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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9*10월호 [기획] 수다좌담
수다좌담 - 나홀로 집에 또는 나홀로 집 밖으로
중년여성들의 ‘혼자 살아보기’ 욕망
참석자 : 김인숙, 김정란, 김종현, 김현아, 임현희, 홍미용
진행·정리 : 이오
“서부로 가길 얼마나 잘했는지!”
-조지아 오키프, 1929년 11월5일, <레베카 스트랜드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여름의 기운이 여전한 9월 초순의 어느 날 오후, 중년여성들이 동북여성민우회 회의실에 모여 여자들의 집 떠나기와 혼자 살아보기 욕망, 결혼안식년 등을 주제로 한바탕 수다마당을 펼쳤다. 공영방송의 한 주말드라마(<엄마가 뿔났다>)가 때마침 평생을 전업주부로 살아온 ‘엄마’의 장기휴가라는 화두를 던짐으로써 세간에 심상찮은 논쟁이 벌어지던 즈음이다. 여성의 보살핌, 모성의 일방적 희생을 당연시하는 문화 속에서 여성들 스스로가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찾을 길은 없는지 지혜를 모아보았다. 지면의 제한으로 귀한 이야기들을 모두 게재하지 못해 안타까울 따름이다.
집을 떠나 오롯이 내게로
이오 :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에서 1년 휴가를 얻은 한자(김혜자)는 엄마/아내/며느리/시어머니로서 겪는 압박감과 집안일에서 조금이라도 해방되고 싶어서 방을 얻어 집을 나가잖아요. 인터넷에 들어가 봤더니 찬반양론이 막 일어나더군요. 드라마 끝날 때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도 엄마의 가출이 상당히 오랫동안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어요. 드라마보시고 다들 어떠셨어요?
김현아(이하 현아) : 제가 본 30회까지는 엄마가 나가기 전의 과정들이 쫙 나오는데 저렇게 살면 충분히 이해가 되겠다 싶어요. 사실 저는 혼자 따로 나가고 싶은 욕구는 없어요. 왜냐하면 남편이랑 주말부부라서. (좌중 웃음) 제가 원하는 자유를 주중에 누리고, 주말에 남편을 잠깐 만나서 필요한 만큼만 함께 지내서 그런 욕구가 하나도 없는데, 드라마 속 한자라면… 아마도 “아, 지금 아니면, 더 늦으면 안 되겠다”는 그런 느낌이 있었을 거라는 이해는 가더라고요.
인숙 : 제가 그래요. 딱. (좌중 웃음)
김정란(이하 정란) : 저는 찬성도 반대도 아닌 입장인데요. 대학생인 딸이 자기는 김혜자 너무 이해가 안 간다는 거예요. 엄만데 너무 무책임하게 나갔다고. 저는 김혜자가 나간 것 자체는 그럴 수 있다고 공감하는데, 자기만 욕구가 있었지 그전에 식구들도 준비를 시킨다거나 자기 생각을 표출한 적이 없었잖아요. 어느 날 갑자기 식구들이 날벼락 맞은 거잖아요.
이오 : 참다가 터진 ‘전형적인’ 한국 아줌마를 그린 거 같아요.
정란 : 결혼한 지 7년차 된 저희 직원 하는 말이 자기도 이해는 가지만 1년이라는 세월이 너무 긴 것 같다고, 며느리에 대해서 김혜자가 너무 무책임했다, 며느리 들어오자마자 모든 책임을 미뤘다면서 자기가 그 며느리였다면 굉장히 분노할 것 같다고요.
인숙 : 요즘은 노인들이 모이면 며느리 눈치를 보고 산다고 얘기한다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한자가 아들 부부를 데리고 살고 싶지 않았는데 함께 산 거, 그래서 더 주부로서의 역할이 가중된 이런 측면도 있을 수 있겠구요. 그게 힘들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냥 저는 며느리 입장에서 반대를 해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시어머니가 선구자적으로 새로운 뭔가를 하는 거잖아요. 어쨌든 스타트를 끊었으면 이 수혜를 좀 더 쉽게 누릴 사람은 며느리거든요.
