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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3*4월호 [회원이야기]몽골을 다녀와서
회원이야기
몽골을 다녀와서
전은미
“언니, 엄마 아프시지? 건강 안좋으시지?”
몇 달만에 전화해 거두절미하고 뜬금없이 첫마디에 대뜸 엄마건강을 묻는 후배의 말에
‘얘가 오랜만에 전화해 갑자기 웬 엄마 건강 체크야...’
잠시 어리둥절 하면서
“ 아니, 요즘 괜찮아” “근데 왜?” 하고 묻자
“언니 몽골에 안 갈래? 한국어 교사로~”
지루하게 반복되는 일상의 삶 속에서 뭔가 새로운 것을 늘 꿈꾸던 차에 설레는 제안이었지만 혼자 남을 엄마 생각으로 선뜻 대답이 나오질 않았다.
가톨릭NGO단체인 한마음한몸운동본부에서 일하고 있는 후배는 한국해외원조단체협의회에서 민간NGO단체를 통해 해외봉사자를 파견하는데 이번에 한마음한몸운동본부에서도 몽골에 한국어 교사를 파견하기로 했단다. 내가 노동인권회관의 ‘외국인 이주노동자인권을 위한 모임’에서 몽골 이주노동자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던 후배가 파견소식을 듣는 순간 제일 먼저 나를 떠올렸다며 연락을 한 것이다. 새로운 삶의 경험과 전환이 될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하고, 돌아와서 다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심히 걱정스러운 적지 않은 나이지만 과감히 직장을 그만두고 2007년 4월 드디어 몽골의 수도 울란바타르로 떠났다. 여러 사람들의 걱정과 우려를 뒤로한 채.
거센 바람으로 공중에서 상하로 심하게 흔들리던 비행기가(어찌나 공포스럽던지….) 결국 울란바타르까지 가서 착륙을 못하고 북경으로 회항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비행기는 예정시간을 훨씬 넘긴 밤중에 몽골 징기스칸 공항에 도착하였다.
어둠침침한 밤거리, 꾸역꾸역 많은 사람들을 이리 포개고 저리 겹쳐서 태우는 미크로버스(버스로 영업을 하는 봉고차. 정말 사람들이 겹쳐서 탄다. 봉고차 앞자리에 4명이 타기도 하고 전부 스무명까지 탄단다. 처음에 난 몽골에 사는 동안 이 끔찍한 미크로버스는 절대 타지 않으리라 결심을 했지만 추운 겨울 일반버스는 오지 않고 몸은 춥다 못해 손발끝이 떨어져 나갈 것처럼 아릴 때 그 결심을 무너뜨릴 수밖에 없었다.), 말로 표현하기조차 힘든 몽골의 거센 봄바람(어찌나 거센지 이 바람 때문에 살이 내린다고 말할 정도이다. 실제로 난 작년 봄 살이 많이 빠졌다), 돌과 흙, 깨진 유리조각, 쓰레기 등으로 뒤덮인 거리, (이 사람들은 쓰레기를 그냥 거리나 버스 안에 자연스럽게 버린다.) 사람을 바로 앞에 두고도 절대 정지하거나 서행하는 법 없이 고속으로 질주하는 차량들, 뚜껑 없는 맨홀들, 늘 마음을 졸여야 하는 불안한 치안상태(실제로 소매치기와 도둑, 외국인에 대한 폭행사건이 많다.) 이런 곳에서 살면서 내가 매일 출근한 곳은 울란바타르 성베드로바오로 성당내에 있는 CCM도서관이다.
이곳에서 난 몽골의 청소년과 대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면서 그들과 함께 - 어쩌면 내 인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 몽골에서의 1년을 보냈다.
대부분 몽골의 전통 가옥인 게르나 판잣집에서 사는 이 아이들에게는 학습공간이 별도로 없고 도서관 또한 변변히 갖추어진 곳이 없어 우리 도서관은 정말 작지만 귀중한 공간이었다. 이곳에서 아이들은 교과서도 빌려 보고(몽골은 대학교를 제외하고는 의무교육이지만 교과서는 지급하지 않아 가난한 몽골의 아이들은 교과서가 없는 경우가 많다.) 한국어 교육, 컴퓨터 교육, 영어 교육 등 다양한 교육의 기회를 갖는다.
몽골사람들은 대부분 20세 전후의 이른 나이에 결혼을 한다. 결혼식은 돈이 많이 들어 대부분 식을 치르지 않고 동거하는 경우가 많다. 성의식 또한 매우 개방적이라 20세 이전이나 미혼인 경우에도 아이가 있는 경우가 많고 그것이 도덕적, 정서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사회이다. 어린 나이에 아이를 낳아 키우고, 또 어려운 경제사정으로 일자리가 없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대낮에도 독한 보드카에 취해 길거리에서 비틀거리고 가정에서 부인을 폭행하는 남자들이 많아 이혼율이 매우 높다. 남성보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더 활발한 몽골에서는 이혼 후 엄마가 아이를 키우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부모의 이혼 후 아이들은 대부분 엄마와 살거나 엄마가 재혼하면 의붓아버지와 살게 되면서 또 의붓아버지의 폭력과 학대를 견뎌야 한다. 형제간에 아버지가 다른 경우도 흔한 일이고 아예 버려져서 거리의 아이가 되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구걸을 하거나 소매치기를 하며 사는 아이들도 많다.
몽골사람들은 형편이 어려워도 외형적으로 치장 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특히 여성들은 짙은 화장과 굽 높은 구두를 신고 노출이 심한 옷을 입는 등 차림새가 화려해 우리의 사고방식과 정서상으로는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면을 갖고 있지만 짊어져야 할 삶의 무게가 힘겨워서인지 대낮에도 독한 술냄새를 풍기며 몸을 못 가누는 여성들의 모습 또한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척박한 자연환경과 물질적 궁핍보다 이들에게 더 큰 어려움은 어쩌면 정신적인 추위와 외로움일지도 모른다.
내가 한국에 돌아간다 하니 언제 다시 몽골에 올거냐며 모두 같이 가고 싶다는 나의 제자들과, 자기도 한국에 데려가라며 코리안드림을 꿈꾸는 동네 감자가게 아저씨, 한국의 가요를 즐겨 배우고 심지어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와 나도 잘 모르는 우리 애국가 4절까지 알 정도로 한국에 대해 많은 관심과 호감을 갖고 있는 몽골의 아이들에게 온갖 색색의 꽃들로 화려한 한국의 아름다운 봄을 보여주고 싶다. 억세고 거친 바람 때문에 몽골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봄이 얼마나 아름다운 계절인지 한 순간이라도 느껴보게 하고 싶다. 떠나는 나를 위해 차비도 없어 시내까지 먼 거리를 걸어가서 선물을 준비한 아이들. 예쁜 꽃들의 향연에 어쩌면 평생 이 아름다운 봄을 한번도 보지 못하고 척박한 땅에서 살아가야 할 아이들 얼굴이 떠오른다. 눈물 나는 봄이다.
전은미 ● 마음 가는 대로, 발길 닿는 대로 어디든 갈 수 있는 그녀.
그녀의 다음 행보가 무척이나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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