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3*4월호 [민우ing]TV수신료, 누구를 위해 올려야 하나_강혜란
민우ing
TV수신료, 누구를 위해 올려야 하나
강혜란 ●
안타깝게 폐기되는 수신료 인상안
2007년 KBS는 수신료를 2500원에서 4000원으로 인상하는 법안을 내놓았다. 이는 무려 27년만의 일이다. 이 법안은 법적 절차에 따라 방송위원회를 거쳐 국회에 제출되었다. 진보적 성향의 언론단체들은 사회적 비난을 감수하면서도 이 안을 적극적으로 지지하였다. 심지어 4000원이 아니라 6000원으로 인상하여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하고 활발한 공개 토론, 칼럼을 이어갔다. 이는 궁극적으로 빠른 국회의 동의를 촉구하는 내용이었다. 물론 이에 질세라 보수단체들의 성명도 이어졌다. 방만한 비용구조를 개선하고 프로그램의 편향성을 바로잡아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때까지 수신료 인상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공방은 국회에서도 여전하였으며 ‘닭(수신료인상)이 먼저냐 알(구조조정)이 먼저냐’는 논쟁 속에서 결국 회기를 넘기고 모든 상황을 원점으로 돌려놓았다.
매체 간 무한 경쟁과 공영방송
문득 20년 전이 떠오른다. 그때 우리는 KBS시청료 거부운동의 정점에 서있었다. ‘땡전뉴스’로 상징되는 정권의 나팔수를 더는 눈뜨고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단체들의 문제제기는 열화와 같은 국민적 지지를 받았다. 그런데 지금, 그때 KBS를 지키려 했던 보수권력은 연일 KBS 프로그램의 문제를 지적하고, 운동의 전면에 나섰던 진보적 단체들은 이를 감싸 안으려 한다. 도대체 왜 이런 입장의 변화가 나타난 것일까?
그 답은 변화된 매체환경과, 공영방송의 존재 의미에 대한 ‘다른 생각’ ‘다른 해석’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KBS를 공영방송이라고 말한다. 이는 과거 국영방송과는 다른 의미다. 공영방송이란 이윤 추구를 직접적인 목적으로 하지 않고 공공의 이익을 도모하는 방송을 말한다. 공영방송의 존재의미가 우리 사회에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은 불과 10여년이지만, 그 과정에서 KBS에는 상당한 변화가 있었다. 물론 이는 KBS만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시민사회의 요구와 결합된 절차적 민주주의의 진전, 권력형 압력의 축소 등 변화된 외적 조건으로 인해 현실화될 수 있었다.
극한 경쟁으로 치닫고 있는 다매체 다채널 상황 속에서 이미 ‘문화’도 ‘상품’이다. 때문에 좀 더 시청률을 높일 수 있는 자극적 소재 발굴이 대다수 채널의 고민일 수밖에 없다. 공영방송은 이러한 상업적인 경쟁 환경 속에서 ‘포퓰리즘을 넘어선 믿을 만한 정보’ ‘사회적 약자를 아우르는 다양한 계층의 의견 수렴’ ‘시장이 해결하지 못하는 비오락적 요소에의 투자’등을 담아, 유익한 것을 대중화시키고 대중적인 것을 유익한 것으로 바꾸어내는 역할을 수행한다. 때문에 오히려 탈규제 흐름이 가속화되면 될수록 더욱 중요해진다. 분명한 것은 신뢰도 1위, 영향력 1위라는 여론조사 결과처럼 그나마 KBS가 보여주는 프로그램들이 차별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KBS의 존재이유이기도 하다.
