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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7*8월호 [문화산책] 라스트 프렌즈
소연
※스포일러 다량 포함.
얼마 전 일본에서는 데이트 폭력, 동성애, 유아 성폭력, 집단 따돌림 등의 상처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서로의 상처를 돌봐주고 스스로의 존재를 긍정하는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 <라스트 프렌즈>가 인기리에 종영됐다. 나가사와 마사미, 우에노 쥬리, 에이타 등 일본 최고의 하이틴 스타들이 주연으로 참여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렇게 민감한 이슈들을 다룬 드라마가 공중파에서 당당히 편성을 차지하고 있어 깜짝 놀랐다.
<프로포즈 대작전>, <노다메 칸타빌레>로 큰 인기를 모은 나가사와 마사미와 우에노 쥬리는 각각 데이트 폭력(여기서는 일종의 아내 폭력)을 당하는 여성, 자신의 몸과 정신의 성(性)이 다른 여성으로 등장하는데, 이는 분명 큰 인기가도를 달리고 있는 20대 초반의 인기 여배우에게는 상당한 모험이 될 수 있는 배역이었다. 드라마가 시작되기 전 우에노 쥬리, 나가사와 마사미 두 배우의 연기 변신은 어떤 모습을 띨지, 제작진은 민감한 사회적 문제들을 어떤 방식으로 다뤄낼지, 가슴이 두근두근했었다.
<라스트 프렌즈>에는 6명의 사회적 ‘정상성’에서 벗어난 주요인물들이 등장한다. 동거하는 남자친구에게 폭행, 강간 등을 당하는 미용사 어시스턴트 미치루(나가사와 마사미), 그녀를 오랫동안 사랑해왔으며 자신의 육체와 정신의 성이 다르다고 생각하는 모토크로스 선수 루카(우에노 쥬리), 어릴 적 친누나로부터 당한 성폭행으로 여성의 몸을 두려워하게 된 섹스리스 타케루(에이타), 구청 아동복지과 직원이자 미치루의 폭력 남자친구 소스케(니시키도 료), 솔직한 성격으로 왕따를 당하는 계약직 승무원 에리(미즈카와 아사미), 아내가 애인을 집에 데려와 자신의 돈으로 생활함에도 한 마디 따지지도 못하는 소심남 오구라(야마자키 시게노리).
이야기는 배가 산만큼 불러온 미치루가 바다를 바라보는 장면에서부터 시작된다. 친구, 가족을 떠나 홀로 어촌 마을에서 출산을 준비하는 미치루가 전 애인 소스케와의 동거에서부터 최근 벌어진 일까지 회상하는 식으로 드라마가 전개된다.
미치루는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데,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폭행당했었고 아버지와의 결별 후에는 여러 남자들과 만나며 미치루의 돈만 축내고 있다. 그럼에도 미치루는 항상 밝은 표정과 상냥한 말투를 잃지 않지만, 내면에는 항상 ‘단 한 번도 사랑 받은 적이 없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녀가 소스케에게 끌렸던 건 그녀가 갖고 있는 외로움을 그에게서도 발견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소스케는 어릴 적 사랑했던 어머니가 외도로 자신을 버리고 집을 나간 상처를 갖고 있다. 미치루는 소스케와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주며 남들 부럽지 않은 가정을 만들고 싶어 했다. 그러나 그녀의 꿈은 그의 집으로 이사 간 첫날부터 깨지기 시작한다.
끝없이 그녀를 사랑하고 배려할 줄 알았던 소스케가 그녀에게 손찌검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소스케는 미치루의 모든 부분을 통제하려 했고, 미치루가 이로부터 어긋나려 하면(남자 손님의 머리를 잘라준다든지, 약속한 퇴근 시간보다 늦게 귀가한다든지, 자기 외의 사람과 친하게 지낸다든지 등등 수도 없다) 폭력으로 이를 ‘단속’하려 했다. 그의 폭력에 충격을 받은 미치루가 그를 떠나려 하면 ‘다시는 안 그러겠다’며 눈물을 흘리고 무릎을 꿇었다(한국이나 일본이나-_-;;). 미치루는 사랑으로 그의 폭력을 고칠 수 있다는 생각에, 평생 외롭게 살아온 그를 또 다시 외롭게 할 수 없다는 생각에, 그와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 꿈을 포기할 수 없어서 그를 쉽게 떠나지 못한다. 하지만 결국 참지 못해 그의 집을 나오고 루카의 도움으로 셰어 하우스에 머물게 된다.
