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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7*8월호 [기획] 촛불시위 순수성(?)의 아이콘이 된 여성들
임현지
머슴놈과 시중놈이
사이좋게 쳐돌았네
주제파악 단디하게
주리한번 틀어주랴
-세상을 바꾸는 여자들(경향신문 광고)-
2008년 5월부터 7월 현재까지 이명박 정부의 쇠고기 협상 문제로 인한 촛불집회가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촛불집회는 쇠고기 재협상문제뿐만 아니라 한반도 대운하건설 추진, 공기업 민영화 등의 정책들에 반대하면서 보다 다양한 계층의 참여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촛불집회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1987년 6월 항쟁과 비교 분석하고 있다. 80년대 당시 민주화 투쟁과 오늘의 집회문화가 다른 점은 여러 가지로 분석된다. 짧게 언급하자면, 대의정치가 참여정치로, 제도정치에서 생활정치로, 권위정치에서 인정정치로, 계급정치에서 위험정치로, 아날로그 정치에서 디지털 정치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일부분 동의하지 않는 것도 있고, 또 모든 영역에서 변화가 완료된 것도 아니지만, 어쨌든 진행 중이며, 시민들의 의식과 정부의 미성숙함 간의 부조화는 시민들의 계속적인 민주주의 학습을 통해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는다.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다고 생각했던 민주주의에 대해 시민들 스스로 다시 생각하고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던져 주었다는 점에서 이명박 정부의 국민을 무시한 무지하고 무능한 정책 일변도는 오히려 장기적으로 봤을 때, 역사적으로 고무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5월 2일부터 청계광장에서 시작된 촛불집회는 주로 10대 여학생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언론이나 일반국민들도 사실 당시까지만 해도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이들’의 촛불집회는 미성숙하고 공부하기 싫어서 광장에 모인 몇몇 아이들의 반항 정도로 취급되었다. 그러나 이후 촛불집회는 인터넷 상에서 광우병에 대한 정보를 공유한 일반국민들과 시민단체들의 합류로 이어졌고, 언론에서도 광우병에 대한 정보와 정부의 협상 능력 부재에 대한 보도를 연일 내보내기 시작했다. 이러한 10대들의 문제제기와 행동에 양심 있는 어른들은 공감했고, 또 부끄러워했다. 이렇게 10대 여학생들의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은 디지털 세대의 이점을 최대한 살려 현장에서 다 전하지 못한 자신들의 입장과 의견을 온라인 활동을 통해 밝혔고, 어느덧 이들은 ‘촛불소녀’라는 별명을 갖고 온·오프에서 유명세를 치르기도 했다.
“여자들이 왜 이리 용감해? 남자들이 창피하다니까.”
맞습니다. 이번 촛불집회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여성입니다. 5월 2일 처음 타오른 청계광장 촛불은 10대 여학생들이 70%를 차지할 정도로 그 시작부터가 범상치 않았습니다. 집회가 한 달 넘게 계속되면서 10대 여학생들의 숫자는 줄었지만 그 빈자리를 20대 여대생, 30대 직장인, 유모차 주부, 50대 어머니들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인터넷에 오른 거리편집국-
앞서 시위문화의 변화 모습을 언급했었지만 가장 가시적이고 직접적으로 느끼는 변화의 모습으로 사람들이 언급하고 있는 것은 ‘여성들’이 거리로 나왔다는 것이다. 이것을 두고 최근 바뀐 시위문화의 한 행태로 평가하는 사람들이 많다. 10대 여학생, 유모차 부대, 20-30대 직장인 여성들 등의 모습은 연일 언론에 촛불집회의 순수성과 진정성의 표상으로 비춰졌고, 실제 정부의 그 완고함을 흔들어 놓는 데도 이들의 역할이 주요했다. 언론에 비친 여성들의 모습은 아이의 유모차를 끄는 모습, 초등학생 아이들과 함께 나온 엄마들의 모습, 정장을 하고 하이힐을 신은 직장 여성들의 모습, 가족의 건강을 위해 나왔다는 40-50대 아줌마들의 모습이었다. 이들의 모습은 반정부정책 시위에 나올 거라 아무도 상상할 수 없었던 그야말로 동네 사람들이고 일반시민들이었다. 