마당’에서는 평등한 부부관계를 주제로 부부간의 대화, 성적 의사소통에 대해 사례를 통해 알아보고 좀 더 구체적인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자리를 마련하였다. 실제 부부들과 전문가의 솔직하고도 진솔한 대화는 참여자들의 귀를 열게 하였고, ‘그래, 그렇지’하는 공감대를 이끌어냈다. 더불어 당시 여성노동센터 주관으로 이루어진 ‘맞벌이부부 10계명’ 지침서와 가사노동분담 수첩은 실제적 생활에 적용할 수 있었고, 새로운 혼례문화 만들기를 위한 활동 또한 가족 내 평등 문화를 확산하는데 기여하였다.
1996년 3회 ‘열린가족이야기한마당’은 청소년의 성의식과 성문화를 주제로 실태조사와 전문가의 조언을 바탕으로 청소년 자신, 부모, 학교와 사회에서의 건강한 성의식과 성문화를 위한 각각의 10가지 수칙을 만들어 알려내는 활동으로 전개되었다. 성적주체로서의 청소년에 대한 인정에서 출발한 가족 내 청소년 자신, 청소년 자녀의 성의식에 대한 이해, 학교와 사회의 인식변화를 촉구하는 성적의사소통에 대한 이야기한마당으로 진행된 이 행사는 당시로서는 급진적인 시도였다.
1997-2000
민우회, 한부모가족 운동의 실천에 나서다!
민우회 가족과성상담소 개소 이후 상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외도와 폭력 등의 원인으로 인한 이혼절차 문의, 이혼 후 재산분할, 자녀양육, 경제적 자립의 현실성 등 ‘이혼’관련 내용이었다. 무엇보다 이혼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 이혼 후 생존의 문제는 여성들로 하여금 심각한 상황임에도 벗어나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사회복지 대상에 머물러 있는 한부모 여성들의 열악한 사회적 지위를 알려내고, 상담과 교육법과 제도 등의 지원체계 마련의 필요성을 알려내는 활동이 요구되었다. 한부모 여성들에게는 한부모가 되는 과정에서의 어려움을 나눌 수 있고, 자신의 선택을 존중받으며, 이혼 후의 삶의 안정을 돕는 장이 절실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민우회는 ‘가족’영역의 활동을 한부모로 초점을 맞추게 된다.
한부모가족이 행복한 세상 만들기의 공론화!
1997년 이후 2000년까지 지속된 ‘열린가족이야기한마당’행사는 한부모가족이 행복한 세상 만들기의 공론화 장(場)이었다. 핵가족 중심의 가족문화에서 배제되고, 복지 수혜대상으로서의 한부모가 아닌 주체적인 여성한부모 운동을 만들고자 하였다. 한부모가족을 포함한 다양한 가족 구성권의 존중, 한부모가족의 현실과 법·제도에 대한 문제제기, 한부모가족의 유대 강화와 당당하게 세상과 만나기의 작업들을 함께 해 나갔다.
정서적 교류의 장에서 지지와 대안을 찾기 위한 과정으로 1997년 5월, 열린가족이야기한마당’-‘새로 짓는 우리집, 한부모가족의 문제를 함께 풀어봅시다’-을 마련하였다. 당시 참여했던 한부모들은 스스로 사회적 편견과 현실의 어려움을 드러내고 자녀 양육과 새로 만들어가고자 하는 우리 집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풀어내어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80여명에 이르는 참여자들에 놀라고, 공식적인 행사로 준비했음에도 MBC 기자가 출현하여 당황한 한부모들이 자리를 뜨는 상황이 벌어지고, 설득하여 기자를 돌려보내고 다시 그 장(場)을 추스렸던 기억들이 지금도 뚜렷하게 남아있다.
그날 이후 한부모들의 정서적 나눔, 정보제공의 장인 서로 돕기 모임은 지속적으로 꾸준히 이어져 민우회 한부모 활동에의 주체로 함께 할 수 있었다.
한부모가 된 원인이 자신에게 있지 않음을 알자!
나의 상황을 수용하고 자신감을 갖자!
어려울 때는 주위에 당당하게 도움을 청하자!
자녀와 솔직하게 이야기 하자!즐겁게, 당당하게 살자!
- 우리들의 선언, 1999
1999년 민우회에서 실시한 ‘한부모가족 의식 및 욕구조사’에서 ‘한부모’라는 대안 호칭을 만들게 된다. 단독부모, 싱글마더, 한부모 등의 대안호칭 중 하나라는 의미와 함께 ‘한가위’, ‘한강’에서처럼
‘온전하다’, ‘가득차다’, ‘크다’의 의미를 가진 순 우리말 ‘한부모’가 채택되었다. 한부모들은 욕구조사의
질문에 다양한 경험담을 쏟어 놓았고, 희망사항을 풀어놓았다. 당시 욕구조사와 인터뷰에 참여한
140여명의 한부모들의 목소리를 담아 스스로 주체자로서의 말하기를 시도한 ‘우리들의 선언’은 가슴 찡한 감동으로 남아있다.