지상파 무료망의 복구,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과제
수신료를 인상해야 하는 더욱 중요한 이유가 있다. 이는 지상파방송의 무료망 관리를 KBS가 맡고 있고, 이러한 무료망의 복구가 매우 시급한 사안이라는 것이다. 최근 국회는 인터넷 멀티미디어 방송사업법(IPTV법)을 통과시켰다. 이로써 유료방송은 ‘케이블TV’ ‘위성방송’ ‘IPTV’로 더욱 다양해졌고 이는 거대 자본 간의 경쟁이 더욱 확대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특히 IPTV는 새로운 방송과 통신의 융합형 매체로 파괴력이 엄청날 것이라는 예측이다. 여기에 ‘인터넷전화’ ‘초고속인터넷접속망’ ‘이동전화’ 등이 다양하게 패키지로 구성되어 싼 가격에 공급되는 결합상품의 시장경쟁이 본격화되면 미디어시장의 판도는 완전히 바뀔 것이라는 예측이다. 그리고 결국 그 시장의 성패는 KT나 SKT 등 거대한 통신사업자들의 일방적 승리로 끝날 것이다. 왜? 결합시킬 수 있는 다양한 품목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자본 규모에 있어서 비교조차 될 수 없는 거대 공룡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은 말 그대로 사업자이기 때문에 공공성이나 공익성에 대한 책임감보다는 수익성에 대한 고려가 앞설 수밖에 없다. 결국 독과점적인 상황에 이르면 요금 인상이 필연적이라는 것이다. 이때 시민들이 되돌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무료망(지상파방송망)을 되살려놓지 않으면 아무리 높은 가격이라도 각자가 감당하여야 하는 상황이 된다. 2006년 케이블TV(당시 지역 독점의 성격)의 디지털화에 따른 요금인상 기도가 시민적 저항을 받았던 사례와 마찬가지로 독점적 또는 독과점적 사업자가 일방적 요금인상을 기도하는 위험천만한 상황이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국책사업인 ‘2012년 아날로그 방송의 송출 중단’은 이러한 무료망을 제대로 복구시키지 못할 경우 지상파방송조차 보지 못하는 계층을 출현시킬 수도 있는 매우 복잡한 상황을 예고하고 있다. 즉 기술의 발달은 다양한 정보를 누리는 계층과 지상파 방송조차 보지 못하는 계층으로 극단적인 양극화를 초래할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수신료 인상은, 아무리 가난하더라도 교육과 의료의 혜택을 받아야 하는 것처럼 미래사회에서 주요한 사회문제로 등장한 정보격차에 대한 최소한의 안전망을 확보해야 하는 문제와 밀접히 연결된다. 결국 수신료 인상은 그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 우리 공동체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수신료 인상은 KBS 정치적 독립의 중요한 변수
누군가 내게 묻는다. 그런데 MB정권 하에서도 여전히 수신료 인상이 필요한가? 물론이다. 그 이유는 재차 언급하는 것처럼 KBS가 국영방송이 아니라 공영방송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수신료 인상은 호시탐탐 논란이 되고 있는 ‘공영방송의 국영방송화’를 막는데 매우 유용할 수 있다. 또 이는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와 언론의 공공성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세계가 주목하는 공영방송으로 BBC가 있다. 이라크 전쟁 당시 BBC와 블레어총리의 대결은 매우 유명하다. 당시 BBC 다큐멘터리 ‘파노라마’는 블레어 총리가 이라크내 대량살상무기(WMD)의 존재 유무가 불투명함에도 불구하고, 즉 미국이 사담 후세인 정권의 교체를 위해 이라크를 공격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참전했다는 것을 폭로했다. 이러한 내용은 블레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고발한 것으로, 영국 전체를 발칵 뒤집어 놓는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총선을 앞두고 있는 블레어의 역공은 대단했다. 법원조차 “완벽하게 사실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판결을 내렸다. 결국 그 여파로 BBC의 이사장과 사장이 동반 사퇴하는 등 곤욕을 치렀다. 그러나 영국 국민들 대부분은 BBC의 보도를 믿었다고 한다. 왜? BBC는 늘 국민의 편에서 신뢰를 받는 뉴스를 제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도 이런 방송을 한 번 가져보자는 것이 언론운동진영의 바람이다. 불가능하다고? 아니다. 최근의 KBS뉴스를 보면 기대해볼 만도 하다. 현재의 균형을 지키는 것은 결국 시민사회와 국가권력, 자본권력 간의 균형이 얼마나 확보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제대로 된 공영방송을 유지하는 것은 국민들의 견제와 감시, 그리고 든든한 지지와 지원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여전히 KBS에 대한 위정자들의 협박은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2003년 한나라당(당시 야당)이 제출한 수신료분리징수법안이다. 표면적인 명분은 수신료를 전기요금과 통합 징수하는 것이 소비자의 선택권을 제한하는 내용이라는 것이었지만, 실제로는 본인들의 입장을 고려해주지 않는 KBS에 대한 협박이고 경고였다. 또 2004년 한나라당이 제출한 국가기간방송법도 같은 맥락이다. 이법은 KBS를 다시 국가의 통제 하에 두겠다는 내용이다. 최근 한나라당 정병국 의원(문광위)의 ‘국가기간방송법에 동의해주기만 하면 수신료를 7000원으로 현실화하겠다’는 내용은 이러한 정치적 의도를 충분히 읽을 수 있게 한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얼마 전까지 여당이었던 통합민주당 의원들도 KBS를 결코 믿음직한 파트너로 이해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오히려 그런 친밀감보다는 무례하게 자신들을 공격해왔다는 섭섭함이 더욱 많다. 이러한 정치권의 평가는 여론조사 ‘신뢰도’ ‘영향력’ 1위와 맞물려 KBS의 독립성이 어느 정도 확보되었음을 의미하고 있다. 언론이 특정 사회의 권력 어느 한 쪽으로 편중되지 않는 것은 민주주의의 진전과 밀접히 관련된 내용이다. 그런 측면에서 KBS는 절반쯤 국민의 편에 걸어와 있는 것 같다. 그들이 마지막까지 사회적 책무를 다하게 하는 힘, 그것은 국민적 관심과 수신료 인상에 있다.
강혜란 ●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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