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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3*4월호 [민우칼럼창]내 인생의 이모작_김인숙
민우칼럼 창
내 인생의 이모작
김인숙 ●
이제 막내가 대학문에 들어가고 나니 집에서 할일이 아무것도 없는 듯하다. 퇴근해 컴컴한 집으로 돌아가 쓸쓸한 밥상을 차려야 하는 것이 두렵다. 복닥대는 일상조차 변화하기 싫은 이 관성! 하지만 이 기간도 한달 남짓 지나니 슬슬 편안해진다. 이틀 걸러 빨아도 넘치던 빨래통이 비어있고 한번 끓여놓은 된장국으로 며칠을 먹어도 양이 그대로이다. 가사일이 줄어드니 한결 여유로운 것이 이 해방감도 싫지는 않다.
인생을 이모작하라던 최재천 선생님의 책제목이 생각난다. 그래, 바로 이 시기가 이모작 준비를 시작해야 할 바로 ‘그 때’일거야. 하지만 막막하다. 젊은 시절의 활동을 통해 사회적 자본을 만들지 못한 중년여성으로서 이모작을 생각하는 것은 또 하나의 막막함이다. 그냥 저냥 이대로 살다가 죽어야 한다는 말보다 더욱 나를 아득하게 만든다. 또 무엇인가 의미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주문, 능력 있는 존재라는 것을 선포해야 한다는 부추김, 뭔가 달라져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으로 느껴진다. 강박으로 올까 두려워진다.
컴컴한 빈집으로 들어가려다 또 친구들에게 문자를 날렸다. 여자 넷이 모였다. 화려한(?) 솔로, 이제 막 이혼을 선택한 이혼녀, 만나고 싶을 때만 보기를 선택한 쿨한 주말부부, 그리고 지극히 정상적으로 보이나 우여곡절이 많은 부부관계를 유지하는 나. 우리의 대화는 연예인 사생활부터 이명박 정부의 운하건설까지 세상사를 걱정하고 염려하느라 종횡무진 정신없다. 그러나 언제나 나오는 화제 하나는 있다. 묵직하게 가슴 한켠을 차지하고 있는 과제, 노후를 어찌 맞이할 것인가이다. 화려한 솔로라는 수사를 붙여주었지만 아이들 과외가 주업이니 비정규직 인사, 이혼으로 구직활동에 들어가야 하는 친구, 남편의 연금을 위해 심정적 노동을 계속해야 하는 처지들이니 앞으로 노후에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가 중요한 화제 중 하나다. 오늘도 신나게 떠들다 문득 이모작에 대한 고민에 대한 답이 생각났다. 이렇게 수다떨며 만난 친구들, 이들과의 관계 이상 가는 자산이 또 어디 있을까? 은행 통장속의 숫자는 아니나 이 이상의 자산은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민우회를 들어와 이 친구들을 만났으니 나는 민우회 문을 들어서던 그 순간부터 이모작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젊은 시절이나 지금이나 가진 자산이 부족하고 미래는 불안하며 여자를 위한 사회의 벽은 너무도 두텁다. 하지만 한가지만은 다르다. 그때는 혼자만의 고민이었는데 지금은 같이 고민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아직 답은 없으나 우리 같이 찾을 수 있을 듯하다. 요즘 우리가 모이면 앞으로 하고 싶은 일, 살고 싶은 삶의 형태, 살고 싶은 집, 앞으로 가지고 싶은 이웃과의 관계들을 이야기 한다. 그러다 같은 동네로 귀농해 공동체를 이뤄 살자는 이야기도 한다. 그럴 땐 모든 시름과 근심이 날아가고 마음이 부풀어 오르지만 물론 이 모든 것이 현실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수다과정을 통해 우리는 노후의 우리를 지탱할 철학과 가치관을 가다듬고 있다고 생각한다. 부자로 살 생각들을 하는 것 같지는 않다. 혼자 독야청청 우아하게 살 생각을 하는 것 같지는 않다. 다같이 공동체적으로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꾸는 생태적인 마을을 꿈꾸는 것으로 보인다. 농촌이어도 좋고 도시에서라도 좋을 듯하다. 정말 아름다운 꿈이고, 현실이 되길 바란다.
올해 민우회는 복지사업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여성복지 전반을 훑어 보고 노인여성복지를 고민하며 특히 노인장기 요양보험을 모니터링하고 바람직한 사업방향에 대해 대정부 제안을 하게 될 것이다. 나의 이모작을 위한 준비 중에 이것도 하나이리라.
내가 만들고 싶은 노후생활의 안정은 지금 시작한 이 사업으로 우리가 만들게 될 것이다. 우리의 문제를 사회이슈화하고, 시민들과 공동으로 해결책을 만들어 가던 민우회의 활동방식 그대로 만들어지지 않을까? 그래서 나의 이모작은 혼자만의 힘 기르기가 아니라 우리의 작업으로 만들어지게 되지않을까? 막막함을 벗고 과거의 학력이나, 경제력, 경력을 바탕으로 하기보다는 우리가 민우회 여성운동을 통해 가졌던 경험을 자산으로 시작하게 되지 않을까?
김인숙 ● 한국여성민우회 공동대표
‘두려움 없는 용기는 없다’라던 친구의 말을 지팡이 삼아 평동에 적응하려 애쓰고 있다.
나이가 드니 몸만 굳은 것이 아닌지 시간이 조금 걸린다.
하지만 매일매일이 신선하고 그것이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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