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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7*8월호 [생협 이야기] 완경기, 끝이 아닌 시작
임현희
나의 폐경은 분명히 이웃집 아주머니보다 심할 거야
그 이후로 나에게 폐경은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었다. 집에서 살림만 하고 남편과 아이들 뒷바라지가 큰 과제이며 의무로만 여겨왔던 나는 ‘그럼, 나의 폐경은 분명히 이웃집 아주머니보다 심할 거야’ 라는 불안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크고 나이가 마흔이 넘고 나의 큰 업무였던 집안일이 줄어들면서 생활이 무료해지더니 쓸모없는 곳에 시간을 낭비하게 되었다. 과거의 상처에 나를 묶고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에너지를 소모하게 된 것이다. 그러다 둘째 아이의 아토피 때문에 생협에서 생활재를 공급받으면서 민우회 소식지를 보게 되었다. 이거다! 싶었다. 특별한 능력도 재능도 없는 나이지만 용기를 내어 민우회의 작은 소모임들의 문을 두드렸다.
처음으로 시작한 소모임은 ‘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라는 책을 읽는 모임이었다. 마침 심신이 처져있던 나에게 딱 맞는 책이었다. 성장이 빨랐던 나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초경을 하고 가슴이 커지기 시작했다. 친구들보다 일찍 시작한 터라 말도 못했다. 말할 생각조차도 못했던 것 같다. 대중목욕탕에 가서는 아는 사람이라도 만날까 두려워 구석 자리만 찾았고 재빨리 목욕을 끝내고 나왔던 기억이 난다. 친정 엄마께서도 어린 내가 걱정스러웠는지 그저 조심하라고만 하셨다. 성장기 나에게 신체의 변화는 부끄럽고 감추어야만 하는 것으로 여기게 되었다. 결혼 후 임신, 출산, 육아로 이어지는 과정에서도 한 집안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과 의무감으로 똘똘 뭉쳐 나를 돌아볼 여유도 마음도 없었다.
내 몸의 소중함을 깨닫고, 내 몸의 소리에 귀 기울이다
‘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 책을 읽으며 그동안 내 몸을 소중히 하였는가, 내 몸을 사랑해 주었는가, 내 몸을 감사히 여겼는가 생각해 보았다. 질병이 찾아오면 원인을 외부에서 찾으려고 했고, 의학에만 의존하려 했었다. 내 몸을 살피고, 내 몸이 필요한 게 무엇인지 무시하고 살아왔다. 몸은 우리에게 ‘경고’ 차원에서 끊임없이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우리는 이 메시지를 무시할 때 건강을 잃게 된다. 몸이 들려주는 메시지가 지식과 충고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조금이라도 깨달았으니 건강을 더 잘 가꿀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을 통해 정신과 몸은 밀접한 관계에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내 몸의 소중함을 깨닫고, 내 몸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과거의 상처를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내 몸에 관심을 갖고 나 자신을 위하는 것이 진정 무엇인지 알게 되었을 때쯤 민우회 달맞이팀에 참여해 완경강좌를 준비하게 되었다. 여러 분야에서 오신 강사님들의 강의를 들으며 완경은 끝이 아닌 시작이라는 것, 여성들이 진정으로 자신의 모습과 만나 나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시기라는 걸 알게 되었다.
완경에 대한 고정관념 극복할 수 있어요
지나온 삶을 되돌아 볼 때 아쉬움도 후회도 있다. 하지만 있는 그대로 나를 받아들이려고 한다. 겪어온 역사가 진정으로 내 것이 될 때 비로소 현실에 충실할 수 있지 않을까? 현재의 튼튼한 발판은 밝은 미래를 보장해 주지 않겠는가?
아직도 완경이 고민하고 이야기할 거리가 되느냐고 반문하시는 어떤 강사님 말씀에 뒤통수를 한 방 맞은 듯했다. 겪지도 않은 완경에 벌벌 떠는 자신이 부끄러웠다. 이번 완경강좌에는 생활이 좀 어려운 분들도 오셨는데 완경을 꿋꿋이 당당하게 준비하시거나 보내시는 걸 보고 완경에 대한 부정적 고정관념을 깨뜨리느냐 마느냐는 스스로의 결정에 달려 있다는 걸 느꼈다.
완경기-완숙의 의미, 완성의 의미, 새로운 시작의 의미
완경은 인생의 한 과정이며 여자로서 완성되는 것이고 제2의 인생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전환기라는 믿음이 생겼다. 초경 때처럼 완경을 부끄러워하거나 감추지 않을 것이며 이웃집 아주머니보다는 완경을 잘 보낼 자신이 생겼다. 이 정도면 완경강좌를 개근하면서 들은 보람이 있지 않은가!
아직도 외출 중에 아이들 하교시간만 되면 가슴이 콩닥거리고 저녁 무렵이 되면 뭘 해먹을지가 큰일이다. 하지만 이제는 누구를 위한 희생도 고생도 아닌 인생을 같이 사는 동반자라 생각하고 내 주위에 있는 모든 분들과 함께 행복한 삶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
가슴을 여는 만큼, 손을 벌리는 만큼, 넓게 보는 만큼 세상은 커지는 것이었다. 새로운 세상은 누가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내 자신의 긍정적인 사고와 적극적인 실천을 통해서 가능하다.
임현희 ● 2007년에 완경 강좌에 참여하셨다가
2008년에는 달맞이(완경강좌준비)팀에서 활동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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