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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9*10월호 [기획] 혼자 사는 여자 훔쳐보기
따우
#1. ‘그’와의 긴 동거1)
‘집그리마’라는 생물이 있다. 독자 여러분의 심신안정을 위해 이미지를 첨부하지는 않겠다(궁금하면 포털에서 검색해 보시라. 단, 그 이후는 책임 못 짐). 어느 지역에서는 ‘돈벌레’라고도 불리는 모양인데, 이틀에 한 번 꼴로 내 집에 출몰하고 있으나 나는 아직 돈푼 구경도 못 했으니 ‘돈벌레’라는 건 절대 낭설이다.
이 녀석이 처음 등장한 건 이사 온 지 일주일이 채 안 되었을 때다. ‘혼자’라는 데 빨리 익숙해졌던 나는 벌레 보고 소리 질러 봐야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혼자라도 슬리퍼든 신문지든 퍽퍽 쳐 죽일 만한 강단은 없다. 그리하여 집에 구비한 필수품목이 레이쫛. 레이쫛가 다 떨어지면 마음이 불안해 집에 왔다가도 슈퍼로 돌아가곤 했다. 남자보다, 룸메이트보다 든든한 레이쫛. 누군가 누구랑 사냐고 물어보면 레이쫛랑 산다고 할 테다.
바퀴벌레든 거미든 뭐든 나타나기만 하면 이걸로 ‘익사’시켜 버리고야 마는 벌레 무섬증 때문에 이 녀석들도 처음에 나한테 숱하게 당했다. 그러나 먼저 간 동료들의 죽음을 항의하러 오는 건지, 먼저 있던 녀석들이 새끼를 친 것인지, 지치지도 않고 나타났다. 그들의 충해(蟲海)전술에 지칠 대로 지치고서야 나는 마침내 녀석들에 대해 알아볼 마음이 생겼다. 녀석들의 이름을 알게 된 건 바로 그 때. 겨울이 되기 전에 자주 나타난다는데 집에 있는 음식 찌꺼기를 먹기 위해서가 아닌가 싶다고. 그에 더해 나는 백과사전도 알려주지 않는 녀석들의 성품을 알고 있다. 밝은 데를 싫어해 갑자기 불을 켜거나 비추면 도망가거나 꼼짝 않는다는 것, 겨울 직전뿐 아니라 사시사철 들어온다는 것, 그 많은 다리 숫자에 걸맞게 엄청나게 빠르다는 것. 그런데 어라? 어디에도 녀석들이 ‘해충’이라는 얘기는 없다. 그때부터 시작된 나의 ‘철학적’ 고민. 혐오스럽게 생겼다는 이유만으로 저 녀석들에게 스프레이를 살포하는 게 맞을까? 어차피 쟤네가 살던 지역에 시멘트와 벽돌로 ‘집’이라는 걸 지은 건 인간 아닌가. 내가 지금 이 집에 살고 있다고 해서 쟤네들에게 이 공간에 대한 독점권을 주장해도 되는 걸까? 등등등.
귀뚜라미든 거미든 뭐든, 일단 눈에 띄면 헉! 하고 얼었다가 레이쫛부터 찾았던 습관은 서서히 사라져 갔다. 이젠 집에 들어와 불을 켰을 때 녀석들이 보이면 “갑자기 불 켜서 놀랐지? 얼른 구석으로 사라져라~” 하고 말도 건넨다. 하도 빨리 다니는 통에 깜짝 깜짝 놀라는 건 여전하지만 그래도 마음을 열고 보니 1센티가 될까 말까 한 새끼는 제법 귀엽기도 하다(!!!). 그렇지만 아직 녀석들과 친해지지는 않았다. 인간하고도 안 친한데 새삼 벌레들과 친해지고픈 마음도 없고. 하지만 내년에 이사 가면, 이 녀석들이 조금, 아주 조금은 그리울 것도 같다.
#2. 집을 고르는 기준
기숙사 빼고, 하숙 빼고, 오빠랑 잠시 살았던 거 빼면, 나의 ‘혼자 살기’는 1999년 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갓 지어진 원룸 건물의 햇빛 잘 드는 2층 방은 겉보기엔 그럴듯했으나, 한 층에 보일러 하나만을 돌렸던 관계로 겨울 난방비가 월 7~8만 원이었다. 그리하여 다음 번 집을 고르는 기준은 ‘개별난방.’ 그리고 2년 뒤, 살던 집보다 약간 큰 방을 구했다. 물론 개별난방 되는. 하지만 방습공사를 제대로 하지 않은 집의 1층은 지하방보다 조건이 나쁘다는 걸 머잖아 알게 되었다. 뭐든 잘 버리지 못하는 성격 탓에 늘어만 가는 짐은 어떻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집에 5년이나 살았던 건, 2년은 계약 때문에, 2년은 이사비용 아까워서, 1년은 방을 내놨는데도 안 빠져서다. 6년째 되던 해 결국 소송을 걸고 주위의 도움으로 이사를 나오게 되었기 때문에, 다음 집을 고르는 기준은 ‘그 집만 아니면 돼!’였다.