또한, ‘난 이런 세상에 살고 싶다! 한부모가족이 원하는 세상’-사회, 학교, 정부에 바라는 제안서를 발표하였다. 이와 함께 ‘나도 한마디’영상을 통해 부모들의 욕구를 생생하게 전달하기도 하였다.
누구나 한부모 가족이 될 수 있음을 알자.
결손가정이란 말을 사용하지 말자. 모든 가족은 정상가족이다.
교과과정에 다양한 형태의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고 이에 대한 교육을 하자.
호주제를 폐지하라.
한부모가족을 위한 종합적인 정보 및 상담체계를 지원하고 제도화하라.
- 한부모 가족이 원하는 세상- 사회, 학교, 정부에 바라는 제안서, 1999 닫힌 가족의 빗장을 열자
2000년 6월 여해문화공간에서 열린 ‘열린가족이야기한마당’은 ‘이제 닫힌 가족의 빗장을 열자’는 슬로건으로 다양한 형태의 가족들을 초청하여 진솔한 삶의 이야기를 나누는 장이었다. 활동가와 한부모 모두 신나는 마음으로 축제의 장을 기획하였다. 독신여성, 남매와 함께 사는 이혼 한부모 남성, 두 딸과 함께 사는 이혼 한부모 여성, 엄마와 사는 15세 딸, 아이들과 더불어 사는 비혈연공동체 가족이 이야기 손님이었다. 가수 박진영과 신형원이 분위기를 띄워냈고, 마지막 무대엔 민우회 한부모 서로돕기 모임 ‘행복을 만드는 사람들’의 퍼포먼스가 이어졌는데 가슴 찡한 호응과 열띤 박수가 터져나와 모두 흥겨운 감동을 나누었다. 행사 참여자들에게 국내외의 다양한 가족 및 서로돕기 모임 소개, 새로운 자녀교육, 가족 관련 단행본과 자료집 전시, 인터뷰 비디오 등이 소개되었다. 혈연/혼인/이성애 중심/비장애 라는 틀을 ‘정상’이라 인식하는 닫힌 가족의 빗장을 열고 다양한 가족에 대한 공론화를 위한 축제의 장으로 기억된다.
1998년에서 2000년까지 한해의 끝자락에 한부모가족과 함께 한 힘내기 한마당 또한 ‘열린가족이야기한마당’의 장으로 이어갔다. 한부모들 스스로 준비한 바자회, 가족과 활동가들의 공동체 놀이, 작은 따뜻한 선물들, 푸짐한 삼겹살 파티에서 만났던 격의 없는 친밀감, 시끌벅적한 웃음들은 행복이 이런 것임을 알게 해 준 이벤트였다. 민우회가 한부모 운동을 펼쳐나간 방식은 ‘열려라! 한부모 세상 만들기’를 위한 과정이었다. 한부모를 주체로 인식하고, 적극적인 참여를 위해 역량을 키워내려는 것이었다.
새로운 ‘열린가족이야기한마당’을 상상하며
근대적인 핵가족의 변화와 함께 나타나는 가족의 변화는 ‘위기’며 ‘해체’가아닌 ‘새로운 구성’이다. 다양한 가족의 출현은 생산과 돌봄이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새로운 형태의 ‘열린 가족’의 의미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민우회가 수년 동안 ‘열린가족이야기한마당’이란 장을 통하여 전달하고자 했던 ‘가족’에의 목소리는 “가족구성의 자유와 존중” 그리고 “더불어 살기”이다. 다양한 형태의 ‘가족’들의 경험에 기반 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회, ‘더불어 살기’에 대한 실천의 내용이 만들어져야 한다. 가족 내, 가족 간을 포함한 일상의 생활에서 일어나는 차별에 대한 깨어있는 성찰은 사회구성원들의 삶의 질을 변화시킬 수 있다. 차별 감수성은 한 개인의 삶의 질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갖게 하며, 가족 전체의 변화를 꿈꿀 수 있게 한다. 소통과 돌봄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상생 공동체로의 ‘가족’에 대한 다양한 상상력이 필요하다. 경계를 넘어서는 인식에서 함께하는 실천이 시작될 수 있음이다.
유경희 ● 파릇한 은행나무 잎이 돋아나는 정동 길을 걷고 싶은 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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