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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7*8월호 [기획] 아웃사이더로 촛불보기
다라
어리둥절하다. ‘국민’이라는 호명 속에서는 정서적 소수자로 살아오는 것이 이미 익숙했던 터라, 내가 서 있는 자리가 다수의 ‘국민’이 지지하는 쪽이라는 것이 이상하고 낯설다. 어이없는 일이지만, 정체성을 배반하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과 함께 서서 힘껏 소리 지르고, 저 멀리까지 퍼져나가는 함성소리를 들을 때면 가슴이 뜨거워지면서도, 벅찬 감정을 애써 숨기며 뭔가 ‘빈정댈’ ‘꺼리’를 찾아 ‘까칠한’ 자세를 유지하려는 나를 발견한다. 그것은 어떤 면에서는 ‘애써’였지만 또 한편으로는 ‘정말’이기도 하다. 찬사가 넘쳐나는 그 ‘대동단결’의 상황에서도, 내 마음속의 묘한 어긋남은 여전히 존재했으니까.
‘일반적인’기준에서 벗어나는 성격, 지향, 취향을 가졌다는 것 때문에 다른 이들과 소통하기가 껄끄럽거나 괜한 노여움이나 호통을 감당해야 했던 개인적인 경험들을 굳이 상기하지 않더라도, 나를 이루는 많은 정체성 중 일부인 ‘여성주의자’라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상종 못할 ‘꼴페미년’으로 대화는커녕 적대적인 존재이기까지 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누군가’와 나는 아마도 같은 광장에 서 있었을 게다.
어디 이 뿐일까. 수많은 사안에서 서로 대척점에 놓여있던 이들, 인터넷상에서 서로 욕설을 퍼붓고, ‘대한민국이 잘못 돼가는 건 다 저런 놈들 탓’이라고 분통을 터뜨리던 이들이 같은 촛불을 들고 거리에 함께 모였다.
물론 언론에서는 연일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다’는 코멘트로 촛불의 위대성을 드러내고자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서 언급하는 초중고생, 아줌마, 회사원, 아가씨 등의 호명에서는 왠지 정치성이 묻어나지 않는다. 마치 거기 모인 이들이 평소에도 오순도순 지내오던 양촌리 동네 주민들이라도 되는 양(모 드라마의 작품성을 폄하하는 건 아니다. 말하자면 그렇다는 얘기;;). 그러나 지금 내 떨어진 물병을 주워주는 이 친절한 남정네가 호락호락 캠페인 때 게시판에 욕설글을 남긴 그 이가 아닐런지 누가 아는가!(헉..-_-;) 굳이 이런 극단적인 상상을 해보지 않아도 어떤 이들은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여기 이렇게 같은 촛불을 들기 직전까지 우리가 서로에게 겨누던 비판의 날이 얼마나 날카로웠는지, 어느 대립선상에서의 우리의 갈등이 얼마나 격렬했는지, 어떤 ‘다름들’에 대하여 우리가 서로에게 얼마나 무례하고 또 무지하며 때로는 잔혹하였는지.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지금 이렇게 같은 촛불을 들었다고 해서 일순간 사라지는 것이 아니며 지금 이 순간도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서는 앞뒤양옆에서 자신과 ‘연대’하고 있는 사람들을, 모순되는 경험과 감정들로 어리둥절한 얼굴을 하고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말하고 나면 사실 당연한 말이지만, 조중동과 이명박 정부를 향해 그어진 뚜렷한 전선이, 우리 내부의 차이를 지워주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그것을 ‘기억하고 있느냐’라는 것은 중요한 물음이지 않을까 싶다.
그저 ‘아가씨, 아저씨, 학생’이 아니라 삶의 경험, 삶의 기반이 다른 사람들이 모였다는 것을, 그리하여 모인 사람들은 각각 경제적 위치가 다르고, 정치 성향이 다르고, 성적지향이 다르고, 가족 구성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정말로 기억하고 있나?’라는 질문 말이다. 그렇지 않다면, 자신을 중심-기준-으로 한 그 지긋지긋한 동일시를 통해, 광장에 모인 ‘다양한 다수’는 금새 통념적인 '단일한 다수'로 치환되고, 이명박을 게이로 ‘풍자’하는 동성애 혐오적인 선전물과 ‘연약한’여성을 ‘보호’하려는 가부장성이 당당히(다른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전혀 즐겁지 않을 거라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 채) 자신을 드러낸다. 적어도 그 순간,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촛불광장이 대안의 공간도, 연대의 공간도 아니며, 그의 정치성을 멋대로 삭제하고 전유해 버린 통념적 다수의 횡포가 활보하는 공간일 뿐이다.
촛불에 쏟아진 찬사를, 모인 이들이 모두 감당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함께 촛불을 들었으니 다른 차원에서의 서로의 모든 갈등도 끙끙대며 억지로라도 수용해야 한다는 말은 더더욱, 절대로 아니다. 그저, 많은 이들이 의미부여 하는 것처럼 촛불의 경험을 통해 우리가 더 성숙한 공동체, 시민사회로 나아가려면, 촛불의 감동이 현실의 차이를 지워버리는 도취로서가 아니라,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태도’, 나와 같은 시민(연대와 대화가 가능한)으로서의 타인에 대한 최소한의 ‘신뢰’로 자리 잡아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함께 촛불을 들었던 이 경험은, 다른 갈등 속에서 ‘서로 다른’ 우리에게 서로에 대한 최소한의 신뢰와 존중을 설득하는 경험이 될 수 있을까? 우리가 ‘하나’인 이 순간에 ‘서로 다름’을 기억하고, 서로 다르게 서 있는 순간에 오늘의 연대를 기억할 수 있다면 그것은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촛불의 경험이, 우리 사회안에 수없이 그어진 ‘상종할 수 없는 차이’라는 깊은 골을 조금이라도 메우며 서로간의 고정관념과 편견을 덜어내는 힘, 배타적이고 획일적인 우리 사회에 연대와 관용의 가치를 조금 더 퍼트리는 힘이 된다면 좋겠다.
다라 ● 여름이 싱그럽다는 걸, 이제 느끼고 있습니다.
늙어가는 걸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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