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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7*8월호 [기획] 촛불집회 들여다보기
시기가 시기였던 만큼, 기획에서 촛불을 그냥 넘어가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다른 매체들을 통해 쏟아지는 빵빵한 분석과 기획들을 굳이 반복할 필요도, 역량도 없었던 터라, 그냥 평소대로 ‘필자를 믿기로’했다…;; 결국 ‘촛불집회’를 소재로 각기 다른 이야기들이 펼쳐졌지만, 어찌보면 ‘조금 다른 시선’이라는 것으로 엮이는 듯도 하다. 그런 ‘다른 시선’들이 펼쳐질 수 있는 것이, 민우회라서 가능한 게 아니겠느냐는 당치않은(!) 자부심을 남몰래(소심히) 품어보며, 조금 다른 시선속의 촛불집회로 초대해 본다.
[기획]
촛불 집회 단상, ‘빨간 스타킹’의 유목민들과 함께 했던 그날의 기억
권수현
“저...실례지만 어떤 조직에서 나오셨나요?”
똑같이 빨간색 스타킹을 맞춰 신은 동료들과 함께 촛불 집회에 나갔던 어느 날, 거리 행진 도중 호기심에 가득한 눈빛으로 누군가 이런 질문을 했더랬다. “아무 조직도 아닌데요. 그냥 재미있을 것 같아 신고 나왔어요.”라고 대답했건만, 지나가던 사람들은 신기한 듯 빨간 스타킹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동료들 역시 몇몇 기자들과 집회 참여자들로부터 유사한 질문을 받았다고 했다. 이런 질문을 거듭 받다보면 “아니, 뭔 조직이라도 결성해야하는 게 아닌가?”라는 모종의 압박감을 느끼게 되지만, 역시 우리는 그저 잠깐 동안의 ‘빨간 스타킹들’일 뿐이었다.
1960년대부터 활동한 급진적 페미니스트그룹 ‘레드스타킹’의 메타포를 활용해서 함께 빨간 스타킹을 신고 거리행진을 해보면 어떨까. ‘빨간 스타킹 퍼포먼스’는 촛불 집회에 참가한 누군가가 우연히 어떤 가게에 전시되어 있는 형형색색의 스타킹을 보고 번뜩 떠오른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전해 들은 전설(?)에 의하면 아무튼 대충 그랬다. 아님 말고. 아무렴 어떻겠는가? 정치학의 다양성을 실천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출발했건, 그저 즐겁고 발랄한 퍼포먼스 정치의 실험정신에서 나온 것이건, 누군가 빨간 스타킹을 보고 강렬한 인상을 받았거나, 그들에게 갖가지 창의적인 상상력을 불러일으켰다면, 그래서 새로운 정치적 실천의 방법들을 생각해 내는데 자극을 주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다른 친구들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런 생각을 했더랬다.
촛불 집회를 조망하는 글을 써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어쩐 일인지 별 뜻 없이 지나쳤던 ‘빨간 스타킹의 추억’이 떠올랐다. 무겁고 힘 빠지게 하는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까. 애써 “촛불은 승리했다”고 선언한들, 여전히 요지부동인 정부의 태도, 그리고 그간 공권력에 의해 자행된 폭력과 야비한 대응방식 등으로 인해 사람들의 몸과 마음에 쌓인 무력감, 피로, 분노가 누적되어 있는 지금, 상처받고 지쳐있는 사람들의 가슴에 돌 하나 더 얹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던 것 같다. 어쨌거나 즐거웠던 기억, 새로운 상상력과 정치학의 가능성을 발견했던 기억, 이 자리에서 그런 것들을 공유하고 싶다.
“당신은 어느 조직에 가입되어 있는가?”
시인 송경동은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대답한다. “없는 이들의 무너진 담벼락에 기대 있고, 길 잃은 아이, 걷어 채인 좌판, 목 잘린 구두, 아직 태어나지 못해 아메바처럼 기고 있는, 비천한 모든 이들의 말 속에 소속되어 있다”고. “수많은 파문을 자신 안에 새기고도 말없는 저 강물에게 지도받고 있다”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노래를 부를 때마다 땅 속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어떤 에너지가 온 몸을 가득 채우는 충만한 느낌과 뭔가 개운치 않은 느낌이 공존했다. 촛불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 대부분은 우리처럼 어떤 조직이나 단체에 소속되어 있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온 이유는 각자의 신념과 ‘저항 정신’에 따른 것이었다. 촛불 집회는 특정 조직에 대한 ‘소속감’이나 ‘정체성’이 아니라, 문제의식을 통한 ‘선택’에 의해 형성되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호명을 통해 촛불 집회의 정치적 주체들을 결집하고자 하는 힘이 지속적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내가 받았던 애매하게 불편한 느낌은 어디에서 연유한 것일까? 외국인 신분이라서 집회에 나갔다가 추방될까봐 두려워 감히 나설 수 없다던 한 러시아 교포 학생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일까? 아니 오히려 단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라서 이 자리에 나올 수 없었던 사람들을 볼 수 없고,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 생명의 존엄성을 주장하는 동안, 삶의 현장에서 주변부로 밀려나 척박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 하루의 일상을 견뎌내는 것조차 버거워 그 자리에 나올 수 없었던 또 다른 ‘국민들’의 얼굴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자기 먹거리에 대한 위협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거리에 나서게 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그리고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나와 우리의 생명을 지켜내자는 ‘검역 주권’의 구호를 외치면서, 나는 내 청춘을 ‘인권 운동’에 바쳤던 그 시절에 겪었던 한계와 딜레마가 반복되는 경험을 했다. 과연 ‘권리의식’을 통한 정치가 타자의 아픔과 고난에 대한 상상력과 공감, 그것에 기반한 정치적 연대를 가능케 할 것인가라는 의심, 나의 존엄성을 주장하기 위해 나와 타자를 대립적 존재로 설정할 수밖에 없는 딜레마와 그러한 정치적 상상력의 척박함….
