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der board list icon](/assets/common/header-board-list-icon-871ea5b4968af0aff7ac9000984dc947.png)
2008 7*8월호 [민우in] 차별을 판단하는 그 논리에 균열을! - 시행 1년, 비정규직 차별시정제도
신기루
‘일지매’에는 아버지가 같은 두 형제가 등장하는데, 시후는 양반가의 서얼로 자라고 용이는 서민으로 자란다. 어차피 이들은 양반의 타자인 바 차별과 서러움 속에서 사는데 양반은 양반이되 관직진출에도 한계가 있어 의금부 나장밖에 될 수 없는 시후가 더 안됐다. 용이는 사회변화를 주도하는 급진적 도적이 되어 스스로 해방되나, 시후는 반쯤 받은 양반 신분이 오히려 빌미다. 21세기, 우리는? 사회적 지위와 그에 따라 전혀 공정치 못하게 분배된 경제, 문화, 사회 자본 속에서 조선 중기와 매우 흡사한 차별을 만난다.
교사들과 똑같이 8시 30분에서 4시 30분까지, 4년째 근무하고 있다. 작년에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됐다. 교사, 회계, 과학보조 등 교내 직원들의 경조사 계인 상조회가 있다. 여기 가입하려고 했더니 처음에는 된다고 하더니 “정규직이 아니어서 안 된다”고 한다. _ 2008년 3월 상담사례
이렇게 ‘비정규직’은 일상화된 차별의 근거이자 신분이 되고 있다. 정규직 전환제도에 포함된다 해도 이 언어 뒤에 붙은 차별의 그림자는 끈질기다.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차별의 금지와 사용기간의 제한을 골자로 하는 비정규직 관련법이 시행된 지 1년을 맞았다. 올 7월 1일을 기해, 100인 이상 사업장에도 비정규직차별시정제도가 확대 적용되어 51만여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추가 시정신청의 대상이 된다. 제도는 제 몫을 하고 있을까? 사람들의 인식은, 요즘 유행하는 ‘집단지성’은 어디까지 왔을까? 비자발적으로 비정규직이 되는 대부분의 우리들은 무엇을 차별로 정의하고 판단하고 어떤 차별을 구제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이 담론에 우리의 목소리를 담을 수 있을까?
법 시행 이후부터 올 6월까지 고용평등상담실을 찾은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는 81명이다. 그중 고용형태를 이유로 한 차별 상담은 19건이었다. 다시 그중 차별시정신청에 그나마 다가갈 수 있었던 사례는 우리투자증권 사례뿐이다. 이들은 정규직과 섞여서 출납 업무 등 동일한 업무를 하였으나 임금 일부 항목을 못 받았고, 취업규칙 상 자녀학자금 외 경조비 등 지급에 차별이 있었다. 27명의 비정규직 여성들은 이러한 차별을 시정해 줄 것을 요청했으나 차별이다 아니다 판단을 받기도 전에 차별시정위원회로부터 수차례 취하를 권유 받았고 결국 시정신청을 포기하고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됐다. 비단 이 사례뿐 아니라 814건의 차별시정신청이 있었지만 철도공사, 고령농축산물 공판장사건 2건만이 최종적으로 차별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법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
제8조 (차별적 처우의 금지)
① 사용자는 기간제근로자임을 이유로 당해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동종 또는 유사한 업무에 종사하는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에 비하여 차별적 처우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② 사용자는 단시간근로자임을 이유로 당해 사업 또는 사업장의 동종 또는 유사한 업무에 종사하는 통상근로자에 비하여 차별적 처우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6월 26일, 비정규직 차별시정제도 워크숍은 이 제도의 현재 서 있는 지점을 보여주었다.
차별시정신청제도는 본안 즉, 차별이 있었는지, 그러한 차별에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지를 판단하기 이전에 심사절차를 분리하고 있다. 신청인이 ‘기간제’ 및 ‘단시간’ 노동자가 맞는지, 피신청인을 제대로 지정했는지를 심사한다. 그런데 여기서 수차례 계약을 갱신하여 형식적으로 기간제 노동자일 경우는 시정신청을 할 수 없게 된다. 형식상 기간을 두고 계약을 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불이익은 구제를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 외에 지급까지 차별시정제도를 통해 접수된 사례에서 드러난 문제점들은 수두룩하다.