주거지로는 별로 적합하지 않은 오피스텔을 거쳐 이 집에 이사 온 지 1년 6개월이 되어간다. 비탈진 자리에 지어진 건물의 1층, 서류상으로는 지층인 방 3개짜리 오래 된 집. 이로써 마침내 나는 ‘원룸촌’이 아닌 ‘주택가,’ 그러니까 1인 가구 중심 마을을 벗어나 다인 가구가 대세인 지역에 입성하게 되었다.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뭐랄까, 왠지 ‘정착’한 듯한 느낌. 덕분에 이삿짐을 부리고 드러눕자마자 천장이 쿵쾅쿵쾅 울렸을 때도 좋기만 했다. 아, 이런 게 사람 사는 집이구나. 히죽…… 딱 한 시간만 좋았다.
어른이고 아이고 할 것 없이 울려대는 걸 보면 이 집에 구조적인 문제가 있는 건 분명하다. 하지만 그런 문제가 있다는 걸 알면 서로 좀 조심해줘야 할 텐데, 우리 윗집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으시다는 게 문제. 그래서 두어 번을 올라가 봤다. 시큰둥한 반응. 외려 별 예민한 애도 다 보겠다는 눈치다. 그때 나 솔직히 생각했다. 내가 남자라면 저런 반응 안 보였을 텐데. 그러나 심증만 있고 물증이 없으니 다시 쫓아 올라갈 생각은 못하고 아침부터 밤중까지 날이면 날마다 벌어지는 윗집 아이들의 10미터 달리기(100미터 달리기라고 하고 싶지만 집이 100미터는 아니니까. 흑.) 소리와 그 아이들을 돌보는 엄마의 쿵쾅거림을 고스란히 감내하고 있다.
층간소음과 관련한 ‘여자 혼자 사는 설움’을 윗집에 항의하러 갈 때만 느끼는 건 아니다. 층간소음은 내 집이 조용할수록 더 크게 들린다. 밥 하고 설거지 할 일도, 청소기, 세탁기 돌릴 일도 별로 없는 혼자 사는 여자네 집은 그래서 층간소음에 무방비로 노출된다. 텔레비전 소리 정도로는 까딱없기에 나는 본의 아니게 일중독자가 되고 있다(휴일에 쓰고 있는 이 글도 원래는 집에서 쓰려다가 사무실에 나와서 쓰는 중이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아파트 광고를 보면 집을 고르는 기준은 건설사 이미지, 시장성, 프리미엄, 웰빙, 있는 사람들끼리의 교류, 뭐 이런 것들인 것 같다. 그러나 내가 다음 집을 고르는 기준은 ‘꼭대기층’이다. 왜 ‘층간소음 없는 집’이 아니냐고? 층간소음 없도록 지은 집(대개 새로 지은 아파트들)에 들어갈 돈은 없으니까 그렇지 뭐.
#3. 원룸이 비쌀 수밖에 없는 이유, 그리고…
나는 알고 있다. “엄마가 뿔났다”에 나오는 김혜자 아줌마가 ‘휴가’를 간 그 원룸의 허상을. 우선 ‘원룸’이라는 시설 자체는 대학가 정도는 가야 있다. 변두리 아무리 뒤져 봐라. ‘원룸’의 수요는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대학생들이나 젊은 직장인들이 많이 사는 지역에서 벗어나면 눈을 씻고 봐도 없다. 그럼 대학생들이 많이 사는 지역은? 대개 대학가나 시내, 지하철역 근처 등등이다. 그러니 원룸 전월세비는 비쌀 수밖에. 참고로 지난 번 이사에서 알아보고 다녔던 콩알만 한 원룸은 전세로 6천을 불렀다. 그러니 텔레비전에 전세 3천입네 4천입네 하는 멀끔한 집들이 나오면 나도 모르게 툴툴거린다. “저런 집 있으면 소개해 줘 바라. 당장 이사 들어간다.”
내년 봄, 또 다시 이사를 가야 한다. 집 알아보고 다닐 때면 사람이 변한다는 주위의 증언이 아니더라도 이사만큼 사람 신경을 곤두세우는 일도 없다. 이제 이력이 붙을 법도 하건만 이사 생각만 하면 벌써부터 가슴이 콩닥거리니. 당연히 ‘신혼집’을 구한다고 생각하는 중개인과 집주인들을 만나 하하호호 해야 하고 이런 저런 일정을 맞춰 잔금을 치르기 전까진 안심할 수 없는 이사. ‘내집 마련’ 같은 건 안 바란다. 맘 놓고 오래 살 만한 집이라도 있었으면. 그래 오늘도 ‘신혼부부’를 위한 주택공급을 늘리겠다는 뉴스를 보며 뇌까린다. 혼자 사는 사람은 ‘주거안정’ 좀 하면 안 되나효?
1) 제목은 장경섭 作, “‘그’와의 짧은 동거”에서 따왔다. 이 만화에서의 ‘그’는 바퀴벌레다.
따우 ● 혼자 살림 차린 지 어언 10년.
그러나 아직도 우렁각시(우렁총각?)는 필요하다. 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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