‘권리개념’, ‘인권운동’은 다른 누군가의 욕망을 위해 ‘인간’의 경계 밖으로 밀려나 ‘비인간적인’ 비천하고 부당한 삶을 강요당했던 존재들이 기댈 수 있는 마지막 ‘담벼락’과도 같은 것이었다. ‘권리개념’, 그것은 자신도 인격과 감정이 있는 존재, 소중한 생명을 가진 존재임을 깨닫고 표현하게 해 주었다. 아무리 목소리 높여 외쳐도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는 절박한 상황에서 감히 “나의 생명은 당신의 생명과 마찬가지로 소중하다”라는 외침을 담아낼 그릇이었다. ‘권리개념’과 그것이 만들어내는 정치는 내 울타리의 경계를 위반하고 침해하는 행위에 대한 감시와 처벌 시스템을 동원하여, 내 것의 소중함을 타자에게 주장할 수 있게 해준다. 한편 그러한 정치는 자아와 타자라는 대립각을 형성하면서, 내 것과 나의 영토를 중심으로 사고하고 행동하고 상상하는 1인칭 자아의 상상력에 몰입된 주체들을 만들어낸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둘러싼 정치적 쟁점이 ‘검역 주권’, ‘대한민국 국민의 권리’의 문제로만 환원될 때, 이 문제는 불가피하게 한미 양국 간의 대립 구도 속에서만 상상되고 그 해결점을 찾게 되는 것이다.
무자비한 폭력과 함께 정부가 촛불 집회를 원천적으로 불법화하며 봉쇄하기 시작했던 시점에서, 천주교 정의 구현 사제단이 주관한 촛불 미사에 참석했다. 그날 나는 촛불 집회가 장기화되면서 느꼈던 불편함과 공권력의 천박하고 야비하기 그지없는 작태를 지켜보면서 쌓였던 무력감과 상처들이 해소되는 경험을 했다. 수많은 촛불과 함께 말없이 걸었던 그 침묵의 길 위에서, “내가 왜 여기까지 왔는가”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던 그 길 위에서, 내 안에 쌓여있던 미움과 증오, 상처를 발견했다. 신부님은 촛불은 국민의 염원과 눈물이라고 했다. 그것은 나와 우리의 생명을 지켜 내고자 했던 간절한 염원으로 모였던 공간에서 전경들과 대적해야 했던 상황을 겪으면서, 방패와 물대포, 소화기, 욕설이 난무했던 전쟁터를 지켜보면서 시나브로 누적된 상처였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러한 발견은 또 다른 힘이 되었다. 침묵 속에 오로지 촛불만을 손에 든 채 그 많은 사람들과 조용히 함께 걸어가면서 그들 역시 나처럼 상처를 받았다는 점을 깨달았다. 그들 역시 여리고 약한 존재들임을, “나는 저 들에 가입되어 있다고, 저 바다물결에 밀리고 있으며, 저 꽃잎 앞에서 날마다 흔들리고, 이 푸르른 나무에 물들어 있으며, 저 바람에 선동당하고 있다”고 말한 예의 그 시인의 말처럼, 그렇게 흔들리고 밀리면서 서로에게 기댈 수밖에 없는 존재들임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그 어떤 구호를 외칠 때보다도 이때 가장 큰 힘과 연대 의식을 느꼈다. 세상은 상처받고 아파하는 연약한 온갖 생명들의 상호의존적 연결망임을 깨달았던 그날, 그리고 ‘빨간 스타킹’을 신고서 어디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은, 그래서 역설적으로 모든 곳에 소속될 수 있는 정치적 유목민들과 함께 했던 그날, 그 기억 속에서 나는 희망과 위로, 자아와 타자의 경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정치의식이 만들어내는 힘을 발견한다. 그 새로운 정치적 가능성이 주는 자유로움을 맛보았던 그 기억은 두고 두고 나에게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에너지를 제공해 줄 것이다.
권수현(맨발) ● 10년마다 한번씩 학교에 들어가는 이상한 취미의 소유자.
방바닥에 X레이 찍는 걸 좋아하는 귀차니스트.
똥배 뽈록 ‘ET’에서 윗배까지 나온 ‘텔레토비’로 진화하고 있는 중.
그래도 빈둥거릴 수만 있다면 언제나 행복 모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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