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7*8월호 [MB와 나] 두통, 답답함, 메스꺼움 : MB 정책이 나에게 미치는 영향
황이진옥
쉽게 ‘쓸게’라고 받은 글에, 제목이 ‘MB 정책이 나에게 미치는 영향’이란다. 7월 5일 문화제에서 이명박이 화면에 나타나자 옆에 앉았던 여자가 한 마디 한다. ‘난 쟤 화면으로만 봐도 계란 던지고 싶어’. 그녀처럼, 이명박에 대해서, 그리고 그가 하는 정책에 대한 나의 생각은 사실, 분노보다 느리다. 그리고 중요하게 우리가 기억해야 할 점은 이명박이 대통령으로 취임한 지 이제 겨우 4개월을 넘겼다는 점이다. 4개월은 그 정책의 실효성을 발하기에는 사실 충분하다고 보기 어렵다. 비록 4개월이라고 믿기 어려운 긴 세월을 지나온 듯 하지만 말이다.
나는 학교를 벗어나 0교시 부활의 잔임함을 느끼기에는 늙었지만, 그런 자녀를 두기에는 젊고, 자가용을 소유해 유가급증을 체험하지는 못하고, 오른 생필품값에 툴툴거리는 쪼들리지는 않지만 넉넉하지 않게 사는 비혼의 여성이다. 더군다나 난 육식을 하지 않기에, 광우병에 걸린 소의 수입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은 육류를 줄이는 것이며, 육류 소비의 감소는 지구의 생태계를 지키고 식량 부족으로 허덕이고 있는 지구촌의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곡물의 형평한 분배를 가져다 줄 수 있는 하나의 대안이라고 생각하기에, 초에 불을 늦게 옮겼다.
그리고 사실 이명박 정부의 정책이란 하나 같이 변질되지 않았던가? 반대 여론에 부딪힌 대운하는 지방정부의 상수도 정비 사업으로 탈바꿈 되었고, 공기업 민영화는 공기업 선진화 정책으로 추진 중이고, ‘비핵, 개방, 3천’의 MB 독트린은 남한 관광객 피격 사건으로 낙동강 오리알 신세로 떠다니고 있으며, 일본과 미래 발전 구상은 독도의 포기로 드러나고 있으며, 747의 경제정책은 칠 수 있는 사기는 다쳤다고 해석될 수 있다. 그렇기에 이명박 정부의 정책이란 표현은 도의에 어긋난다고 본다. 대신, 이런 일련의 과정들을 거치면서 내가 현 정부의 실책들로부터 배운 바는 ‘돌다리도 두드리고 건너라’ 또는 ‘꺼진 불도 다시 보자’는 점이다.
매일 신문을 보기 전, 오늘의 소식은 어제의 말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라는 걸 예상하고 심호흡을 하고 봐야, 충격의 정도가 약해진다. ‘인터넷’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던 내게 다음의 '추천수 조작'과 '글의 삭제'의 현장목격은 나의 의심증을 더욱 도드라지게 하였다. 한국의 정치체제는 보이는 대로 보지 않으며 들리는 대로 듣지 않고, 보다 정확한 사실을 알기 위해서는 인터넷과 신문 보는 시간을 늘이는 수밖에 없다. ‘법 없이’사는 이를 대통령 자리에 앉힌 한국 국민들이 혐오스럽고, 기업의 CEO와 나라의 대표인 대통령 자리의 차이점을 모르거나 무시하는 그 인간의 무식함과 뻔뻔스러움이 절망스럽게 한다. 정부, 입법, 사법의 삼권합치의 현상과 경찰의 폭력의 합법성을 통한 과거로의 회귀는 내 이성을 마비시킨다.
이렇게 쇠약해진 신경을 달래주기 위해서, 정기적인 시청 방문은 필수적이나, 시간이 허락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참여하지 못하는 시민 불복종 행동의 누적은 내 삶의 존립 근거를 훼손시키며 큰 정신적 공황을 가져다 준다. 즉, MB 정책이 내게 끼치는 영향은 한 마디로 심리적인 강박 증세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는 두.렵.다. 이명박과 그 측근들이 5년을 버틸까봐 두렵다. 그리고 지금까지 해 온 일보다 그들이 이후에 벌일 일들이 너무나 무섭다. 그 중에서 특히 한미 FTA를 위시한 공기업의 민영화, 의료의 민영화는 최강의 공포물이다.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 체결은 한 번 사인하면 정권이 바뀌어도 뒤바꾸지 못하는 것일지며, 바꾸려 한다면 미국의 기업이 한국의 정부를 상대로 고소를 할 수도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이미 현재진행형이다. 미국과 FTA를 체결한 캐나다에서 우체서비스를 담당하고 있는 공기업은 시장경제의 자율성을 위배한다는 이유로 미국의 택배회사인 DHL로부터 소송을 받아 재판 중에 있다. 공공 서비스 영역에 경쟁 체제를 도입하여 공기업의 고질적인 경영의 비효율성을 막겠다는 주장은 민영화를 ‘선진적’으로 실시한 영국에서 이미 그의 허접성이 입증되었다. 민영화된 철도는 연착과 취소가 빈번하며, 기차 요금은 경쟁으로 하락하기는커녕 수십배로 뛰었으며, 그런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기업의 이윤을 보장해주기 위해서 매해 상당한 자금을 국고로부터 기업에게 제공한다. 영국에서 부분적으로 민영화된 우체서비스는, 가장 우체서비스가 필요한 외곽 지역의 마을에서부터 우체국이 사라진 것을 확인했다.
영국에서 온 나의 파트너는 공기업 민영화에 대한 우려를 이렇게 표현한다. “적어도 영국 정치인들은 시장지향적이고 기업중심적인 정책을 펴더라도, ‘사회’를 먼저 얘기하고 사람들의 정부에 대한 기대와 요구를 저버리지 못해. 나는 한국 정치인들의 노골적인 기업 편향이 너무 놀랍고, 두려워.” 즉, 영국의 민영화는 무상 의료와 탁아, 실업, 구직 등 전반적인 복지를 개개인에게 제공하고 있는 기본적인 사회적인 틀을 바꾸지 않은 채 진행되었다는 점에서 한국의 것과는 다른 것이다. 한국의 삶은 이미 팍팍하다. 민영화 이후의 삶은… 더 가혹할 것이다.
이 글을 마무리 하고 있는 지금 읽은 신문 기사는 16일 국무회의에서 통과된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와 지주회사 규제 완화가 재벌들의 ‘공기업 인수전’에 본격적으로 가세하기 위한 뜀틀이 될 것이라고 적고 있다. 그리고, 기사들의 다음 키워드들, YTN , PD수첩, 이건희, 조선일보, 한나라당, 광우병, …… 신문들을 뒤적일수록 가슴이 조여지고, 머리가 지끈거리고, 속이 메스꺼워지는 몸의 반응들은 나만 겪는 일은 아닐 테다. 내 파트너가 말한다. ‘너의 정부는 멈춰야해. 그래서 난 너의 촛불을 지지해.’ 곧 개헌절을 맞이할 수 있기만을, 현 정부의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내 희망이 헛되지 않기를… 바.란.다.
황이진옥 ● ‘Spero Sp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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