정란 : 거기서도 그런 대사가 나와요. 어머니도 그랬으니까 나도 앞으로 그렇게 살 거다.
인숙 : 그렇지.
정란 : 하지만 전반적으로 한자에게 백퍼센트 표를 던지진 못하겠어요.
홍미용(이하 미용) : 저는 결혼 14년 됐는데 그걸 보면서 백퍼센트 이해를 했거든요. 나이 먹어서라도 한번 해봐야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드라마에 보면, 짐을 싸가지고 남편이 데려다 주는데 한자가 고개를 숙이자 남편이 “울어?” 그러니까 “아니 나 너무 좋아서 웃어” 그러면서 막 웃어요. 너무 좋아서 킥킥 웃다가 창밖으로 손을 내밀면 햇볕이 들어오고, 자유로운 공기를 온몸으로 만끽하는 장면이 있는데, 김수현이 어떻게 보면 욕도 많이 먹는 작가인데 어떤 부분에서는 완벽하게 이해를 하고 있구나 싶더라구요. 한자가 “귀찮아 죽겠어요” 이런 말을 하잖아요. 자연인 아무개로서 그런 경험을 가져본다는 것은 살아가면서 1년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필요한 것 같아요.
인숙 : 선생님은 어떠세요? 아이가 어리죠?
임현희(이하 현희) : 큰애가 고3, 작은애가 초등학생이예요. 친정 엄마가 연립 1층에 살고 오빠가 3층에 살아요. 또 새언니가 일을 해서 엄마가 살림을 많이 하세요, 교회활동을 하시면서. 그러니까 엄마는 조용히 살고 싶다, 아무도 없는 곳에 살고 싶다 그러세요. 그거 보면 며느리와의 관계보다도 자기의 상황에 따라서 마음이 달라지는 것 같아요.
인숙 : 선생님 자체는 혼자 있고픈 욕구가 있지는 않으세요?
현희 : 저는 워낙 남편이 바빠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요(웃음). 지금은 “같이 뭉쳐 살아야해” 그런 마음이 있어서 아직은 떠나고 싶지 않은데, 남편이 안식년 때 지리산 가서 한 6개월 있다가 오고 싶다고 그런 이야기를 하면 너무 섭섭한 거예요. 자기 혼자 떠나고 싶다고 그러면 나도 가겠다는 그 말은 아예 나오지도 않고, 가족에게 무심하다 싶어 무조건 섭섭한 마음이 먼저 들더라고요. 아이들이 좀 크니까 나도 나이가 좀더 들면 그렇게 할 수도 있겠다 생각들고 이해는 되는데, 아직은 제가 가정을 못 떠나는 편이예요.
이오 : 나이가 한 쉰살 쯤 되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밥이 남이 해주는 밥이라고 하잖아요. (좌중 웃음)
현아 : 쉰살 안 돼도 그래요. (좌중 폭소)
인숙 : 저는 시댁도 단촐하고 속편하게 사는 편이거든요. 근데 그 드라마 보면서, 아 바로 저거야 그러면서 너무 기쁜 거예요. 제가 자취생활도 한번 못해보고 어린 나이에 남편 만나 거점만 옮긴 거잖아요. 나 혼자 만의 독립된 생활을 해본 경험이 없어요. 그래서 항상 나만의 공간, 내 방을 가지고 싶은 욕구들이 있어요. 평균적으로 내가 우리 집에서 하는 꼬라지는 그 누구보다도 자유롭거든요. 그런데도 정말 일어나서 잠자는 시간까지 내가 주변을 고려하지 않고 나만을 생각하면서, 내가 시간을 내 중심으로 욕구에 맞춰서 스케줄을 짜본 적이 없는 거예요.
