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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7*8월호 [회원 이야기] 남쪽 섬나라에서 지구를 만난 항해
김민희(초파)
일본의 인기 작가 오쿠다 히데오의 ‘남쪽으로 튀어’ 라는 소설을 읽으며 나도 그들이 향한 ‘남쪽’에 한 번쯤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드디어 그 ‘남쪽’ 에 다녀왔다. 눈에 보이는 것은 손에 잡힐 듯한 하얀 구름, 어디가 바다이고 어디가 하늘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 푸르름뿐이었다. 아직도 머릿속엔 이런 장면으로 가득해서 놀러 다녀온 사람 같지만 ‘답사’를 다녀오는 길이다.
내가 환경재단에서 담당하고 있는 Peace&Green Boat는 ‘배’라는 공간에서 한국, 일본 참가자 600명이 함께 지구를 생각하고, 서로를 알아가는 여행을 하는 교류프로그램이다. 11월 항해를 앞두고 마침 올해 예정된 기항지 중 한 곳이 그 ‘남쪽’이었기에 착한 여행 프로그램을 잘 꾸려보자는 마음과 기대를 가지고 답사를 시작했다. 답사를 끝낸 이 시점에서는, 내용이야 어떻건 간에 무조건 ‘가봐야 한다’라고 모두의 등을 떠밀고 싶은 생각뿐이다! 그렇게 남쪽 섬나라의 ‘자연’에 현혹되어버린 이야기를 풀어놔야 할 것 같다.
첫 번째 목적지인 이시가키섬은 일본 오키나와현에 속하는 섬으로, 오키나와 현청소재지인 나하에서도 비행기로 한 시간가량 더 남쪽으로 가야 하는 곳이다. 이시가키(石垣)는 돌담이라는 뜻인데, 실제로도 예쁜 ‘돌담’이 펼쳐진 마을을 볼 수가 있다. 아름다운 바다 속 산호초도 유명한데, 안내하는 이들은 산호를 ‘보호하며 노는’ 방법에 대한 주의도 잊지 않는다. 이번에는 시간 관계상 직접 산호를 심지는 못했지만 배 밑바닥에 유리창이 달린 글래스보트를 타고 바다 속 산호초, 물고기, 거대한 패류 등을 볼 수 있었다. 늘 잊지 말아야 할 ‘자연보호’ 라는 문구가 이렇게 직접 자연을 접하고 나면 너무나 절실히 와 닿는다. 그래서 환경을 고려한 자연체험 프로그램이 중요한 게 아닌가 싶다.
아주 조그마한 시내를 벗어나면 어디를 가도 한적한 시골마을이라 자전거를 타고 돌아보기에 좋다. 잘 보존된 자연 덕분에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를 동물들과 곤충들 때문에 운전을 하는 것이 굉장히 조심스러워진다. 이시가키에서 배를 타고 조금 더 가야 하는 이리오모테섬에는 일본의 천연기념물이자 멸종 위기에 놓인 야생고양이가 서식하고 있는데 부주의한 운전으로 인해 실제로 야생고양이가 사고를 당하는 일도 종종 있다고 한다. 누군가의 사망 소식보다 야생고양이의 사고사 소식이 지역신문 일면을 차지한다고 농담인 듯 말하는 한 주민의 이야기와 곳곳의 ‘주의’ 팻말 등을 보고 있노라면 그들의 보호 의지가 전해져 한 편으로 그래도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고양이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나로서는 야생고양이를 실제로 보고 싶었지만 쉽지 않은 일일뿐더러 괜한 욕심인 걸 알기에 지역 기념품 가게에서 파는 야생고양이 인형을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이시가키를 비롯해 주변의 섬들 어디를 가도 마냥 아름답기만 한 이 곳의 자연을 지금처럼만 보존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은 말할 것도 없지만, 현재 이시가키에서는 신공항 건설을 둘러싼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지역의 ‘발전’을 위해 신공항을 건설해야 한다는 주장과 환경 보전을 위해 건설을 저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립하고 있는 상황은 지금까지 많이 봐 온 모양새이기도 해서 씁쓸함을 떨칠 수가 없다. 자연파괴로 얻는 수혜가 누구에게로 돌아갈 것이며, 후회해도 늦었을, 잃어버리게 될 것들에 대한 충분한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은 그저 ‘자연’이지만, 오키나와는 과거와 현재의 모습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곳이기도 하다. 답사지를 안내하던 주민은 자신을 일본인이 아닌, 오키나와인이라고 했다. 2차 세계대전 중 일본군의 남쪽 최후 저지선이 되었던 오키나와는 전쟁 당시 피해와 희생을 강요받았던 역사적 상처를 가지고 있다. 오키나와는 1972년에 미군에 의해 일본에 반환되었는데, 이렇다 할 보상도 대우도 받지 못한 오키나와 주민들의 일본 정부에 대한 반감은 여전하고, 독립을 주장하는 목소리 또한 끊이지 않고 있다. 그들이 겪은 전쟁의 아픔과 슬픔은 오키나와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아름다운 풍경에 넋 놓게 되는 이곳저곳에서 쉽게 전몰자위령비를 볼 수 있고, 유난히 ‘평화’ 라는 말이 들어 간 비석, 탑, 거리 등이 많은 것에서 평화를 갈구하는 마음이 전해져 숙연해진다. 공습 등의 직접적 전쟁 피해 외에도, 실제 미군이 상륙하지는 않았지만 일본군의 편의를 위해 주민들을 강제 이주시킨 곳에서는 당시 3만여 명이던 그 지역 인구 중 약 4천명의 무고한 주민이 말라리아로 사망하기도 했다. 이러한 과거에 대해 서로를 이해한다는 의미에서 자연스럽게 다가가보면 그 아픔을 고스란히 공유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야 할 미래가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에 대한 생각도 하게 될 것이다.
내용 상 생략했지만 올해 피스앤그린보트의 기항지 중 또 다른 한 곳이 ‘아름다운 섬’ 대만이다. 드라마 ‘온에어’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지우펀’은 영화 ‘비정성시’의 촬영지로도 잘 알려진 곳이다.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제작에 영감을 준 곳이기도 하다.) 비정성시의 소재였던 2.28 사건을 떠올려보면, 대만사람들의 경험은 오키나와 주민들의 아픔과도 흡사한 면이 있고, 제주도 4.3 사건이 떠오르기도 한다.
환경에 대한 것뿐만이 아니라 평화, 인권, 생명, 지구에 다가가는 여행을 추구하는 피스앤그린보트의 올해 여행에서 사람과 사람의 만남과 배움을 통해, 그리고 기항지에서 한없이 아름다운 자연과 그곳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시간을 통해 함께 여행한 모두가 성장한 자신을 발견 할 수 있었으면 한다. 11월에 다시 만날 ‘남쪽’의 따뜻한 자연을 기대하며 이만.
김민희(초파) ● 피스앤그린보트의 코디네이터입니다.
사람보다 고양이에 대한 관심이 더 큰 게 늘 고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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