셰어 하우스는 한 집을 빌려 여러 사람이 공동으로 집세를 내며 살아가는 곳이다. 루카가 머무는 셰어 하우스엔 루카 외에 타케루, 에리, 오구라 등이 살고 있었다. 그들 모두 사회적으로 용인되기 어려운 상처를 가지고 있기에 그들 본모습 그대로 사랑해주는 사람은 없을 거란 쓸쓸함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서로의 상처를 약점 잡아 상대방을 공격하기보다, 보듬어주고 이해해주며 서로에게 지지가 되어 준다. 사회에서는 그들이 본 모습 그대로 사랑받지 못한다 할지라도, 셰어 하우스에서만큼은 껍데기를 하나하나 벗겨 다가가도 사랑받고, 인정받는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 결국 미치루가 소스케와 만들고 싶어했던 가족을 미치루도 모르는 사이 그들과 함께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여러 가지 사건들 속에 오구라와 에리는 결혼하게 되었고, 소스케의 성폭행으로 미치루는 아이를 갖게 되지만, 목숨 걸고 미치루를 사랑하는 루카, 루카의 모든 부분을 인정하고 사랑하는 타케루와 함께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만들게 된다. 미치루, 루카, 타케루의 사랑은 모두 서로에 대한 일방적 짝사랑으로 시작됐지만(미치루는 타케루를, 타케루는 루카를, 루카는 미치루를) 서로의 상처를 알게 되고 이를 함께 치유하는 과정에서 단단하게 서로를 신뢰하고 사랑하게 된다. 미치루의 아이까지.
서로의 지지와 사랑 속에 미치루는 그녀가 꿈꾸는 가정을 꾸리게 됐고, 루카는 여남 통틀어 일본 모토크로스 대회 우승을 하게 되고 세계 1위 모토크로스 선수가 되기 위해 훈련에 매진한다. 타케루 또한 자신에게 미안함을 표하며 남매간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누나를 용서하려는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된다. 타인의 사랑과 신뢰를 받으며 스스로를 긍정하는 힘을 얻게 된 이들은 외부에도 여유로운 시선을 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사실 큰 상처를 가진 이들이, 그 큰 상처를 스스로 받아들이고 용서하지 못한 사람들이 타인에게 관대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셰어 하우스의 그들은 사회적 소외에 저항하기보다 자기 모멸감을 택했던 이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누구보다 친밀하게 서로에게 일어난 사건들을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따뜻한 미소로 보듬어 안아주는 것은 꿈에 가까운 일일지 모른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 <라스트 프렌즈>는 굉장히 판타스틱한 드라마일 것이다. 스스로의 존재를 긍정하지 못하면서도 타인의 문제를 여유있는 마음으로 바라보고 지속적으로 따뜻하게 보듬어 줄 수 있다는 설정이 과연 현실에서 얼마나 가능할 것인가. 그럼에도 눈에서는 눈물이 주르륵.
영화, 다큐멘터리, 연극, 드라마 등에서 가장 대중적이면서, 보수적인 매체는 드라마일 것이다. 그런 드라마에서 가부장제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용인되었던 성폭력, 아내폭력, 이반 폭력 등을 다루고 있고, 이성애 중심의 가족 구성이 아닌 새로운 형태의 대안가족을 제시하고 있다. 그것도 목요일 오후 10시라는 프라임 타임대에. 제작진이 위 소재를 다룸에 있어서도 단순히 흥미위주, 대상화의 거리들로 만들려 하지 않은 노력들이 엿보인다. 이러한 드라마가 방영되는 것 자체만으로도 위안이었는데, 시청률 또한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일본에서는 시청률 15% 정도면 인기 드라마라고 하는데, 평균 시청률은 15% 이상이었으며, 마지막회 시청률은 22.8%가 나왔다). 그와 같은 성과는 단순히 톱스타들이 출연했기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드라마가 시작되기 전 젊은 세대 사이에서 심각한 사회문제를 다루고 싶다고 제작진은 얘기했고, 제작진의 이러한 시도가 시청자들과 소통을 이룬 부분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드라마가 많은 사랑을 받았다 해서 여러 변수에 대한 고려 없이 일본 사회 내 아내폭력, 동성애 등에 관한 문제들이 중요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결론내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라스트 프렌즈> 같은 드라마가 공중파에서 인기리에 방영됐고, 시청자들로 하여금 관련 글들을 쏟아내게 했다는 것은 분명 큰 의의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늘 특이한 소재를 사용하면서도 교과서 같은 대사들과 결론을 보이던 일본 드라마들에 사실 실망하고 있었던 차 <라스트 프렌즈> 같은 흥미로운 드라마를 만나 다시 일본 드라마에 당분간 버닝하게 될 것 같다.
아, 한국에서는 언제쯤 그런 드라마가 만들어질 수 있을까?
소연 ● 취미 : 하루 3시간 드라마 보기.
요즘은 ‘최강칠우’에 빠져있음.
아~ 영원히 끝나지 않았으면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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