현아 : 제가 아는 사람 중에, 남편이 “내가 너한테 좋은 소식줄게. 내가 내일 출장 가” (좌중 폭소) 그러면서 부인이 너무 기뻐하면 티를 좀 덜 내라고 그런대요. 드라마에서 그러잖아요. 자식은 자기 인생만 생각하지만 부모는 자식까지가 내 인생이라고. 자식 인생이 내 인생이고 이렇게 가니까 나중에는 결국 너무 지쳐서 내 인생을 살고 싶은 그런 마음이 생기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도 언제 그렇게 하고 싶었나 떠올려 보면 그런 시기들이 있었어요. 막 사람들이랑 남편이랑 다 어렵고 힘들었던 그 시기에는 정말 저도 벗어나고 싶어서 이혼을 할까, 어쩔까를 한참 고민하다가 제가 11일 동안 여행을 간 거예요. 딱 여행을 가서 집안을 다 잊어버리고 그 여행지가 좋아서 정신없이 다니고 집에 왔더니 별로 이혼할 이유가 없더라고. (좌중 웃음) 이 정도로 꼭 이혼을 해야 하나? 바람을 피우는 것도 아니고, 돈을 안 벌어오는 것도 아닌데 싶고….
인숙 : 나 여행가야 되겠다. (웃음)
현아 : 가서 11일 동안 사실 집안일 하나도 생각 안하고, 그전에 내가 어떤 고민을 했는지 아무 것도 안 떠올리고 그냥 다닌 거예요. 마이너스통장을 싹 긁어서 몇 백만 원을 들고 갔어요. 11일 갔다 와서 그 다음부터는 마음을 추스르고 재미있게 잘 사는데… 상황자체가 사람들을 막 짓누르는 그런 경우가 있는 것 같아요.
안식일을 시스템화하자
종현 : 드라마에서 어느 장면을 봤냐면 그 소소한 거, 내가 하고 싶은 것 열 가지를 적으며 즐거워하는데 남편 전화가 오니까 막 짜증내면서 왜 또 전화했냐고 그러는 거 너무 통쾌하더라고요. (좌중 웃음) 근데 다른 사람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그게 아니더라고. 어떻게 그렇게 무책임하게 나가느냐 그러면서… 아차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더라구요. 하나의 드라마가 실마리를 주긴 했지만, 여성단체나 사회단체에서 공론화한다거나 하면서 자극을 주고 뭔가 소통할 수 있는 계기를 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겠구나, 라는 것을 한자리에서 서로 이야기를 해보면서 소통하고 실천방안을 같이 나누면 좋겠어요. 그래서 완경프로그램 할 때 결혼 안식년 프로젝트 해보자는 이야기도 했었거든요.
인숙 : 20대 친구들이 한 얘기가 떠올라요. 드라마에서 한자가 독립하는 걸 보면서 저 돈을 어떻게 마련했을까? 돈 문제가 딱 다가온다는 거예요. 선생님들은 어때요?
종현 : 삐딱하게 보는 사람은, 저 집은 경제력이 되니까 가능하지 누구나 원한다고 되나 그럴 텐데요. 하지만 나간다, 안 나간다 이분법으로만 볼 일은 아닌 거 같아요. 저렇게까지는 안 돼도 사무실이나 공간을 딱 몇 시간만 빌려서 나가 있었으면 좋겠어 그런 이야기도 나오거든요. 흑백논리로 고정시키지 말았으면 해요.
이오 : 각자의 상황에서 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현아 : 김혜자가 책을 읽는데 남편이 불쑥불쑥 들어오잖아요. 그러니까 가족이면 누구나 엄마가 책을 읽는 안방에 들어올 수 있는데, 그 안방이 엄마 방이 아니라 그냥 공동의 방이 돼버리는 거예요. 우리는 애들 방에 들어가기 전에 꼭 노크를 해야 하거든요, 그런데 얘네 들은 시도 때도 없이 내 방에 그냥 들어온단 말이에요. 남편의 경우는 결혼해서 이날 이때까지 항상 자기 방이 있어요. 주부는 내 방이 없잖아요. 드라마 상에서 이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 그런 공간이었다면 우리가 꼭 안식년 1년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내 방을 갖자는 운동을 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종현 : 안식일을 하루라도(?) 시스템화 하자, 그런 생각이 들어요. 음식이든 청소든 너무 잘해야 한다고 스트레스와 강박관념을 가질 게 아니라, 일과 중에 시간을 딱 정해놓고 내가 즐겁게 그 시간에 다 하겠다, 아이들한테도 몇 시 이후 두 시간은 엄마도 노터치다, 이런 부분을 알리고 스스로 시스템화하자는 거예요.
