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5*6월호 [민우칼럼 창]심청, 향비, 사끼 바트만, 이 세상 여인들의 이야기
민우칼럼 창
심청, 향비, 사끼 바트만, 이 세상 여인들의 이야기
송호창
나는 여인들의 이야기를 특별히 좋아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녀들의 이야기에는 목숨보다 질긴 생명력이 있다.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남자지만 그 남자를 지배하는 것은 여자라는 따위의 의미가 아니라 혹독한 삶의 현장에서 실낱같은 희망을 한올 한올 엮어내는 끈기와 애착, 그 몸부림 속에서 빛을 발하는 생활력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황석영 선생의 ‘심청’은 나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하다. ‘심청’은 힘없고 연약한 소녀가 시대의 희생물이 되어 중국 대상인의 첩으로 팔려가 온갖 고초를 겪다가 끈질긴 생명력으로 다시 살아 돌아오는 이야기이다. 그녀는 용궁이 아니라 늙은 주인의 양기를 보충해주는 첩실로 팔려갔고, 그 곳을 떠나서는 집창촌으로, 싱가포르에선 프랑스 장교의 현지처로, 일본에선 게이샤의 주인으로 변신하며 난관을 헤쳐 나간다. 그녀가 온갖 어려움을 뚫고 나가는 모습은 눈물겹고 감탄스럽다. 억울하게도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몸뚱이를 팔아야만 했었지만 동아줄처럼 질긴 생명력으로 부활하는, 그래서 보란 듯이 권력자, 남자들 앞에 당당히 돌아오는 여인의 모습은 우리네 서민들의 일생을 고스란히 닮았다. 심청이 난징, 진장, 지룽, 싱가포르, 오키나와, 나가사키 그리고 제물포로 올 때까지 말과 국적이 다르지만 수많은 심청을 발견하게 된다. 어디를 가나 가난한 서민들은 대체로 비슷한 처지였던 것이다. 황석영 선생은 ‘심청’을 위해 동남아에 떠도는 불운한 여인들의 이야기를 열심히 수집했다고 한다. 어려운 시절일수록 가장 천대받고 박해받는 것이 힘없는 자라면, 그들을 대표하는 아이콘은 여인이었다.
청나라 건륭황제 시절의 향비도 변방 소수민족의 아이콘이다. 그녀는 중국의 서쪽 실크로드 길목의 하나인 카슈카르 지역 위구르족 출신이다. 위구르족은 얼굴 생김새부터 언어, 역사 등이 전혀 다른 한족의 지배를 오랫동안 받아왔다. 이민족에 의한 지배의 역사는 오랜 역사만큼이나 격렬했다. 그 한 가운데에 향비의 이야기가 자리 잡고 있다. 그녀는 몸에 베인 은은한 대추향이 백리 밖까지 퍼진다고 하여 향비라 불렸다. 빼어난 미모와 향기에 취해 청나라 건륭황제가 특별히 지목하여 황실로 데려갔는데 그녀의 나이 22살이었고, 고향에는 이미 정혼한 사람이 있었다. 향비가 카슈카르의 제물, 희생양임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그녀의 궁정생활 25년 역시 가시방석이었다. 설화 속에서도 망향에 시달린 많은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고향에 두고 온 약혼자에 대한 그리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으리라. 항상 가슴에 칼을 품고 다녀 건륭제가 한번도 그녀를 품을 수 없었다는 이야기도 내려져 온다. 그녀는 궁정에서도 위구르의 전통복장과 음식을 취하면서 절개를 지켰다니 위구르인들은 그녀를 더욱 존경하고 소중하게 생각한다. 힘이 없어 당할 수밖에 없지만 그녀는 위구르의 자존심이 되었던 것이다. 죽어서야 비로소 고향을 갈 수 있었던 향비는 이 지역의 전통에 따라 가족들과 함께 카슈카르에 안치되어있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은 3년이 넘게 걸렸다. 죽어서도 향기를 잃지 않아 향비를 태운 마차 주위에 나비 떼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수백년이 흘렀지만 향비는 위구르인의 절개를 상징하는 전설이 되었다.
아이콘은 약자들의 상징이 되기도 하지만 점령자, 약탈자의 본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고발자이기도 하다. 스스로의 몸을 불살라 세상의 어두운 구석을 밝혀내는 것이다. 남아프리카의 ‘사끼 바트만’은 그 잘난 유럽백인들의 저열한 성적 관음증, 인종차별주의, 비인간성의 극한을 고발한다. 그녀는 유난히 불룩 튀어나온 엉덩이와 특이하게 큰 가슴, 성기 때문에 한 영국인 의사의 눈에 띄어 1810년 유럽으로 건너와 여러 도시를 돌며 ‘인종전시물’이 되었다. 마치 동물원의 신기한 원숭이를 보듯 유럽인들은 그녀를 전시대 위에 발가벗겨놓고 관찰하고, 만지며 신기해했다. 이름마저 빼앗겨 그녀는 영국식 이름 ‘사라 바트만’이 되었고, ‘호텐토트(열등 인종) 비너스’란 별칭이 따라다녔다. 그녀의 출신인 코이코이족이 ‘사람’이란 뜻을 갖고 있다는 사실에 백인들은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인종전시가 시들해지자 그녀는 서커스단에 팔려 살아있는 장난감으로, 다시 백인남자들의 노리개가 되어 성적 학대를 받다가 유럽에 온지 5년 만에 결국 사망하게 된다. 그녀는 죽어서도 편히 잠들 수 없었다. 백인의 우월성과 흑인의 열등함을 입증하기 위해 생식기와 뇌가 분리되었고, 시신은 박제되어 인류학 박물관에 전시되었다. 그녀가 넬슨 만델라에 의해 고향으로 돌아와 묻히는 데에는 거의 200년이 걸렸다. 이제 사라 바트만의 비통한 이야기는 남아공의 4대 연극 중 하나로 상설 공연되고 아프리카인의 가슴 속에 분노의 응어리가 되었다. “내 인간성을 돌려주시오, 나의 아름다움, 인간적 위엄을 돌려주시오, 내 자궁을 돌려주시오.”라는 대사와 함께.
황석영 선생은 ‘심청’에 이어 처참하게 사는 자와 억울하게 죽은 자를 소통시켜주는 영매 ‘바리데기’의 이야기를 내놓았다. 둘 다 약하디 약한 여인들의 이야기이고, 암울한 삶을 꿈틀대는 희망으로 승화시키는 생명의 이야기이다. 향비와 사끼 바트만과 함께, 그리고 수많은 심청들과 함께 그 여인들의 이야기는 우리 세상의 희망을 일궈가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나는 여인들의 이야기를 그냥 흘려들을 수 없고 내 삶의 원동력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
송호창 한국여성민우회 이사
평소 12kg의 자전거를 타고 다니고, 빈 손이 부끄러워
50g 안쪽의 책을 끼고 다니는 64kg체중의 가벼운 사람.
언제든 훌쩍 떠나기 위해 가진 것을 최대한 가볍게 하려고 애쓰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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