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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9*10월호 [국제통신원] 기러기 가족, 한국은 누가 지키나?
김종미
이제 영국도 새 학기가 시작되는 가을이라 유독 9월에는 새롭게 한국에서 오는 사람들이 많은 계절이다. 연초부터 전국을 몰아친 몰입식 교육파문 때문인지, 기하급수적으로 들어가는 사교육비 때문인지 아니면 대한민국 교육제도 그리고 입시전쟁에 대한 환멸 인지는 모르지만, 최근 환율 파동과 세계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그 좋은 직업인 교사, 간호원, 기자, 펀드 매니저 등등 화려한 수식을 뒤로 한 채 속속들이 엄마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히드로 공항에 도착하고 있다. 재력있는 아빠가 기본적인 필수조건으로 알려진 영국 기러기 가족임에도 불구하고 이맘때가 되면 새롭게 도착한 기러기 가족들을 보며 그들이 겪게 될 앞으로의 힘든 영국 생활에 대해서 안쓰러운 마음을 금할길 없다.
한국의 신문이나 매체를 통해서 종종 비참한 죽음이나 비극적으로 그려지는 기러기 아빠들의 힘든 뒷바라지에도 불구하고 기러기아빠는 경제력에 따라 세가지 부류가 있다고 이곳 영국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말하곤 한다. 독수리처럼 언제나 비상하여 현지에 있는 가족들을 방문할 수 있는 독수리아빠, 오직 1년에 한 두 차례 가족 상봉을 기대하며, 오피스텔에서 외롭게 밤을 지새는 기러기아빠, 형편상 가족들을 만나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는 펭귄아빠가 그것이다. 이러한 시대를 초월한 희생적인 아버지들의 자녀 교육에 대한 뒷바라지에도 불구하고 기러기 엄마와 아이들의 영국살이는 그리 녹록해 보이지도 않고 아이들의 장미빛 미래를 보장해 주지도 않는 것 같다.
놀랍게도 영국에 도착하는 엄마들이 물어보는 첫번째 질문은 영국 학교 선생님들에게 어떤 선물을 해야하는 지이다. 혹 어떤 분들은 영국에도 선생님들에게 “촌지”를 드려야하는지 물어오기도 한다. 영국은 감사의 카드로 그동안의 고마운 마음을 전하면 된다고 설득해도 특히 강남에서 온 엄마들을 설득하기란 매우 어렵다. 엄마들의 세상에서 불변의 진리는 “먹으면 토해내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영국 선생님들도 잘 알지 못하는 열성 엄마들의 명품 선물공세로 이미 한국 아이들이 많이 다니는 영국 학교에서는 몇몇 영국 선생님들도 일정 수준 이상의 선물을 한국 엄마들로부터만 은근히 기대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마도 이런 추세라면 앞으로 올 가족들은 영국 교육제도로부터 새롭게 배우고 수혜를 받는 것 보다는 영국에서도 불합리한 국내 교육상황을 반복할 가능성이 크다.
영국이 세계에 자신있게 내놓는 몇가지 교육제도 중에 하나가 바로 탄탄한 초등교육에 있다. 아이들은 아무런 부담을 받지 않고 즐겁게 공부하고 천천히 반복을 통해 아무도 누락됨이 없이 교육을 받게 된다. 가끔 런던의 대영박물관이나 네셔널 갤러리 그리고 지역의 조그만 미술관에 가보면 병아리처럼 한 때의 아이들이 선생님의 설명을 직접듣고 그림앞에 앉아 자신들의 관점에서 그림을 그려보고 상상력을 동원해서 이상할 정도로 독특한 자신만의 그림을 완성하는 것을 보면 느리지만 즐겁게 배우고 상상력을 키우는 교육과정이 정말 부럽기만 할 때가 많다. 물론 한국에서 엄마의 손에 끌려온 아이들은 이러한 교육을 기대하고 유창하게 영어를 할 수 있다는 꿈을 꾸며 영국에 온다. 스트레스 없는 교육을 통해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고 캠브리지나 옥스퍼드, 런던정경대학이나 임페리얼 컬리지처럼 세계적인 대학을 졸업하게 될 아이들의 모습을 상상하면 영국에 와서 고생하는 엄마도 한국에서 홀로 쓸쓸하게 컴퓨터 앞에서 멀리있는 아이들과 화상대화를 하는 아버지들도 힘이 날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곳에 온 아이들에게 주어지는 학업의 중압감은 한국에서 공부하는 여느 아이들만큼이나 무겁다는 사실이다. 기러기 가족의 가장 지고지순한 목표는 아이들에게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고 궁극적으로 영국이나 미국에서 공부한 국제적인 인간을 만들어내는 데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를 위해서 독수리 가정은 아이들을 사립학교에 보내고(영국 사립학교 등록금은 대학생 등록금보다 훨씬 비싸다), 기러기 가정은 공립학교에 보내지만 한국에서 아이들이 받아야하는 짐을 고스란히 지어야 한다. 한국에서처럼 똑같이 과외를 해야하고, 학원에 다녀야한다. 영국에 살고 있는 한국사람들 중 2/3가 모여 살고 있는 런던남서부 외곽의 뉴몰든에서 가장 성업하는 사업이 바로 학원사업이라는 점은 참으로 흥미로운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아이들은 적응에 탁월하긴 하지만 그래도 어린 나이에 겪어내야하는 언어 문제, 정체감에 대한 문제, 문화차이로부터 오는 모든 갈등은 온전히 아이들 자신의 몫이다. 엄마의 영국 사회에 대한 파악과 적응이 대체로 아이보다 느릴때도 많고 한국적인 사고방식으로 영국시민으로 교육받기 시작하는 아이들과 마찰이 생기는 경우는 허다한 일이다. 그리고 그렇게 바라던 명문대 입학을 성공적으로 성취했다고 하더라도 문제는 쉽게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단순히 영국에서 명문대를 나왔다고 영국의 주류사회에 들어가는 문이 활짝 열려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가끔 대학에서 가르쳐 졸업하고 가끔 만나는 아이들 중에는 이러한 인종차별과 보이지 않는 주류사회의 높은 벽에 대해 어려움을 토로하곤 한다. 이들은 탁월한 국제인도 모범적인 한국인도 자랑스러운 영국인도 아닌 회색인으로 혼란스러워 할 뿐이다.
떠나고 싶어도 기러기는 엄두도 낼 수 없는 대부분 사람들의 열패감과 소외감은 뒤로 하더라도 무엇이 모두를 기러기가족으로 내 몰게 하는지? 이러한 희생의 대가로 획득할 수 있는 우리 아이들의 찬란한 미래는 보장 받을 수 있는 것인지? 이러한 과대한 경제적, 감정적, 사회적인 지출이 가깝게는 가정의 행복에, 멀게는 국가 장래와 세계발전에 기여 할 수 있는 것인지? 이제 차분히 앉아서 우리들의 손익 계산서를 따져 볼 일이다.
김종미
● 런던정경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마치고 2003년부터 코벤츄리 대학의 신문방송학과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특히 글로벌 시대의 “문화와 여성”에 대해서 연구하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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