현희 : 의외로 젊은 엄마들이 아이들에게서 못 떠나는 경우가 많아요. 사실은 아이들에게 매달리는 걸 자기가 매달렸다는 생각조차 못하고, 그게 정말 아이들을 위해서인지 판단을 못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아이들이 학원 갔다가 늦게 오는데 엄마들이 그 시간을 주체할 줄 모르는 거예요. 의외로 시간이 많거든요. 그래서 모여서 수다를 떨고 그러는데, 그러고 나면 또 허해지고.
미용 : 내가 뭘 좋아하는지도 몰라요. 여자들이. 그래서 막상 기회가 주어져도 그걸 활용을 못하는 거야. 그래서 내가 뭘 좋아하고, 뭘 할 수 있고, 뭘 바라고 그런 걸 자기를 들여다보는 시간을 많이 가졌으면 좋겠고. 얼마 전에 저희 집에서 ‘아티스트웨이’를 했었죠. 거기 보면 일주일에 한 번씩 아무도 없이 나 혼자서 내가 즐거운 것을 해야 하는 그런 숙제가 있었어요. 그러면 미술관도 가고 할일 없이 걷기도 하고 그냥 가만히 앉아있고, 노래 부르고 그렇게 다양해요. 근데 그거를 하고 나서 공통적으로 말하는데. 내가 혼자 할 수 있는 것들이 굉장히 많아졌고 그것을 즐기게 된다는 거예요. 좀 이렇게 진행을 시켜봤으면 어떨까 싶어요.
공동의 준비, 상상력을 발휘하자
이오 : 매체라든가 여러 프로그램을 통해서 여성들이 자기 시간과 공간을 갖고 싶어하는 이런 욕구가 자연스럽다는 점을 부단히 전해주려는 노력이 필요해요. 주위에서도 그런 경우를 보면 격려해주고.
정란 : 저는 한자처럼 먼저 그렇게 할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지만 공감을 얻어내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미용 : 딸들이 엄마가 행복해서 좋다고 그렇게 이야기를 하던데요. 딸들이 찾아가 그러더라고요.
인숙 : 근데 일단 내가 가정에서 이런 욕구를 표현하면 당장 우리 딸 반발해요. 반격이 와요. 그래서 생각해보면, 가족의 동의를 다 얻어가면서 이런 선택을 해야 할까 싶어요.
정란 : 그 당시에 못한다고 하더라도, 나의 생각을 그 사람들에게 말할 수 있는 것도 운동의 확산이 아닌가….
인숙 : 내 나름의 욕구가 있다, 내 선택을 하고 싶다는 것 자체, 그것만으로도 의미있는 거 같아요.
종현 : 뭔가를 하려면 준비와 연습이 필요하고 다양한 안식년이 그려질 수 있다는 것을 생각했으면 해요. 서로 친구가 되어서 용기도 주고…. 나는 돼, 안 돼 이렇게 딱 선을 긋지 말고 대안이라는 게 한 가지만 있는 게 아니라 여러 가지가 있으니까 천천히 말이죠.
인숙 : 여기 모였던 사람은 공동으로 안식년 준비를 해보는 거예요. 한 달짜리 안식년을 위한 돈을 공동으로 모아본다거나 하는 과정에서 가족들하고 이야기가 오갈 거고, 공동으로 준비하면서 아이디어도 구체화되면서 가능성이 높아지고….
종현 : 그것도 사실은 시간을 두고 부담이 안 되게 하는 게 좋겠어요. 꼭 안식년 같이 어디를 안 떠나도 되고.
미용 : 기금을 마련하면 내 프로젝트를 내는 방법도 있어요. 내가 뭘 하겠다는 기획서를 내면 후원을 해주는 거예요. 개인이 낼 수도, 단체가 낼 수도 있고. 그런 재단을 만드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종현 : 방법은 무궁무진해요.
이오 : 아무튼 상상력을 발휘해서 다양한 방법을 찾아봅시다! 오랜 시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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