바로 이들 때문에 조·중·동 언론과 청와대에서 유치한 상상력을 동원한 결과 나온 ‘좌익 주도’의 시위가 아닌, 순수성을 담보한 시위라는 것을 인정받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위현장에서 터져 나오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헌법 제1조 내용을 가사로 만든 이 노래에는 진정한 민주주의를 향한 염원이 담겨 있다. 그러나 이렇듯 단순하지만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당연히 갖는 권리문제가 여성들에게는 특히 어렵기만 했고, 그래서 여성들의 민주주의 실현에 대한 욕구는 비단 이번 촛불집회에서 보인 모습이 다가 아니다. 과연 시위문화에서 여성들은 낯선 존재일까? 그동안의 시위현장에는 여성들이 없었나? 90년대 80년대 아니 더 거슬러 올라가 70년대 노동운동을 하던 여성들은 여성들이 아니었나? 갑자기 여성들이 거리에 나온 것을 보고 시위문화가 바뀌었다고 판단하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 아닐 수 없다. 이 사회의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애써 온 수많은 여성들은 2008년 촛불집회로 인해 정치에 무지하고 사회이슈에 무관심한 사람들로 전락해 버린 것 같다. 남성들의 시각에 의해 시위에 참여하는 여성들이 ‘재평가’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유모차 부대의 등장으로 인한 시위의 순수성이 강조되면 될수록 여성 다수가 주체가 되는 민주주의에 대한 욕구와 노력은 무화돼 버릴 수 있다. 아이를 데리고 나온 ‘엄마’, 가족의 건강을 걱정하는 ‘어머니’의 이미지만이 그대로 순수성을 담보할 수 있는 양 ‘여성’으로서의 권리 투쟁은 찾아보기 힘들다.
여기에서 얘기되어지는 ‘순수성’은 정치에 대해 잘 모르거나 혹은 정치적이지 않은 것을 내포하기도 한다. 그러나 여성들은 일상에서 늘 정치적이고, 자신들의 권리를 찾기 위해 적극적이다. 여기서 자신을 비롯한 가족의 건강권을 위해 거리로 나온 여성들이 ‘가족’을 위하고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나왔다고 하는 주장에만 귀를 기울이는 것은, 지금도 자신의 권리를 위해 싸우며, ‘정치’를 실천하고 있는 여성들을 남성들의 영역을 넘보는 이기적이고 위협적인 ‘여성’으로 대상화하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렇다면 여성들에게 민주주의는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일반 언론의 시각도, 시위에 동참하고 있는 사람들의 판단이나 평가도 여성들의 진정한 민주주의 정신을 인식하고 있는 곳은 없었다. 이번 촛불집회에 가정주부인 여성들이 많이 참여한 것을 두고, 마치 여성들만이 가족의 건강권을 책임지고 있는 주체인 것처럼 이미지화하는 시각들이 있었다. 이것은 가정이라는 영역에 여성을 한정시키고 귀속시키려는 가부장적 인식구조의 연장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누구나 그렇듯 사회적 지위와 역할은 특정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에 따라 각 영역에서의 권리문제는 언제나 정치의 일상화를 낳을 수밖에 없다. 여성들에게 정치와 민주주의는 일상이고 늘 현장이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지역 공동체에서 여성들은 쓰레기 분리를 해야 하고, 아이들 양육을 맡아야 하고, 노인을 돌봐야 하고, 안전한 먹거리 확보를 위해 이것저것을 비교, 검토해야 하고, 직장에서 부당한 대우에 맞서 싸워야 하고, 성희롱을 고소·고발해야 하고, 비정규직으로 밀려나지 않기 위해 싸워야 하고, 비정규직에 대한 부당함에 대해 사회에 알려야 하는 여성들은 일상에서 차별을 없애고 다양한 목소리가 공존하는 성숙한 민주주의 사회 실현을 위해 늘 바로 ‘여기’에서 싸워오고 있다. 즉 여성들의 이번 촛불집회 주도와 참여는 그 동안 쌓아 온 평화적인 집회와 시위문화에 대한 노하우가 발현된 것이며, 또 하나의 차별에 맞서고 정당한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집회의 연속일 뿐인 것이다.
따라서 이번 여성들의 촛불집회 주체화를 바라보는 시각과 평가는 일상의 여성들은 비정치적이라는 아직 미성숙한 사회일반의 인식과 평가를 반증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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