- 심사단계가 너무 많아 실질적인 통과가 어렵다.
- 비교대상 정규직이 없으면 차별시정신청이 어렵고, 비교 대상이 되는 정규직의 근로조건을 속속들이
알고 있어야 한다.
- 3개월 이내 차별만을 구제할 수 있어 1년간 10만원씩 적게 받았더라도 30만원밖에 보상 받지 못한다.
- 차별시정을 받더라도 사용자가 그 노동자를 계약해지 하고 있어 고용안정과 차별시정을 교환해야 하는 실정이다.
- 차별금지 위반에 대한 범칙금지 조항이 없다.
- 노동위원회의 조사권한이 있지만 내실이 없고 시간 끌기용으로 악용되고 있다.
무엇보다 차별을 판단함에 있어, 위원회는 비교대상자를 그 대상자의 현존, 같은 사용자에게 고용된 사람으로 협소하게 판단하고 있다. 동일한 가치의 노동에 대한 판단은 더욱 슬프다. 얼마나 유사한가를 기준으로 현실적인 업무의 내용, 환경, 기술, 책임을 고려하기보다는 주된 업무가 무엇인지 얼마나 다른지를 기준으로 판단하고 있다. 예를 들어 전임강사는 강의업무보다는 연구업무가 주된 업무라고 보았다. “동종 유사 업무”의 범위를 지나치게 엄격하게 해석해서 불리한 결과발생이나 합리성 여부 자체를 따질 것 없이 차별판단을 손쉽게 회피해가고 있는 것이다. 애당초 차별시정위원회에 거는 가장 큰 기대는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에 대한 가치 정립이 아니었을까.
차별보다는 차이에 가치를 두어 합리적 차이가 될 수 있는 근거들이 오히려 개발된 실정이다. 업무내용, 가치, 권한, 책임, 임금체계, 채용목적, 장기근속성, 근로조건 관련법령의 차이, 단협의 차이, 비교대상자 아닌 다른 사람과의 차별 발생 등이 그 근거다. 이렇게 되면 이 제도가 차별을 구제하는 것이 아니라 차별을 구조화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낫다.
2009년은 5인 이상 모든 사업장에 차별시정제도가 시행되고 최초로 2년 이상 계속 근로한 노동자에 대한 정규직 전환의무 규정이 적용되는 시점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차별시정신청을 하고 2년이 다 되어 계약이 만료되기도 할 것이고 누군가는 정규직 전환의무를 피하려고 해고될 지도 모른다.
‘사업체 근로실태조사’(노동부, 2007)에서 성과 연령, 학력, 경력, 근속연수 등이 같은 경우에 동일 사업장내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시간당 임금총액격차는 15.2%로, 정규직이 100만 원이면 비정규직이 85만 원을 받는 셈이다. 여성은 남성 평균임금의 60%를 받으니 이 격차는 더 커진다. 여성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남성 정규직 노동자와는 비교 자체가 되지 않아, 통계도 없다. 직군으로, 성별로 분리되어 있는 벽이 워낙 탄탄해서이다.
지난 1년 동안 정규직은 51만 명 증가하고 비정규직은 13만 명 증가했다.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되어서 정규직이 늘어난 것일까? 증가분의 대다수는 차별은 유지하면서 고용기간을 보장받는 무기계약직, 분리직군제 속의 정규직일 것이다. 나머지는 시간제, 임시직, 파견직으로 이동했을 것이다. 우리는 이 제도에 개입하고 차별에 대한 적극적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감시하고 입장을 반영할 것이다. 이와는 별개로, 일상적인 비정규직 차별에 대해서 그것이 신분화, 고착화, 재생산되는 구조를 끊어내는 것이 필요하다. 오는 8, 9월 비정규직 집중상담에서는 비정규직 차별에 대한 우리의 집단적 바람이 쏟아져 나왔으면 좋겠다. 2009년 그 너머까지 긴 호흡의 들숨으로 공명해보자.
신기루 ● 7.0.6.5.0.5.0. Open your mouth, and talk to me.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